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015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대한항공에 입단한 황승빈은 삼성화재, 우리카드를 거쳐 2023-2024시즌 KB손해보험에 새 둥지를 텄다. 주전 세터 황택의의 군 입대로 베테랑이 간절했던 KB손해보험은 데뷔 9년 차 황승빈을 적임자로 낙점했다.
하지만 황승빈은 KB손해보험에서의 첫 시즌부터 팀이 최하위에 떨어지는 쓴맛을 봤다. KB손해보험은 5승 31패 승점 21을 기록, 창단 첫 최하위라는 굴욕적인 성적을 거뒀다.
28일 경기도 수원시 KB손해보험 인재니움에서 만난 황승빈은 "실망 속에서 시즌을 보낸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팀 전체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서 "구단에서 많은 기대를 걸었는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고 떠올렸다. 이어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라는 의문이 들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KB손해보험에 새 둥지를 트자마자 부담이 컸을 터. 황승빈은 "팀에서 거는 기대에 대한 부담보다 코트 안에서 느끼는 부담이 컸다"고 밝혔다.
그는 "누군가를 평가할 위치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수치가 좋지 않았다"면서 "토스할 때 공격에서 매끄러운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범실을 하면 안 된다는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공격수가 좋아하는 토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득점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힘든 순간 백업 세터 신승훈이 출전 기회를 잡으며 부담을 덜기도 했다. 황승빈은 "내 경기력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나 대신 들어간 선수가 경기를 잘 풀어주고 이기면 오히려 기뻤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후인정 전 감독은 시즌 중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 이후 KB손해보험은 김학민 수석 코치 대행 체제로 잔여 시즌을 치렀고, 시즌 종료까지 7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최하위를 확정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황승빈은 "아직 우리의 경기력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시점이었다"면서 "시즌이 끝날 때까지 남은 경기에서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황승빈이 주춤한 사이 젊은 세터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특히 우리카드의 2년 차 세터 한태준은 세트 2위(세트당 11.60)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에 황승빈은 "(한)태준이를 보면 나는 저 나이때 저렇게 하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어린 세터들이 치고 올라온다고 위기감이 들지는 않았다. 나도 아직 젊다"고 이를 악물었다.
베테랑의 관록도 신인의 당돌함에 못지 않다. 황승빈은 "온전히 한 팀에서 주전 세터로 우승을 이끈 적은 없지만 굵직한 경험은 많다고 생각한다"면서 "남들이 겪지 못한 어려움도 많았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 많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미겔 감독은 팀에 합류하자마자 선수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황승빈은 "(감독님께서) 그동안의 배구 인생과 성장 과정에 대해 물어보셨다"면서 "그리고 감독님이 추구하는 배구가 무엇인지, 팀을 어떻게 운영하고 싶은지에 대해 말씀해주셨다"고 전했다.
미겔 감독은 보강해야 할 부분에 대해 "우리 팀의 주요 지표를 보면 대부분 6, 7위에 그쳤다"면서 "앞으로 발전해야 할 부분은 한두 포지션이 아닌 팀의 전체적인 경기력"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선수단을 파악하는 단계지만 확실한 철학을 갖추고 있다.
황승빈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공감했다. 그는 "엊그제 훈련을 할 때 감독님의 노트북을 봤는데 굉장히 많은 내용이 담겨 있더라"면서 "감독님이 추구하는 배구의 시스템이 굉장히 체계적으로 짜여 있었다. 우리 팀에 정말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의 말씀대로 팀의 전반적인 부분에 안정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전체적으로 많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새 시즌 부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KB손해보험은 절치부심하며 새 시즌을 준비 중이다. 황승빈의 개인적인 목표도 있을 터.
그는 "사실 대단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지난 시즌보다 더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면서 "같은 어려움이 와도 나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경기력을 유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역할을 충실히 하는 세터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