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1조 원 MOU…주객전도에 금융중심지 발목 잡나?

전북도·민간투자사·카카오 등 MOU 체결
금융센터에 데이터센터 더해 전주서 건립
전북도 로드맵 無…투자사 계획서 유일
기피시설 데이터센터에 초점 가능성도
지체되는 금융센터…금융중심지 발목?
민간투자 유치 불투명…PF대출 조달 난항
전북도 "기본 계획 불필요…커진 규모 긍정적"
전문가 "'방향 상실' 우려…기본 계획 필수"

전북도는 지난해 10월 전북신용보증재단을 사업자로 820억 원을 들여 연면적 2만 5천㎡, 11층 규모의 금융센터를 짓는 최종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한 달만에 이 계획은 뒤집혔다. 금융센터와 컨벤션, 호텔의 위치와 조감도. 전북도 제공

전북특별자치도와 민간투자사가 전북 전주에 금융센터와 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며 1조 원 규모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금융센터에 컨벤션센터와 호텔까지 포함돼 큰 기대를 받고 있으나,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허울뿐이다. 전북도의 기본 계획조차 없이 맺어진 협약으로 인해 금융중심지 지정에 외려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전북도 등에 따르면 전북도와 파인앤파트너스가 전주에 전북금융센터와 전북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위해 MOU를 맺었으나, 전북도가 구상한 사업의 기본 계획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북도는 민간투자사인 파인앤파트너스가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MOU를 체결했고 최종 보고서까지 나온 기존의 금융센터 건립 계획을 뒤집었다.
 

한 달 만에 10배 커진 금융센터…데이터센터는 덤

전북도는 지난해 10월 전북신용보증재단을 사업자로 820억 원을 들여 연면적 2만 5천㎡, 11층 규모의 금융센터를 짓는 최종 보고서를 냈다. 그런데 전북도는 한 달이 지난 11월 20일 파인앤파트너스자산운용,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등과 1조 원 규모의 MOU를 체결하고 금융센터와 함께 데이터센터까지 짓기로 했다.
 
파인앤파트너스의 사업투자계획서를 보면, 전주시 만성동 전주혁신도시에 들어설 예정인 금융센터의 규모는 기존 11층에서 35층으로 3배 이상 커졌다. 금융센터 옆으로는 컨벤션센터와 호텔도 지어진다. 데이터센터는 전주시 여의동의 탄소소재국가산업단지에 9층 규모로 계획됐다. 사업비는 10배 넘게 늘었다. 총공사비는 6천억 원으로 금융센터 2천 5백억 원, 컨벤션·호텔 660억 원, 데이터센터 2천 8백억 원이다.
 
전북도는 파인앤파트너스가 SPC를 설립해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사업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민간투자사가 전라북도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상 금융센터와 컨벤션센터, 호텔의 조감도. 전북도 제공

계획 없는 MOU에 동상이몽 걱정까지

민간투자사와 대기업이 참여해 규모가 커졌으나 금융센터 건립을 지연시킬 암초가 곳곳에 숨어있다. 그 첫 번째로 전북도의 자체 계획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북도가 1조 원 금융센터 사업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자료는 파인앤파트너스의 사업계획서가 유일하다. 자치단체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부분을 민간사업자와 메우고 고치는 통상적인 방식이 아니다. 전북의 숙원인 금융센터 건립이 민간투자사의 사업계획에 끌려가는 그림이다.
 
전북도가 사업의 키를 잡지 못할 경우 이번 MOU 사업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금융센터보다는 데이터센터 건립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있다. MOU를 주도한 파인앤파트너스는 카카오와 협력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인앤파트너스와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전남 장성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투자협약을 전남도와 체결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하다 주민 반대에 부딪혀 좌초된 사례가 여럿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경기도 시흥에서도 데이터센터를 지으려고 했으나, 무산됐다. 또 지난해 경남 김해에서도 NHN 데이터센터 건립이 결국 취소됐다. 사업자의 방점이 데이터센터에 찍히며 주객이 전도될 위험이 있다.
 
