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일상을 잘 보살피며 지내오던 여성 직장인 '나'는 남성 피아니스트 '당신'을 만나 운명처럼 빠져들며 단정했던 일상은 조금씩 흐트러져간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랑이 가능하기나 한가?"라며 그렇게 사랑의 달뜸, 황홀 그리고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간다.
'호텔 이야기' '가만히 부르는 이름' '곁에 남아 있는 사람' 등 동시대 사람들의 애틋한 이야기를 담아냈던 임경선의 신작 소설이다.
"화를 내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대응하면 화를 내는 이유가 없어져. 상대가 나한테 원하는 게 있을 때만 화내는 것이 효력을 발휘해. 하지만 상대가 나한테 바라는 게 더 이상 없다면 화는 허공에 흩날려 증발하고 말아. 화내는 사람은 더 비참해지기만 하지."
비록 상대인 '당신'은 내게 고통을 주고 떠난 사람이지만 '나'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기로 하면서도 동시에 상대와의 관계에서 끝까지 공정한 관점을 유지하려 애쓴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사랑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조금 더 혹은 덜 사랑한 사람, 혹은 조금 먼저 사랑하기를 그만두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멈추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며 "소설 속 '당신'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며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랑에 빠지면 왜 하고 싶은 말을 잘 하지 못하게 되고, 하기 싫은 말은 더 의식하게 되는 걸까. 저자는 마치 '내 이야기'인 것 같은 일인칭 구어체로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낸다. '나'의 말은 '당신'을 향해 있지만 함께 있으면서도, 목구멍에 차올라도 미처 말하지 못했던 '나'의 뒤늦은 고백 편지처럼.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