대통령-전공의 대표 긴급 면담에…전공의들 "이용만 당할라"

면담 소식 못 들었던 전공의들 "정부에 이용당할까 두렵다"
"갑작스러운 만남, 당황스러워…의료계 여러 의견 모을 시간 없었을 것"
일각에선 "밀실 결정" 주장도…대전협 비대위 "기존 기조 변함 없다" 해명

윤석열 대통령(왼쪽),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들에게 대화를 요청한 지 이틀 만에 전공의 대표와 윤 대통령의 만남이 성사됐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면담 소식에 일부 전공의들은 사전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채로 성급히 추진됐다며 이번 면담이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전공의 내부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가운데 이번 면담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대전협 내부 공지를 통해 "금일 윤석열 대통령과 만난다"며 "기존 요구안의 기조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 최종 결정은 전체 투표로 진행할 것"이라고 알렸다.
 
정부의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이 본격화된 후, 박 위원장이 대통령과 면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전공의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전공의들에게 대화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대전협 측이 그동안 공식 입장을 내지 않으면서, 이날 면담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가 물 건너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다른 전공의 등과 동행하지 않고 단독으로 윤 대통령을 면담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전협은 지난 2월 20일, 긴급 대의원 임시총회를 열어 대화 조건으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등 7대 요구사항을 밝힌 바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내부 공지를 통해 "오늘 윤석열 대통령과 만난다"고 밝힌 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갑작스러운 면담 소식을 들은 전공의들은 박 위원장과 대통령의 면담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될까 우려했다.
 
수도권 대학병원 소속 전공의 A씨는 "2020년에도 전공의협회장과 의협회장 등이 '밀실 합의'를 해서 흐지부지 끝난 감이 있었다"며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 우려하고 있고, 오늘 면담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협상할 자리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저희한테 어떤 사전 통보도 없이 (면담을 추진하는 것은) 당황스럽다"며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는 대통령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지 않을까 두렵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의 B씨는 "대전협에서 아무런 이야기도 없다가 오늘 갑자기 대통령을 만난다는 소식을 접해서 당황스럽다"며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의료계의 여러 의견을 취합하기에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사직한 전공의들, 갓 전문의가 된 의사들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상태라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면담에 대해 2020년 9·4 의정합의 당시 '밀실 합의'가 재현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당시에 문재인 정부가 공공 의대 설립과 의대 증원을 추진하자 전공의들이 무기한 파업을 개시했고, 파업을 개시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정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코로나19가 안정화되면,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한 논의를 재개하자고 협의했다.
 
사직서 작성하는 교수. 연합뉴스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씨는 이날 개인 성명을 내고 "젋은 의사(전공의·의대생)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박단 비대위와 11인의 독단적인 밀실 결정"이라고 주장하며 "밀실 결정에 이은 밀실 만남이며, 젊은의사들은 '기습 합의'라는 2020년의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대전협 비대위 측은 협회원들에게 공지를 통해 "대한전공의협의회 성명문에 명시된 요구안이 전공의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요구안에서 벗어난 협의는 전공의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전협 비대위의 입장"이라고 반박했다.

또 "행정부 최고 수장을 만나 전공의의 의견을 직접 전달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만남"이라며 "2월 20일 성명서 및 요구안의 기조는 변함이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7주 내내 얘기했듯 (정부가) 요구안 수용이 불가하다면 그냥 저희쪽에서는 '대화에는 응했지만 여전히 접점은 찾을 수 없었다' 정도로 대응 후 원래 하던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며 "요구안에서 벗어나는 밀실합의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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