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울먹인 소방수' 현캐의 기적, 막 내리자 눈물도 흘러내렸다

현대캐피탈 진순기 감독 대행이 21일 OK금융그룹과 준플레이오프에서 아쉽게 진 뒤 기자 회견 도중 터진 눈물을 닦고 있다. 노컷뉴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기적이 마무리됐다. 정규 리그 최종전에서 극적으로 봄 배구 막차를 타고, 업셋까지 노렸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현대캐피탈은 21일 경기도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남자부 준플레이오프 OK금융그룹과 원정에서 아쉬운 패배를 안았다. 풀 세트 접전 끝에 2 대 3(25-22 22-25 21-25 25-22 13-15) 재역전패를 안았다.

단판 승부인 까닭에 현대캐피탈의 시즌도 막을 내렸다. 정규 리그 3위 OK금융그룹은 오는 23일부터 2위 우리카드가 선착한 플레이오프(PO)에서 3전 2승제 시리즈를 펼친다.

하지만 현대캐피탈의 올 시즌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했다. 시즌 중 감독이 경질되는 악재를 딛고 최하위권에서 치고 올라가 포스트 시즌(PS)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보인 까닭이다.

지난 시즌 준우승을 거둔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 등 주축 선수들의 대표팀 차출로 올 시즌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6위로 처져 최태웅 감독이 경질이라는 악재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진순기 감독 대행 체제에서 선수들이 똘똘 뭉쳐 시즌 막판 분전하며 4위로 봄 배구 막차를 탔다. 특히 정규 시즌 최종전에서 3위 OK금융그룹을 꺾고 승점 차를 3으로 좁혀 극적으로 준PO를 성사시켰다.

다만 준PO를 넘지 못했다. 이날 현대캐피탈은 1세트를 따내고 2, 3세트를 내줬지만 4세트 접전 끝에 승리하며 마지막 5세트로 경기를 몰고 갔다. 그러나 승부처에서 잇딴 서브 범실로 매치 포인트를 내줬고, 상대 신호진의 공격을 블로킹한 게 아웃이 되면서 경기가 끝났다.

21일 경기도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준플레이오프 OK금융그룹 읏맨과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경기. 득점에 성공한 현대캐피탈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후 진 대행은 "선수들이 노력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여기까지였다"면서 "OK금융그룹이 충분히 승리할 실력을 보였다"고 후련한 소감을 밝혔다. 이어 "시즌은 불안했지만 충분히 강팀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각인시킬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면서 "선수들이 정말 고생 많았고, 대단했다. 자랑스럽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던 것은 다 선수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마음고생도 심했다. 진 대행은 "(감독 대행을 맡은 지) 3개월이 조금 안 됐는데 그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면서 "중간에 새로운 감독님이 사인하고, 새 코치가 합류하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후 진 대행은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드러낸 뒤 울컥한 듯 "죄송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진 대행은 "힘들었고 뭣도 모르고 할 때 진짜 다리가 풀렸다"면서 "경기에 들어갈 때 내 자리가 맞나 싶었다"고 털어놨다. 전력 분석관으로 활동하다 갑자기 지휘봉을 잡은 진 대행은 "대행을 맡고 들어간 2경기와 정규 리그 마지막 2경기 우리카드, OK금융그룹과 경기가 제일 힘들었다"면서 "마지막에는 지면 안 되는 경기였는데 선수들이 열정으로 해줬다"고 돌아봤다.

지도자 경험이 없었던 까닭이다. 진 대행은 "스케줄, 훈련, 컨디션 관리 등이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든 순간이 선택이었다"면서 "예전에는 감독의 지시를 받았지만 결정을 해야 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진 대행은 "5, 6라운드 훈련 강도를 바꿨는데 도움이 됐다"면서 "그런 부분들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OK금융그룹을 꺾고 극적으로 봄 배구에 진출한 현대캐피탈 선수들과 진순기 대행. KOVO


어려운 상황에 성과를 냈기에 뿌듯한 마음도 크다. 현역 때 프로를 경험하지 못했던 진 대행은 "비록 훌륭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희망을 줬다며 배구 선배들에게 격려 메시지를 받았다"면서 "노력하면 꼭 선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면으로 배구계에서 일을 잘 할 수 있다 보여준 것 같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현대캐피탈은 이미 차기 사령탑을 내정했다. 지난달 6일 프랑스 출신 필립 블랑 감독에게 다음 시즌 지휘봉을 맡기기로 발표했다.

진 대행은 "저의 (대행) 역할은 오늘까지"라면서 "구단도 준PO가 있기 때문에 이후 어떤 역할을 맡길지 공유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다시 얘기를 해야겠지만 구단에 남아 있다면 맡은 바 소임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진 대행은 지도자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진 대행은 "정식 감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내가 결정할 부분 아니고, 더 준비해서 더 좋은 모습 보일 기회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위기에 현대캐피탈을 맡아 기적처럼 PS로 이끌었던 진 대행, 이 기간만큼은 정식 사령탑이 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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