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한 여성은 중국에서 인신매매단에 의해 성매매 업소, 알몸 화상 채팅 업소에 끌려가기도 합니다. 14세의 탈북 소녀가 68세의 중국 총각에게 팔려 가기도 합니다. 장기 적출을 당한 탈북민의 시체가 두만강에서 떠내려오는 일도 있습니다."
김성은 갈렙 선교회(천안시에 있음) 목사는 지난 13일과 14일 두차례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 여성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김 목사는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온 사람들은 중국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일을 겪는다"면서 "그들은 탈북자 신분이어서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 한다"고 했다.
그는 "이들 중 일부가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들어온다"면서 "탈북민 문제는 좌우 진영논리가 아닌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군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뒤 기술전문학교를 졸업한 엔지니어로, 대기업에서 10년간 근무했다.
그는 2000년 초 중국에 갔다가 탈북민 구조활동에 나섰고, 지금까지 구출해서 한국에 데려온 탈북민이 1천여명에 이른다.
김 목사는 두만강변에서 탈북민을 돕는 일을 하다 얼음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목에 쇠못 6개를 박아놓은 상태다. 탈북민을 데리고 밀림을 헤쳐 나가다 절벽에서 떨어져 담낭이 파손돼 수술받기도 했다.
그의 부인 박에스더 목사는 북한군 중대장 출신의 탈북민으로, 남편과 함께 탈북민을 돕는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부부 사이에 태어난 첫 아이는 뇌 병변 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부부가 탈북민 지원 자금을 얻기 위해 잠깐 집을 비운 사이에 7살의 어린 나이로 숨졌다.
그가 목숨을 걸고 도운 북한 주민 탈출 사례는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에 담겼다.
이 영화는 지난해 1월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인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올해 2월 영국 아카데미(BAFTA)에서도 다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작년 10월에는 미국의 600여곳 영화관에서 개봉됐으며, 최근에 열린 미국 아카데미상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미국 공영방송 PBS가 전국에 이 영화를 내보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지난 1월31일 개봉됐고, 4월11일 재개봉될 예정이다.
Q. 고향은 어디인가.
A. 7남매 중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내가 20세 때 주민등록초본을 떼어보니 35차례나 이사한 것으로 나왔다. 아버지가 사업하느라 가족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됐다. 오전에 월셋집에 들어갔다가 가족이 많다는 것이 들통나서 오후에 쫓겨난 일도 있었다.
Q. 아버지가 무슨 사업을 하셨나.
A. 아버지는 해병대 부사관 출신이다. 5·16쿠데타를 일으킨 당시 박정희 장군과 함께 한강을 건넜다고 한다. 아버지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제대했다. 윗사람한테 대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제대 후 외국산 괘종시계와 석유곤로의 한국 판매 대리점을 운영하셨다. 그 사업이 잘됐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돈 많은 사람들에게 있었던 '여자 문제'가 아버지에게도 생겼다. 아버지 밑에서 일했던 친척 아저씨의 배신도 있었다. 아버지는 부도를 맞았고, 우리 가족은 야반도주하듯이 야간열차를 타고 군산으로 내려왔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우리 가족은 군산 변두리의 아주 작은 무허가 초가집에서 살았다.
Q. 아버지는 군산에서 무슨 일을 하셨나.
A. 아버지는 일을 포기하셨다. 그때 아버지는 40대였는데, 모든 의욕을 잃으셨다. 물론, 아버지가 아예 일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족의 생계는 어머니와 내가 책임져야 했다.
Q. 본인은 학창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나.
A. 나는 고깃배가 항구에 들어오면 바닷고기를 부두에 내려주는 일을 했다. 돈을 받지 않고 일을 도와줬다. 그러면 바닥에 떨어지는 바닷고기를 주워가도 주인이 눈감아줬다. 그 고기를 시장에서 팔면 돈이 됐다. 중학교 방학 때는 고깃배를 탔다. 대만 앞바다까지 가는 배였다. 당시 일반인이 직장에 들어가면 한 달 급여가 3만~4만원이었는데, 고깃배를 타면 보름 정도 일하고 15만~30만원을 받았다. 상당히 좋은 수입이었다.
Q. 고깃배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A. 선원들을 위해 밥 짓는 일을 했다. 그런데 깊은 바다에 나간 고깃배에서는 산에서 그러하듯이 밥이 제대로 안 됐다. 맨 위는 설익고, 중간은 죽 상태, 맨 아래는 까맣게 타는 삼층밥이 됐다. 선원들이 밥도 제대로 못 하느냐면서 나를 때리곤 했다. 바다에서는 고기가 들어있는 그물에 상어들이 몰려들곤 하는데, 선원들은 내 몸을 들어 올려 바다에 던져버리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키가 작은데, 중학교 때는 더 왜소했다. 선원들의 그런 위협은 장난이기도 하지만 어린 나에게는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었다. 냄비 뚜껑을 무거운 것으로 눌러주면 삼층밥이 안 되는데, 선원들은 그런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Q. 학교는 제대로 다녔나.