23년 만에 겨우 착공된 부산의 롯데타워가 반면교사의 사례다. 롯데는 수익성이 높은 백화점동(광복점), 아쿠아몰동, 엔터테인먼트동만 2009년, 2010년, 2015년 각각 건립했으나, 23년 동안이나 롯데타워 건설을 미뤄왔다. 부산시가 롯데백화점 등 3개 동의 임시사용 연장을 승인하지 않는 초강수를 던지고 나서야 건립이 추진됐다.

민간투자사가 전라북도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상 데이터센터 조감도. 전주시 여의동의 탄소소재국가산업단지에 들어설 계획이다. 전북도 제공

지체되는 금융센터 건립…금융중심지 발목 잡나

MOU 체결로 인해 전북도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금융중심지 지정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금융센터 건립이 지연되기 때문이다. 당초 10층 높이의 데이터센터는 2025년이 완공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MOU로 계획상 완공은 2026년 말로 늦춰졌다. 아직 기본 용역은 시작하지도 못했고 실시설계 용역까지 거쳐야 하므로 착공은 빨라야 2025년 중순 이후로 보는 게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완공은 2027년 중순이다. 이는 민간투자사의 사업계획에도 한참 못미치는 일정이다.
 
전북 금융중심지 지정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금융 인프라 부족 등을 이유로 전북 금융중심지 지정을 미뤄왔다. 금융센터의 완공 시점이 새 정부가 출범할 2027년으로 늦춰지는데, 차기 정부에서 금융중심지로 전북을 지정할지는 미지수다. 만약 MOU가 휴지 조각이 되고 금융센터 건립이 늦춰진다면 금융중심지 지정의 발목을 잡게 된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건설경기가 악화되고, 금리인상이 부동산 시장을 얼린 상황에서 민간투자자를 모집하기도 어렵다. 여기에 정부가 부동산 개발업체(시행사)의 자기자본 요건을 올리는 안을 추진하고 있어 PF 대출을 통한 자금 확보도 불확실해 보인다.

부산국제금융센터. 한국남부발전 제공

전북도, "민간투자 사업으로 기본 계획 불필요"

전북도는 민간투자 방식으로 사업이 변경돼 기본 계획 등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힘과 동시에 SPC 설립 이후 사업이 구체화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답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투자사가 투자 의지를 표현해 MOU까지 체결된 상황이기 때문에 자체 재원이 들어가지 않고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며 "도에서는 행정적인 지원을 통해 사업의 성공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SPC 설립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이 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며 "협상 전문가를 채용하는 등 사업에 철저히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북도는 금융국제센터를 1단계로 우선 추진하고, 데이터센터와 호텔, 컨벤션은 2단계로 진행할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SPC의 사업 수익성 확보가 관건"이라며 "도에서는 국제금융센터의 입주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관계 기관들과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외려 전북도는 민간투자를 통해 금융센터의 규모가 확대될 경우 금융중심지 지정에 긍정적인 효과를 끼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민자를 통해 사업 규모가 확대되면 금융 산업 유치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전북이 제3 금융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금융 모델을 구체화해 현 정부 임기 내에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방향성 상실 가능…컨트롤 타워 도청의 로드맵 필요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금융센터 건립을 위해서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전북도의 기본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전북도는 시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며 데이터센터를 수용했다"며 "금융센터 유치를 통해 지역 발전을 도모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센터가 성공적으로 건립되기 위해서는 MOU 당사자들의 이행 의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업을 총괄하는 전북도의 마스터플랜이 필수적"이라며 "구체적인 로드맵 없이는 민간사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고, 사업의 방향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금융센터 건립을 강제할 구속력이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금융센터 건립이 무산된다면 그 책임은 전북도가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11월 20일 전북도 등 15개 관계기관이 1조 원의 MOU를 체결했다. (아랫줄 좌측부터) 김창호 파인앤파트너스자산운용㈜대표, 우범기 전주시장, 김관영 전북도지사, 이경진 ㈜카카오엔터프라이즈대표, 정재웅 아토리서치㈜대표. 전북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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