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대통령 불참 속 '추념사'도 국무총리로 격하

대통령과 여당 대표 2년 연속 제주4.3 추념식 불참
올해는 추념사도 한덕수 국무총리 명의
지난해는 대통령 추념사를 국무총리가 대독

제76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3일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렸다. 제주도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 2년 연속 불참하면서 유족들의 실망감은 크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대통령 추념사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하는 형식이었지만 올해는 아예 국무총리 명의의 추념사가 낭독되면서 대통령과 정부가 4.3을 홀대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제76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3일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거행됐다.

'불어라 4.3의 봄바람, 날아라 평화의 씨'를 주제로 열린 4.3추념식에는 유족과 정치인, 전국 교육감 등 1만여 명이 참석해 70여년 전 억울한 죽음을 당한 4.3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3일 4.3 추념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인 기자

추념식에 참석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역사를 왜곡하고 사실을 조작하고 현실로 존재하는 유족과 피해자를 고통속으로 다시 밀어넣는 행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4.3관련 기록물들이 세계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정부와 여당이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녹색정의당 김준우 대표, 새로운미래 오영환 총괄선대위원장, 개혁신당 천하람 총괄선대위원장,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 등이 추념식장을 찾았고 전국 13개 시도교육감이 나란히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이처럼 주요 정치인들이 4.3 추념식에 참석했지만 4.3 유족들은 아쉬움을 떨쳐 내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참해 대통령 취임이후 단 한번도 4.3 추념식장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마저 4.3 추념식을 외면하면서 2년 연속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불참하는 상황이 됐다.

4.3 유족인 오순명(81) 할아버지는 "4‧3은 인권과 평화의 정신이다. 대통령이 4‧3추념식을 찾아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미래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무언의 교훈도 되는데 오지 않아서 섭섭하다"고 토로했다.
 
아내와 함께 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은 김태선(91) 할아버지도 "지금껏 대통령들이 다 한 번씩 왔다. 어떻게 한 번도 안 올 수 있나. 한 번은 와야지"라며 쓴 소리를 내뱉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3일 제주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6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낭독하고 있다. 제주도 제공

더욱이 올해는 추념사도 한덕수 국무총리 명의로 낭독됐다. 지난해에는 그나마 윤석열 대통령의 추념사를 한 총리가 대독하는 형식이었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이낙연, 김부겸 국무총리 명의로 추념사가 낭독되긴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격년제로 4.3 추념식에 참석했기 때문에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2년 연속 4.3 추념식에 불참하면서 올해 한덕수 국무총리 명의의 추념사는 도드라졌다.

다만 지난해 한 총리가 대독한 600자 분량의 대통령 추념사는 4.3과 관련한 구체적인 실천 약속도 없고 원론적인 입장만 묻어나 역대급 맹탕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더욱이 지난해 대통령의 추념사에는 콘텐츠 시대, IT기업, 반도체 설계 등의 단어들이 열거됐다. '자연과 첨단의 기술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보석으로 만들겠다'거나 '품격있는 문화 관광 지역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등 선거철 제주 공약같은 단어와 문장들이 4.3 유족들의 탄식을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한 총리의 추념사에는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트라우마치유센터'의 설립과 운영에 더욱 힘쓰고 '국제평화문화센터' 건립과 '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이 담겼다.

올해 추념사는 국무총리 명의로 격하됐지만 그래도 맹탕이었던 지난해 추념사보다는 진전이 있었다고 위안이라도 삼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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