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오컬트 '파묘는 이날 오전 8시 기준으로 누적관객수 1천만 1642명을 기록했다. 지난달 22일 개봉 이래 32일 만이다. 이는 지난해 최고 흥행작 '서울의 봄'보다 하루 빠른 속도다. 역대 개봉작 중 32번째이자 한국 영화로는 23번째 '천만 영화' 타이틀이다.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한국 오컬트 '파묘'
'파묘'는 '검은 사제들' '사바하' 단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오컬트 장인'이라는 수식어를 획득한 장재현 감독 신작이라는 점에서 오컬트 팬들의 관심을 받은 한몸에 받은 작품이다. 국내보다 오컬트 장르가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서구권에서도 '파묘'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셈이다.
이 영화는 개봉 전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포럼 섹션에 공식 초청된 것은 물론 최근 세계 3대 판타스틱 영화제로 손꼽히는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를 통해 해외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의 수석 프로그래머 크리스 오르겔트 역시 "'파묘'는 종교와 죽음, 그리고 사후세계를 다루며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초자연적인 작품"이라며 오컬트 영화로서 '파묘'를 높이 평가했다.
유럽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도 '파묘'는 각종 기록을 쓰며 '한국 오컬트'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지난달 28일 개봉한 '파묘'는 '기생충'을 뛰어넘고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으며, 최근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베트남에서도 지난 15일 개봉해 역대 한국 영화 최고 오프닝 스코어 기록을 갈아치웠다.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동남아에 '파묘'를 배급하는 현지 배급사 퍼플 플랜의 대표 바이올렛 콴은 "환상적인 배우진을 통해 더욱 생동감을 얻은 '파묘'는 초자연적인 오컬트 요소를 짜임새 있게 직조해 낸 영화"라며 "초자연적 현상과 전통적 믿음의 얽히고설킨 세계가 작품의 깊이와 진정성을 높이 평가하는 동남아시아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성' '이야깃거리', 마니아 넘어 전 세대 관통
국내 개봉 후에도 '파묘'는 오컬트 팬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몰리며 '천만영화' 반열에 올랐다. 즉 '대중성'을 확보한 영화라는 의미다.
실제로 개봉일인 2월 22일부터 3월 21일까지 약 한 달간 '파묘'를 찾은 관객의 연령별 예매 분포(CJ CGV 제공)를 살펴보면 △10대 5.5% △20대 24.9% △30대 31% △40대 21.9% △50대 이상 16.7%로 고르게 분포돼 있다. 이는 12·12 군사반란을 경험하지 않은 MZ세대까지 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한 '서울의 봄'과 비슷한 수치다.
국내에서는 마이너 장르에 속하는 '오컬트'임에도 '대중성'을 획득한 것이 '파묘'의 흥행 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장재현 감독은 "극장에서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며 "그래서 공포영화로 접근하지 않고, 거의 몇몇 부분만 호러적인 요소를 넣었다. 또 주인공을 전문가로 바꾸고 힘있는 이야기로 가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이야기했다.
개봉 이후 '파묘'에 담긴 이른바 '항일 코드'가 관람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번지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 역시 오컬트 팬 이상으로 번졌다. 또한 공포 수위가 높지 않다는 후기까지 이어지며 평소 오컬트 장르에 진입장벽이 있던 관객들까지 '파묘'를 찾게 됐다.
김형호 영화산업분석가는 22일 CBS노컷뉴스에 "전통적으로 '오컬트'라고 하면 공감대보다는 충격과 공포가 크다"며 "그러나 '파묘'는 모든 사람이 알기 쉽고 다른 사람과 말하기도 편한 종류의 이야기(쇠말뚝)가 있다. 소재 자체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이것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서울의 봄'처럼 요즘 흥행 영화를 보면 이슈가 있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 '항일 영화'란 화제 역시 '천만영화'까지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며 "또한 N차 관람도 뒷받침돼야 하는데, '파묘'는 미스터리물처럼 전개된다. 그러다 보니 놓쳤던 코드는 무엇인지 등을 확인하고, 궁금해서 재관람하게 되는 지점도 있다"고 짚었다.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이를 연기한 배우의 힘 역시 '파묘'의 흥행 요인 중 하나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다양한 '밈'은 물론 김고은과 이도현이 연기한 화림과 봉길 사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며 영화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다.
김형호 분석가는 그중에서도 '국민 배우'라 불리는 최민식과 '대세 배우' 이도현에게 주목했다. 그는 "개봉 1주 차는 메인 배우, 2주 차부터는 플러스 알파 배우의 영향이 크다. 그게 '천만영화'의 기본 공식이고, 그 공식을 처음 밟은 게 '왕의 남자' 이준기"라며 "이와 같이 1020대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이도현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수기? 성수기? '파묘'가 증명한 '영화'의 힘
이처럼 '파묘'는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이 지닌 캐릭터성과 '사바하'가 보여준 다양한 오컬트적인 지식의 재미라는 장점을 모두 아우르며 '천만영화' 반열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영화 시장에서 '비수기'라 불리는 2월에 개봉해 흥행한 '파묘'가 입증한 것은 결국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의 중요성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달라진 환경 속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소비하는 주요 창구 역시 극장에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이동했다. 관람료가 높아지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수백 개의 콘텐츠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다.
김형호 분석가는 "코로나 이후로 '서울의 봄' '범죄도시' 시리즈와 같이 색깔이 강한 영화가 계속 잘 되고 있다. '파묘' 역시 색깔이 강한 영화"라며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악역을 고민하게 만들지 않고 심플하며, 장르 색깔이 확실하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윤성은 평론가 역시 "'서울의 봄'도, '파묘'도 비수기에 개봉했음에도 '천만'을 넘었다. 앞으로는 성수기, 비수기 상관없이 영화의 힘이 중요하게 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