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믿음은 어디서 생겨나는가. 믿음은 어떻게 변질되고, 변질된 믿음은 어떻게 부조리한 욕망을 탄생시키는가. '오멘' 시리즈의 프리퀄 '오멘: 저주의 시작'은 오컬트 미스터리라는 장르 안에서 악과 믿음의 시작과 그에 대한 물음을 차근차근 밟아간다.
수녀가 되기 위해 로마에 가게 된 마거릿(넬 타이거 프리)은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때, 마거릿은 자신의 믿음을 뒤흔드는 어둠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서서히 조여오는 끔찍한 공포가 마침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며 믿음이 향하는 곳이 뒤바뀐다.
1976년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오멘'과 이후 개봉한 시리즈를 통해 악마의 숫자 '666' 신드롬이 일었다. 미국에서는 자녀들의 머리카락을 깎아 혹시나 '666'이 있는지 확인할 정도로 오컬트계 새 역사를 쓴 작품이 바로 '오멘'이다.
'오멘: 저주의 시작'은 시점으로는 '오멘'(1976)의 앞선 이야기이지만 '오멘'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해 시리즈 팬의 추억을 소환한다. 곳곳에서 장면과 대사를 통한 오마주가 드러나기에 이를 찾아보는 재미 또한 상당하다. 또한 크레딧은 물론 영화는 시대적인 배경만큼이나 고전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35㎜ 느낌이 나는 화면 역시 고전적인 분위기를 더하며 그 시절 감성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오멘' 시리즈가 그렇듯이 미스터리극의 구조에 부분부분 고어 신이 들어가 있다. 프리퀄 속 인물들의 죽음 역시 원작에 대한 오마주다. 다만 1973년의 고어와 2024년의 고어는 명확히 강도의 차이가 있음을 인지하고 주의해야 한다. 다만 자주 등장하지 않고, 또 오래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멘: 저주의 시작'은 프리퀄이지만 단순히 시리즈의 시작 이전으로 시간만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종교 호러의 표면 아래로 그 시대의 사회상을 비추면서 믿음에 관해 보다 심도 있는 질문을 향해 간다.
68혁명 이후 1971년 이탈리아에서는 노동자 운동이 견고해졌다. 각종 사회운동이 일어난 격동의 시기다. 68혁명 당시 모든 권위를 거부하고 저항하고 전복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기존의 체제, 관습, 보수성에 대한 저항은 권위적인 구체제의 또 다른 축인 종교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어졌다.
교회의 권위는 하락하고, 종교적 믿음이 사라져간다는 것은 결국 교회의 '힘'이 희미해진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이야기를 특정 등장인물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지만, 주인공 마거릿이 누비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회운동의 모습, 교회를 향해 보이는 반발심, 그리고 세속주의를 경계하는 교회의 모습을 통해 은연중에 드러낸다.
종교적 믿음 대신 현실 인식과 구체제에 대한 반기를 든 사회에서, 영화 속 교회가 선택한 방식은 세상에 악을 불러옴으로써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것이다. 정상적인 교회와 종교가 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과 달리 영화 속 교회는 신에 대한 믿음보다 '힘' 즉 종교적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공포'를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체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포를 수단으로 사용한다. '오멘'에서 드러났듯이 이는 정치로까지 손을 뻗어 시민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까지 연결된다. 이러한 점에서 모든 억압적인 권위와 권력에 저항했던 사회운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비춘 것은 여러모로 유의미하다.
교회로 가장한 권위와 그릇된 욕망의 상징이 변질된 믿음을 보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마거릿의 진짜 믿음은 무너지고 변질된다. 이 과정을 보며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믿음'이란 무엇인가다. 영화 속 교회는 '믿음'이 곧 '힘'이라고 했다. 종교를 지탱하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이고, 이러한 믿음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다시 정신적인 체제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것은 사회의 혼란과 공포다.
적그리스도란 이 사회를 불안과 공포에 빠뜨리는 권력 내지 체제로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시작해 종교와 믿음은 사회의 불안, 공포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 역사 속에서 체제를 흔드는 운동에 맞서 권위주의 체제는 어떠한 일들을 벌였는가, 믿음은 어디에 기반하는가 등의 질문으로 확장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권위주의적인 체제에 대한 저항과 전복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권위와 권력에 저항한 두 여성이 과연 어떤 식으로 새 시대를 살아갈 것인지, 추악한 욕망의 결과물인 구체제의 새로운 권위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 그 뒷이야기 또한 기다려진다.
'오멘' 시리즈는 미스터리한 구조에서 서서히 관객을 옥죄며 긴장과 공포를 유발하는 방식의 호러다. 여기에 중간중간 고어 신을 넣어 극적인 공포감을 끌어낸다. '오멘: 저주의 시작' 역시 이러한 '오멘'의 구조를 충실히 따라간다. 서서히 공포감으로 차오르는 영화의 구조는 채도의 변화로도 나타난다.
감독은 '오멘'에 대한 오마주뿐 아니라 대칭적인 구도와 오컬트에 어울리는 미장센, 미술 등 시각적으로도 슬로우 번 호러와 오컬트의 느낌을 한껏 살린다. 특히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한 긴장과 공포 연출도 눈에 띈다. 여기에 '오멘'하면 빠질 수 없는 테마곡 'Ave Satani'(사탄을 찬양하라)는 추억 소환은 물론 '오멘' 특유의 종교성과 공포감을 살리며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영화에서 극의 몰입을 돕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마거릿 역의 배우 넬 타이거 프리다. 공포에 물들어가는 마거릿의 얼굴과 눈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거릿의 여정에 빠져들며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특히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 후의 모습 그리고 데미안 출산 신에서 극단적으로 클로즈업 된 눈동자를 통해 보여주는 넬 타이거 프리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120분 상영, 4월 3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