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현 정부 주요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이 쌓이면서 수사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이 시험대에 올랐다.
공수처는 4·10 총선을 앞두고 '뇌관'으로 떠오른 이종섭 주호주대사 사태는 물론,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의 대립에서 비롯된 주무 부처 장·차관 등 이른바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를 앞두고 있다.
공수처를 정치적 논란의 한가운데로 소환한 건 공수처가 지난해 9월부터 수사 중인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 피의자인 이 대사 임명 사태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해병대원 순직 사건 수사기록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는 외압 의혹이 불거진 피의자이자 그 '윗선'을 밝힐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런 그가 공수처의 출국금지를 풀고 재외공관장으로 부임하자,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녹색정의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을 '범인 도피' 혐의 등으로 공수처에 고발한 상태다.
특히 대통령실이 이 대사에 대해 "고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고 밝혀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도 불거졌다. 대통령실은 또 "출국금지가 그렇게 간절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이종섭 대사를 소환 조사하라"고 했는데, 피의자 소환 일정을 언급하는 것 역시 부적절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공수처법 3조가 '대통령, 대통령비서실 공무원은 수사처 사무 관련 업무보고나 자료제출 요구, 지시, 의견제시, 협의, 그 밖에 직무수행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정국의 또 다른 핵심 쟁점인 의료 파업 사태도 공수처로 넘어왔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전날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과 박민수 2차관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복지부가 의료 현장 이탈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공시 송달하고 각 수련병원장에게는 사직서 수리 일괄 금지와 연가 사용 불허 등 강제 조치에 나서자, 의협 비대위가 '초헌법적 명령'이란 취지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라는 정부 방침을 추진하는 주무부처 장관 등에 대한 공수처 조사가 불가피해졌다. 정부 방침이 확고한 상황에서 복지부 장관 등에 대한 수사는 정부와 정면충돌할 가능성도 크다.
이처럼 공수처가 현 정부 주요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지만, 공수처를 둘러싼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특히 외부 간섭 등을 막아줄 수장이 없다는 점은 대표적인 악재다.
공수처 관계자도 전날 "한 집안에 아버지, 어머니가 없이 자식들끼리 집을 끌어가기 쉬운 일이 아니잖느냐"며 "대외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병풍과 우산이 돼 주는 분이 계셔야 구성원들이 안정감을 갖고 기대며 격려도 받으면서 (일을) 할텐데 아무래도 계시는 것과 안 계시는 것 차이가 크다"며 처장과 차장 부재를 토로했다.
심지어 공수처조차도 수사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정치적 입김 등 외부 환경에 자유롭지 못한, 외풍에 흔들리는 현 상황을 에둘러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굉장히 경계했는데 이런 상황에 들어가 버려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본연의 업무인 수사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2기 공수처장 후보자 두 명 모두 정부·여당 측 추천 인사라는 점도 수사 독립과 정치적 중립 변수로 꼽고 있다. 이들 후보자 모두 여권의 추천을 받은 만큼 이들 중 한 명이 공수처장에 오르더라도 현 정부 주요 인사를 상대로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울 수 있겠느냐는 취지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공수처가 현 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후보로 추천된 두 분이 공수처의 독립을 보장할 분들일지는 의문"이라면서 "(추후) 공수처 제도를 완전히 개선하든지 하는 조치는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