A. 학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계속 배를 타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중고 시절 이후에는 폴리텍대학교(당시 기술전문학교)로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대기업그룹 방산업체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10년 정도 일하면서 자격증을 27개나 땄다. 당시에 나는 실력을 꽤 인정받았고, 수입도 좋았다.
Q. 북한 동포를 돕는 일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
A. 1998년 군산 에이스중앙교회 집사였을 때 북한 돕기 사역을 시작했다. 2000년 1월에는 이 교회 목사님과 함께 중국 투먼(圖們)에 갔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두만강을 봤는데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가 부르시던 '두만강 노래'에는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이라는 가사가 있다. 실제로 보니 푸른 물이 아니었다. 근처의 무산광산에서 흘러나오는 석탄 물 때문에 강물이 시커먼 색깔이었다. 뱃사공도 없었다. 북한 쪽 산은 높은데,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 없었다. 주민들이 풀뿌리까지 다 캐 먹었기 때문이다. 그걸 보니 눈물이 나왔다. 어느 날 두만강 변에 갔는데, 5~6세로 보이는 한 아이가 내 손을 잡고는 "고저 같은 민족끼리 같이 삽시다"라고 했다. 실제로 10살은 됐지만 못 먹어서 덩치가 작은 북한 꽃제비였다. 그 아이는 내가 남한에서 온 것을 알아보고는 그렇게 구걸을 했다. 약간의 돈을 그 아이에게 줬더니 갑자기 내 주변에 20명이 넘는 꽃제비들이 몰려들었다. 자기들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해서 탈북민 구조에 나서게 됐다.
Q. 두만강 변에서 사람 시체도 많이 봤다고 하던데.
A. 봄비가 내릴 때, 여름철 홍수 때 북한 사람들의 시체가 떠내려왔다. 탈북하거나 밀수하다 숨진 사람들이다. 너무 못 먹어 기운이 없는 상태에서 두만강을 건너다 강 물살에 떠밀려 죽은 것이다. 밤에 강가에서 돌덩이의 이끼를 밟아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죽기도 한다.
Q. 나체 여성 시체가 떠내려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A. 우리가 직접 그 나체 시체를 사진으로 찍은 적이 있다. 옷을 입은 채로 강을 넘어오면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 있다. 중국 쪽에 도착해서 젖은 옷을 계속 입고 있으면 날씨에 따라서는 체온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옷을 벗어서 비닐로 싼 다음에 강을 건너는 경우가 있는데, 그 여성은 그렇게 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Q. 탈북 여성이 인신매매단에 의해 성매매 업소에 끌려가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하던데.
A. 노래방, 마사지방 등에 팔려 간 여성이 성매매에 동원되는 사례들이 있다. 모든 노래방과 마사지방이 성매매 업소라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나라가 그렇듯이 중국 정부도 성매매에 대해서는 강하게 처벌한다.
Q. 사회주의 정부는 왜 성매매를 강력히 단속하나,
A. 성매매는 자본주의 표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는 결혼한 사람이 아니라면 호텔에 들어가 잠을 잘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도 성매매는 강력히 단속한다.
Q. 중국으로 탈북한 여성들이 알몸 화상 채팅을 하기도 한다는데.
A. 낮에는 성매매하고, 밤에는 알몸 화상채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알몸 채팅의 상대방 남자는 대체로 한국에 사는 남성들이다. 이들 한국 남자는 중국에 있는 탈북 여성과 화상 채팅을 하면서 변태적인 행위를 하라고 요구한다. 한국 남성들은 같은 여성이 계속 등장하는 것을 지겨워해서 새로운 여성이 나오기를 원한다. 이를 잘 아는 중국인 업주는 기존의 탈북 여성에게 북한에 있는 친구를 데려오면 그곳에서 풀어주겠다고 한다. 그 친구가 오면 업주는 기존의 탈북 여성을 농촌에 팔아넘긴다.
Q. 탈북 여성이 남편 앞에서 화상채팅을 하기도 한다고 하던데.
A. 한때 중국 농촌 마을에서 탈북 여성의 화상 채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중국인 남편들이 좋은 돈벌이 수단이라면서 저마다 북한 출신 부인에게 이런 행위를 시켰기 때문이다. 화상채팅 화면에는 남편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집에서 화상 채팅을 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다. 중국인 남편한테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사람을 직접 만나서 성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생활비도 벌고 좋은데 무엇이 문제냐"고 했다.
Q. 탈북 여성이 집단적 성행위에도 동원된다고 하던데.
A. 마약을 먹은 상태로 집단적 성행위를 하는 난교 파티에 동원되기도 한다. 이런 파티에서 성 매수자가 지불하는 돈은 일반 성매매의 6배 정도는 된다. 물론, 그 돈은 탈북 여성이 아닌 업주가 모두 가져간다. 이런 상황은 과장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관련 영상도 확보해놓고 있다.
