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들 간의 경쟁 구도로 주목을 받고 있는 서울 영등포갑은 국회 부의장을 지냈던 국민의힘 김영주 후보와 영등포구청장을 거쳐 총선에 도전장을 내민 민주당 채현일 후보가 접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21대 총선에서 김 후보가 내리 3선에 성공하며 민주당색이 강한 지역으로 분류돼 왔지만, 그간 이 지역에서 민주당 현역 의원으로 활동했던 김 후보의 지지층 또한 상당히 두터운 것을 확인한 셈이다.
자신에게 비례의원직을 준 국민의힘을 탈당해 개혁신당에 합류한 허은아 후보는 적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들 두 후보와는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비례 의향' 국민의미래 34.6%…국정 지원 40.5% 정권 심판 39.4%
CBS노컷뉴스가 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서울 영등포갑 지역구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민주당 채현일 후보가 44.7%를 얻어 1위에 올랐다.국민의힘 김영주 후보는 40.6%를 얻으며 2위를 기록했다. 조사 결과만으로는 채 후보가 4.1%p 우세했지만, 격차가 오차범위 이내의 값인 관계로 어느 한 후보가 완전하게 승기를 잡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혁신당 허은아 후보는 7.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앞선 두 후보와의 격차는 30%p 이상 벌어져 있다. 지지 후보가 없다는 응답은 3.7%,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4.0%였다.
당선 가능성을 묻는 조사에서도 채 후보가 47.6%를 얻어 1위에 올랐다. 김 후보는 40.6%를 얻어 격차가 오차범위 내인 7.0%p까지 벌어졌다. 허 후보는 5.3%, 잘 모르겠다는 6.4%로 나타났다.
이번 총선에서 어느 비례정당에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는 국민의힘의 비례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라고 답한 응답이 34.6%로 가장 많았다.
2위는 23.6%를 얻은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으로 나타났다. 최근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조국혁신당은 19.5%를 얻어 3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민의당 당대표를 지낸 이준석 대표가 이끌고 있는 개혁신당은 5.7%,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이끌고 있는 새로운미래는 3.1%, 녹색정의당은 2.6%를 각각 얻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 조사에서는 '매우 잘못하고 있다'와 '잘못하는 편이다'를 합한 부정 평가가 56.7%로, '매우 잘하고 있다'와 '잘하는 편이다'를 합한 긍정 평가는 38.6%보다 18.1%p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총선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여당인 국민의힘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여당 지원론을 선택한 응답자가 40.5%로 가장 많았다. '정부와 여당의 견제를 위해 제1야당인 민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여당 견제론은 39.4%로 정부·여당 지원론과 1.1%p의 격차를 기록,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의 견제를 위해 제3지대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15.7%였으며, 4.4%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적합한지를 묻는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1.6%를 얻어 1위에 올랐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28.2%로 2위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소속인 오세훈 서울 시장이 8.0%, 민주당 소속인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5.8%를 각각 3, 4위에 이름을 올렸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4.8%, 인천 계양을에서 이재명 대표와 총선 선거전을 펼치고 있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3.4%, 이낙연 전 총리가 2.4%를 각각 얻으며 뒤를 이었다.
이번 조사는 무선 통신사가 제공한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무선 100% ARS 자동응답 조사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다. 응답률은 7.2%이며, 가중값 산출 및 적용은 2024년 2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성·연령·지역별 가중치(셀가중)를 부여했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영주 탈당과 국민의힘 이적…시민들도 "기회주의" vs "인물봐야" 평가 갈려
채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주요 원인으로는 민주당이 강세인 지역 분위기가 꼽힌다. 서울 영등포갑은 최근 세 번의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가져갔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 후보의 현재 지지율이 단지 민주당 후보이기 때문만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지 주민들은 채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로 전직 구청장 시절 보였던 추진력 등을 꼽았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지난달 26일 만난 영등포 시민들은 불법 노점상 철거, 혼잡스러운 도로 정비 등 채 후보가 구청장 재직 당시 진행했던 사업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청과시장에서 만난 자영업자 곽동훈(47)씨는 "영등포역 주변에 불법 노점상들을 싹 정리했어요. 청과시장도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지금 깨끗하게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영등포동 거리에서 만난 김원율(75)씨는 "강제로 밀어내고 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아서 성공시켰다고 들었다"며 "주머니 사정이 힘든 사람들은 미니점포 같은 것도 내줬다더라. 그만큼 영등포에서 행정력과 정치력이 갖춰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김 후보에 대한 평가는 아직 엇갈리고 있다. 김 후보 지지자들은 김 후보가 자신의 일신 만을 생각하며 탈당해 반대 진영에 들어갔다고 보는 사람들과 오죽하면 탈당해서 지역구를 지키겠다고 하겠느냐는 정반대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로 나뉜 모양새다.
