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에 회장도 (누가 신임 회장이 될지) 결과를 알 수 없었잖아요.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당선된 것 자체가 분노의 표출이라고 봐요."
서울 소재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 중인 전문의 A씨는 지난 26일 제42대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으로 선출된 임 회장이 65.43%(3만 3084표 중 2만 1646표)의 득표율로 당선된 선거 결과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의대 2천 명 증원에서 비롯된 의(醫)-정(政) 대치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의협 내부에서도 '초강경파'로 분류되는 임 회장이 회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이 시점에 선출된 사실 자체가 의사들의 '여론'을 대변한다는 취지다. 직선제 도입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66.46%)도 선거의 뜨거운 열기를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A씨는 27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저도 그렇지만 요즘 주변을 보면 저녁이나 새벽에 깨서 잠이 안 온다는 의사들이 많다. 그 정도로 화도 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얘기"라며 "해결 기미도 안 보이니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아직 '무기한 휴진' 등 파업 여부를 장담하기엔 이르지만, 출구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라는 게 상당수 개원의들의 생각이다.
의대 증원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임 당선인은 당선 확정 직후 총파업 가능성을 염두에 둔 '강경 노선'을 재확인했다. 의료계와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정부가 잠시 유예한 전공의 면허정지를 포함해 의대생·교수 등 "한 명이라도 다치는 시점에 총파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물론 "필요하다면 전공의 대표·의대 교수들을 충분히 포함해 정부와의 대화 창구를 만들겠다"며 대화에 응할 여지도 남겼지만, 전제로 내세운 조건이 워낙 강성이라 성사 가능성은 희박하다.
임 당선인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제2차관을 파면하고 의대 증원에 관여한 안상훈 전 대통령실 사회수석의 공천(국민의미래 비례대표)을 취소하는 것이 '기본 조건'이라고 밝혔다. 2천도 최소한의 증원 수치임을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도 동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요청하고, 정부(윤 대통령)가 받는 모양새를 취한 '전공의 행정처분 유예'는 애당초 협상카드 축에도 못 낀다는 얘기다.
다만, 일각에서는 의협이 실제 총파업에 돌입해도 '파괴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거라는 시각이 우세했던 게 사실이다.
의료 현안을 정부와 논의해온 자타공인 의사 대표단체지만, 동네 병·의원 등 1차 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개원의 중심이라 일사불란한 단체행동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0일 이후 전체 90% 이상이 대학병원 등을 떠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는 의미다.
전국 수련병원에 소속된 전공의 수는 1만 3천 명 남짓이지만, '빅5' 등 상급종합병원 의사인력의 40% 이상을 차지해 이들의 빈자리가 의료공백으로 직결되고 있다. 사직 또한 개별적 결정임을 강조하나, 병원별 단위로 움직이는 만큼 조직력도 상당한 편이다.
이 때문에 의협이 스스로 전면에 나서기보다, 전공의들을 앞세워 대정부 투쟁수위를 높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공의들이 피고용인으로서 주80시간 이상의 격무에 시달리는 '을(乙)'의 성격을 지닌다면, 개인병원 개설사례가 많은 개원의는 좀 더 '기득권'에 가깝다는 게 세간의 평가이기도 하다.
앞서 '9·4 합의'로 의대증원 시도가 좌절된 2020년에도, 전공의의 파업율은 75~80%를 기록한 반면 의협의 휴진 참여율은 6~10%에 그쳤다. 정부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의료대란의 뇌관은 늘 전공의였던 셈이다.
하지만 4년 전과는 단순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공의들의 집단 행동이 한시적인 파업이 아니라 '사직'이라는 점, 그때보다 대규모의 이탈이 한 달 넘게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 정부에 대한 의료계 전반의 불신과 분노가 더 크게 번져 있다는 점 등이다. 대형병원의 진료 공백이 커지면서 환자들로서는 동네병원 한 곳도 아쉬운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임 당선인을 필두로 의협 회원들이 똘똘 뭉쳐 휴진에 나선다면, 당연히 이전보다 파급력도 배가 될 수밖에 없다.
A씨는 "의사들은 (직업 특성상) 굉장히 보수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웬만하면 정부가 제시하는 안(案)을 수용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다르다"며 "지금은 오히려 내원하는 환자들이 왜 그렇게 (정부가) '2천'을 고집하는 거냐고 걱정하며 물어보시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선은 내달 10일 총선에 (최대한) 적극적으로 참여해 당정에 확실한 메시지를 보여주자는 분위기"라며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나. 전공의들이 하듯 모든 의사(개원의)들이 그렇게 (휴진 등을) 할 순 없겠지만 다들 자발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의협 비상대책위원회가 제안한 대로 이제는 대통령이 전공의와 직접 만나 결자해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강조했다. A씨는 "지금 상황이 정리된다고 해도 국민들이 의사를 보는 눈, 또 의사들이 정부를 보는 눈은 서로 굉장히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