Q. 탈북 여성이 농촌에 팔려 가는 경우가 많은가.
A. 탈북녀의 나이, 결혼 여부, 자녀의 유무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내가 구출한 한 여자아이는 14살에 68살의 노인한테 시집을 갔다. 아기도 낳았다. 인신매매단에 의해 팔려 간 것이다. 이 소녀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이런 일을 당했다.
Q. 그 노인은 재혼인가.
A. 초혼이다. 중국 농촌에는 결혼을 못 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데다 도시화로 여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탈북 여성들이 이런 농촌 총각들의 타깃이 된다. 더 참담한 일도 있다. 두만강 변에서 중국 사람이 만두 도시락을 들고 있으면, 북한 여성이 그 만두를 보고 강을 건너온다고 한다. 성관계를 해주고 만두를 얻어먹기 위한 것이다. 너무 배가 고프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내가 그런 장면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과장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한번은 두만강 강둑에서 거의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으로 왔다 갔다 하는 여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몸은 깡말랐는데 배가 부른 상태였다. 우리를 안내하는 현지인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북한 여성이라고 했다. 강을 건너와서 성관계를 해주고 음식을 얻어먹곤 했는데, 그만 임신하고 말았다고 한다. 애를 가진 상태에서도 배가 고프니 다시 강 건너왔다는 것이다.
Q. 탈북민을 성매매 업소에 팔아넘기기 위해 성폭행을 한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A. 남성 3~4명이 번갈아 성폭행한다고 들었다. 탈북 여성이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다음에 성매매 업소나 알몸 채팅 업체에 팔아넘긴다.
Q. 중국인이 그런 성폭행을 하나.
A. 한족뿐 아니라 조선족 중에서도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
Q. 자궁 적출을 한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A. 임신한 북한 여자가 자궁적출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임신 중절이 아니라 자궁적출을 하는 것은 성매매 일을 계속 시키기 위한 것이다. 성매매 과정에서 임신할 수도 있으니 그 가능성을 아예 없애기 위해 그런 짓을 한다.
Q. 인신매매단에 의해 장기 적출 조직에 넘겨지는 탈북민도 있다는데,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A. 내가 장기 적출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다. 다만, 두만강 변에서 장기가 없는 시체들을 봤다. 이런 시체들은 중국 공안이 지문을 조회해도 신원이 나오지 않는다. 탈북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으로 데려온 한 아이는 장기 적출 조직에 팔려 가는 급한 상황이라면서 빨리 구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신속하게 움직여 구조했다.
Q. 지금도 두만강이나 압록강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있나.
A. 거의 없다. 과거에는 북한 쪽 철책이 허술했다. 최근에 드론으로 찍어봤는데, 깜짝 놀랐다. 중국 쪽의 철책이 북한 쪽에도 생긴 것이다. 중국이 철책을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Q. 지금 한국에 들어오는 사람은 이미 탈북해서 중국에 있던 사람들인가.
A. 그렇다. 현재 중국에 탈북민 5만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본다. 이들 중 일부가 한국으로 오고 있다.
Q. 본인이 계획한 탈북 실제 상황이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에 담겼고, 이 영화가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는데.
A. 이 영화는 탈북민 가족 5명이 밀림을 헤쳐 태국으로 가는 과정을 담았다. 17세 아들이 탈북하다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이소연 씨 이야기도 들어 있다. 이 영화는 미국, 영국 등 외국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충격적인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정작 한국에서는 관객이 예상보다 많지 않다. 탈북민 문제가 한국 사람에게는 새롭지 않은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인 문제도 있다고 본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이 영화 시사회를 개최했는데, 민주당 의원은 1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탈북민 문제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의 문제다.
Q. 탈북 과정 가운데 밀림 코스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반드시 밀림을 거쳐야 하나.
A. 밀림이 아닌 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나를 잡아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 비욘드 유토피아에서 우리 일행은 밀림을 통과하는 데 12시간 걸렸다. 나와 제작진은 메콩강까지 갔다가 다시 12시간 걸어서 되돌아왔다.
Q. 영화를 보면 안내원이 밀림 속에서 돈을 더 달라고 한다는 장면이 있는데.
A. 안내원은 라오스의 산족이다. 그 안내원은 원래 코스로 가면 위험하니 돌아가겠다면서 돈을 더 주면 원래 코스로 가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돈을 더 주면 다른 사람의 탈북 비용이 계속 올라가기 때문이다.
Q. 영화를 통해 탈북 루트가 공개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A. 탈북민이 중국, 베트남, 라오스를 거쳐 태국으로 간 뒤에 한국에 들어온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구체적 코스는 이 영화로 알 수 없다. 각국의 당국이나 중국, 북한도 이런 개괄적 코스를 모르지 않는다. 알아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그 넓은 밀림 입구 곳곳에 보초를 세워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탈북 루트를 공개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이쪽 분야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