영등포시장역 인근에서 만난 윤민준(43)씨는 "당적을 떠나서 굉장히 기회주의적인 선택"이라고 비판하며, "만약 국민의힘에서도 어떤 불의의 일로 본인이 위험에 처하면 그 때는 또 당을 바꿀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김 후보의 선택을 존중하는 주민들은 후보 개인적인 능력을 존중했다. 지난 3번의 총선에서 내리 승리함은 물론, 문재인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 여성 국회부의장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영등포동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만난 정현욱(24)씨는 "국회 의정활동을 굉장히 활발하게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적이 바뀌었다고 해서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허 후보에 대해서는 보수성향 시민들이 기대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 후보가 국민의힘 출신이 아닌 반면, 허 후보는 보수정당 출신이지만,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당세가 약하다는 것이다.
영등포시장에서 40년 이상 의류사업을 해왔다는 유광호(64)씨 "여기는 '어떤 간판을 달고 나오느냐'에 따라 표심이 갈리는 곳"이라며 "개혁신당 후보로는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벨트' 속한 여야 격전지…개혁신당 허은아, 캐스팅보터 될까
영등포갑의 남은 기간 최대 변수는 김 후보를 향한 엇갈린 표심이 어떻게 자리 잡느냐이다.
지난 3차례 총선에서 김 후보를 당선시켰던 민주당 지지층 중에서 얼마나 '국민의힘 소속' 김 후보를 지지할지, 국민의힘 지지층 중에서 얼마나 '민주당 출신' 김 후보에 표를 줄지에 따라 김 후보가 격차를 좁힐 수 있을지, 역전에 실패할지 여부가 달릴 전망이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적 변경 후 많은 분들께서 아쉬워 하셨던 것도 사실이지만, 당적은 변경됐지만 영등포를 떠나지 않고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며 "많은 분들이 잘 했다거나 힘내라고 응원해주시기도 한다. 남은 기간 더욱 낮고 겸손한 자세로 주민들과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채 후보는 김 후보 논란에서 벗어나 선거의 초점을 '정권 심판'에 맞추려고 하고 있다. 4선 의원, 국회부의장, 장관 등을 지낸 김 후보와 인물론 대결을 펼치는 것보다는 고물가 등 민생 실패, 부진한 지역 개발 속도 등 정부·여당과 관련한 부분을 집중 공략해 지지세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채 후보는 "영등포는 서울의 3대 도심이자 한강 서남권의 중요한 곳으로 지역 발전 욕구가 강하지만 과거 공업지대의 영향들로 인해 개발이 늦어진 부분이 있다"며 "요즘 느끼는 체감은 많은 분들이 숨겨놨던 정권 심판의 마음을 표심으로 보여주기 전부터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 후보의 약진 여부도 주목할 부분으로 꼽힌다. 범 보수 진영으로 분류되는 개혁신당의 허 후보 지지율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 국민의힘 측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
허 후보는 이번 영등포갑 선거와 관련해 "여당에서 보수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 누가 이기더라도 민주당의 승리다. 보수의 승리는 아니다"라며 이런 지점을 공략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 진짜 보수가 영등포구를 이끌어가야 한다"며 "제가 20년 간 살았던 영등포의 자존심을 살리고, '떠나고 싶지 않은 영등포'의 발전을 도모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