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이타와 시여'는 조선 후기문학 작품을 통해 자기 손실을 감내하면서도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와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조건 없이 베푸는 '시여'(施與)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들여다 본다.
한문학자인 저자는 '대명회전' 등 중국 사료까지 뒤져가며 전설처럼 내려오는 역관 홍순언의 선행이 허구임을 밝히고 중국 네이멍구의 소수민족인 다우르족과 어룬춘족의 호랑이 설화를 조선의 '은혜 갚은 호랑이'와 연계시키는가 하면, 허생이라는 선비를 내세워 위정자의 무능과 허위를 꼬집은 소설 '허생전'을 비롯해 전 재산을 성균관에 남긴 부호 '두금', 감사 인사도 꺼려 시장도 가지 않은 노비 의원 '응립' 등을 찾아나서며 조선 후기 문학에 담긴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낸다.
저자는 과일과 말총을 매점매석해 큰돈을 번 허생이 토지를 잃은 농민들에게 땅을 돌려주는 점을 짚으며 화폐의 의미가 '이타적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이 됐다고 평가한다.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치료해주는 '흥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심청'처럼 자기 손실에도 보상을 바라지 않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뛰어난 공감력으로 선행을 하는 행위가 조선 후기문학에서 '보상 기대 부재'를 넘어 보상 자체를 극단적으로 회피하는 인물들로 등장한다고 말한다. 때로는 베풀었다는 사실조차 잊는 '자기망각'이 남을 돕는 필수 요소 임을 짚는다.
책은 단순한 문학 그리고 역사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흉작으로 인한 기근, 대책이 없었던 질병의 유행, 백성들을 쥐어짜는 학정에 시달리던 민중이 '더불어 살기' 위한 해결책으로 이타-보상담이 만들어지고 유포되었다는 점도 들여다본다.
저자는 오늘날 욕망에 기초한 부의 축적과 제한 없는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고전문학을 통해 사유 재화의 자발적 분산, 재물의 돌고 도는 공변성을 짚어내며 우리 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정서적 공감능력, 더불어 사는 공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