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주호주대사(전 국방부 장관) 출국을 놓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정면충돌한 대통령실이 "(이 대사) 검증 과정에서 고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주요 피의자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고발 내용에 대해 '문제없다'고 규정한 꼴이어서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대사는 해병대원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한 핵심 피의자로 꼽힌다. 하지만, 이 대사에 대한 조사는 출국 전인 지난 7일 4시간에 걸친 한 차례 조사가 전부다.
대통령실은 전날 언론에 배포한 '현안 관련 대통령실 입장'에서 "이 대사 검증 과정에서 고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고 공수처도 고발 이후 6개월간 소환 요청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 대사가 부임 전 스스로 공수처를 찾아가 4시간가량 조사를 받았고 언제든 소환하면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대사가 공수처 소환 요청에 언제든 응할 것이지만 공수처가 조사 준비가 되지 않아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이 대사가 법무부뿐 아니라 공수처에서도 출국 허락을 받고 부임한 것"이라고도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대통령실의 입장은 이 대사를 둘러싼 공수처의 입장과는 배치된다. 공수처는 "사건관계인(이 대사)이 법무부에 제출한 출국금지 이의신청에 대해 출국금지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제출했다"며 대통령실 주장을 반박했다. "출국금지 해제 권한이 없어 이 대사 출국을 허락한 적이 없다"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대통령실 입장이 나오자마자 바로 반박 공지를 할 만큼 출국금지가 그렇게 간절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이종섭 대사를 소환해 조사하라"고 꼬집었다.
법조계에선 수사 외압 의혹의 주요 피의자인 이 대사 소환 일정이나 고발 내용에 관해 대통령실이 언급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종의 수사 가이드라인이라는 우려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이 대사는 수사 단계상 마무리 단계에서 불러야 할 인물인데 '당장 부르라'는 식은 앞뒤가 안 맞는 것으로 보인다"며 "주요 피의자 소환은 수사 필요상 판단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장 이 대사가 귀국해 조사를 받는 것은 고사하고 다음 달 예정된 공관장 회의 참석을 위해 귀국하더라도 실효성 있는 조사가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이 대사에 대한 직접 조사에 나서기 전에 주변 인물들에 대한 선행 조사가 마무리될지도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지난 1월 주요 관련자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하며 수사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여전히 압수물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고 유재은 법무관리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 주요 관련자도 소환하지 않았다.
법조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고발 내용을 검증한 것과 수사를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인사 검증 기준에는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기는 힘들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은 이 대사의 출국 논란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공수처, 좌파 언론이 결탁한 '정치 공작'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실은 "공수처 수사 상황이 계속 언론에 유출되고 있다면 철저한 수사로 밝혀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수사 개시를 지시 또는 촉구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한편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공수처 관계자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