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의거 100주년' 순국열사 3인에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선 청년 3인, 日영사관 간부 처단하고 200명과 대치 끝에 장렬히 사망

중국 하얼빈 일본영사관 터. 독립기념관·국가보훈부 제공

일본제국주의 통치 하의 하얼빈 총영사관 경찰 간부 등을 처단하고 군경 200여 명과 대치하다 장렬히 사망한 순국열사 3인이 100년 만에 재조명받게 됐다.
 
국가보훈부는 31일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100주년을 맞아 만주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유기동(1963년 독립장), 김만수(1963년 독립장), 최병호(1963년 독립장) 선생을 올해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경북 안동 출생(1891년)인 유기동 선생은 일찍부터 만주로 건너가 흥업단이 조직되자 이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같은 안동 출생(1892년)인 김만수 선생도 만주에서 농사와 군사훈련을 병행하며 독립 의지를 다졌고, 1920년 서로군정서에 합류해 군자금 징수 활동을 전개했으며 한족회에서도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경북 울진 출생(1903년)인 최병호 선생은 만주에서 서로군정서의 헌병대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독립운동을 추진했다.
 
이들은 1919년 3·1독립운동이 국내외에서 거족적으로 일어나고 이듬해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승리로 이어지자 일제를 겨냥한 의열투쟁을 더욱 본격화했다. 
 
김만수, 최병호 선생은 하얼빈 총영사관의 고등경찰이 하얼빈 일대 한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한다는 소문을 듣고 친일파와 일본경찰 암살 및 일제기관 파괴 계획을 세우던 중 예전의 동지 유기동 선생과 합류하게 된다. 
 
이들은 그러나 1924년 4월 8일 하얼빈의 한 여관에서 은신 중 발각돼 일본경찰과 중국군 지원병 200여 명에게 포위당했고 항복을 권유받았다.
 
이들은 "일본인의 앞에서 항복하려면 차라리 죽고 말겠다"며 이틀을 버틴 뒤 교전 과정에서 일본영사관 순사부장 쿠니요시 세이호 등 10여명을 사살하고 전원 현장에서 순국했다. 
 
보훈부는 "유기동·김만수·최병호 세 청년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용맹하게 맞서며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면서 "세 청년의 의거는 만주 무장독립운동 진영에 큰 교훈을 주었고, 1924년 6월 이후 독립군단들이 통합되면서 항일무장투쟁이 강화되는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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