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여권에 대형 악재로 작용하던 '이종섭·황상무' 논란에 대해 "다 해결됐다"고 선언했다.
앞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논란을 두고 펼쳐졌던 윤석열 대통령과의 1차 갈등에서 한 비대위원장이 제안했던 특별감찰관 임명, 제2부속실 설치 등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2차 갈등의 요구사항은 모두 관철된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 간 갈등은 겉으로는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다. 갈등과 맞물려 있던 국민의힘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국민의미래의 공천 순번도 미세 조정하는 수준에서 일단락됐다.
한 비대위원장은 두 차례에 걸친 당정 갈등을 통해 상당한 정치적 입지를 마련했다. 1차에서도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다고 해도 명분에서 앞섰던 측면이 있고, 2차 갈등에선 수도권 위기론 등 '민심의 경고'를 등에 업은 한 비대위원장의 사실상 '완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4·10 총선의 향후 성적표가 숙제로 남았다. '이종섭·황상무' 논란에 대한 대응으로 중도층·무당파의 이탈을 막고 불리한 판세를 역전하지 못한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남게 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종섭·황상무 논란' 결국 굽힌 尹…韓 "우리는 민심에 순응"
한 비대위원장은 이날 경기 안양시 관양시장 거리인사에서 "한 일주일 동안 황상무 수석의 문제라든지 이종섭 대사의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 많이 걱정하셨을 것 같다"며 "그것들이 오늘 해결됐다"고 말했다.
해병대원 순직사건에 수사 외압을 행사한 의혹으로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귀국하기로 하고, '언론인 회칼 테러' 논란을 빚은 대통령실 황상무 수석이 자진사퇴하기로 한 것으로 당정갈등이 풀렸다는 게 한 비대위원장의 결론이다.
앞서 한 비대위원장이 지난 17일 '이 대사 귀국·황 수석 자진 사퇴'를 거론한 뒤, 수도권 출마자들을 중심으로 동조가 이어졌는데, 다음날 대통령실이 이를 일축할 때만 해도 당내에서는 한 위원장의 요구 사항이 수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두 논란에 대해 '정치 공작'이라는 인식이 있고, 한 번 신임을 준 사람을 잘 내치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의 스타일을 고려할 때, 윤 대통령이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었다. 지난 1월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리스크가 불거졌을 때에도 '정치 공작'이라는 인식 하에 한 비대위원장이 거론했던 특별감찰관 임명, 제2부속실 설치 등은 실현되지 않은 채 갈등만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비대위원장이 '민심'을 명분으로 자신의 목표를 관철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 비대위원장은 "제가 그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러분들께서 그것을 원하셨고 여러분들이 걱정하셨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민심에 반응하고 민심에 순응하는 정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도하는 與 수도권 출마자들 "앓던 이 빠졌다"
당내에서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수도권 위기론' 때문에 윤 대통령이 후퇴하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소속의 한 수도권 출마자는 "수도권 상황이 암울하다 못해 다 죽게 생겼다보니 윤 대통령의 의지가 굽어진 것"이라며 "선거를 3주 앞둔 현재는 한 비대위원장의 요구가 민심에 가까웠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으로 인한 민심 이반은 실제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2~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면접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에서 서울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30%로 직전 조사보다 15%p가 감소했다.
여론조사업체 리서치뷰가 KBC광주방송·UPI뉴스 의뢰로 지난 16~17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서울 종로, 중·성동갑, 영등포갑, 금천에서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다. 동작을도 여당 우세 지역으로 여겨졌지만, 이 조사에는 여야 후보의 격차가 1%p도 나지 않았다.
국민의힘 수도권 출마자들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당정 갈등이 봉합 수순에 접어들면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됐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수도권 소속의 한 의원은 "시간을 허비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앓던 이가 빠진 셈이고, 어찌보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며 "주민 친화적 정책을 내놓고, 정부 여당의 힘을 어필하며 총선 판을 흔들 기회는 잡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례 갈등' 미세 조정하며 일단락…韓, TK찾아 상심한 지지층 '달래기'
위성정당 비례대표 공천 문제를 놓고 불거졌던 한동훈 지도부와 친윤계의 대립도 비례대표 후보 순번 조정이 일부 단행되며 봉합 수순이다.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인 이철규 의원은 이날 "비례대표 공천은 그 진행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당초 국민의힘에서는 비례대표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에서 고심해서 결정한 이후 국민의미래로 이관하기로 뜻을 모았지만, 지도부에서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호남 지역 인사, 당직자 등에 대한 배려가 포함된 순번 재배치를 촉구했다.
이에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오후 기존에는 비례 후보 명단에 없던 조배숙 전 국민의힘 전북도당위원장을 원내 입성이 유력한 13번에 배치했다. 최초 여성 검사로 이름을 알린 조 전 의원은 5선에 도전하게 됐다.
또 기존에 23번이었던 사무처 당직자 출신 이달희 전 경상북도 경제부지사를 17번으로 전진시켰다. 17번은 '골프 접대 의혹'으로 하루 만에 비례대표 후보 공천이 취소된 이시우 전 국무총리비서실 공보실 서기관에 대한 공천이 취소되면서 공석이 된 자리다. 아울러, 기존에 13번을 받았던 강세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은 21번으로 옮기게 됐다.
당선권으로 전망되는 순번에 호남 인사 1명과 당직자 1명을 전진시키는 미세한 조정으로 이 의원의 요구 사항을 반영하고, 나머지 상위 순번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게 된 만큼, 비례대표 공천을 두고 벌어진 갈등도 사실상 한 비대위원장의 원안이 관철된 셈이다.
갈등을 해결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21일 '보수 텃밭' 대구·경북을 찾아 당정갈등으로 상심한 지지층 '달래기'에 나선다. 한 비대위원장은 경기 안양시를 찾은 20일에도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운명공동체"라며 "그렇게 해야 폭주하는 이재명 사당과 통진당 종북세력이 이 나라 주류 세력을 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지지층에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