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女帝의 너스레? 범접 불가 멘털! "병호 형님, 보미는 아직 젊지 않습니까?"

김가영이 프로당구 최초로 왕중왕전 2회 정상에 등극한 뒤 우승 트로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PBA

프로당구(PBA) 역사를 연일 새롭게 쓰고 있는 '당구 여제' 김가영(41∙하나카드). 역대 최초로 왕중왕전 4년 연속 결승 진출에 이어 역시 최초 2회 우승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김가영은 17일 오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SK렌터카 제주특별자치도 PBA 월드 챔피언십 2024' 여자부 결승에서 김보미(NH농협카드)를 세트 스코어 4 대 3(11:9, 10:11, 3:11, 5:11, 11:10, 11:2, 11:3)으로 눌렀다. 세트 스코어 1 대 3으로 밀린 가운데서도 연속 세 세트를 따내는 기적의 역전 우승을 이뤄냈다.

이 대회는 정규 투어 상금 랭킹 32위까지만 나서는 그야말로 왕중왕전이다. 4회째인 올해 김가영은 모두 결승에 오르는 새 역사를 썼고, 2021-2022시즌에 이어 2회 우승이라는 또 다른 역사를 세웠다. 모두 남녀부 통틀어 최초다.

실력은 물론 세계 포켓볼 정상으로 군림할 당시부터 단련해온 강한 정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가영은 포켓볼 시절 세계선수권대회, US 오픈, 차이나 오픈, 암웨이 컵 국제 오픈 등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세계 랭킹 1위를 질주했다.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은메달 2개도 수확한 김가영은 PBA 출범과 함께 3쿠션으로 전향해 역시 정상을 달리고 있다.

이날도 김가영의 강력한 멘털이 돋보였다. 김가영은 생애 첫 우승에 도전하는 김보미의 거센 도전에 고전했다. 1세트를 따냈지만 2~4세트를 내줬다. 특히 5세트 10이닝까지 6 대 10, 매치 포인트를 내줘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김가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김보미가 어렵지 않은 옆돌리기를 놓치는 등 5이닝 동안 공타로 돌아선 사이 김가영은 12이닝부터 1~3점씩 차곡차곡 쌓아 16이닝째 마침내 11 대 10 승리를 거뒀다.

여세를 몰아 김가영은 6세트 1이닝부터 2번의 뱅크 샷을 포함해 폭풍 10점을 몰아쳐 승부를 마지막 7세트로 몰고 갔다. 분위기를 완전히 바꾼 김가영은 2이닝부터 공타 없이 7이닝까지 11점을 올려 극적인 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왕중왕전에서 김보미를 상대로 신중하게 샷을 구사하는 김가영. PBA

 
경기 후 김가영은 "우승한 대회들 중 가장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사실 지는 줄 알았다. 공격도 수비도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김)보미는 훨씬 씩씩하게 문제들을 잘 해결해 나갔다"면서 "그러면서도 '나에게 기회가 오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포기하면 쪽팔리니까'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야말로 벼랑 끝에서 여제는 미소를 짓는 여유를 보였다. 이에 대해 김가영은 "사실 상황이 웃기다기보다는 이게 웃겨야 웃는 건지, 웃어야 웃을 일이 생기는 건지 솔직히 모르는 일"이라면서 "그래서 웃어라도 본 것이고, 그러면 마음을 놓고 편안하게 칠 수 있지 않을까, 웃을 일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즐거워서 웃은 건 아니고 '그래, 인상 쓰면 뭐 하나. 그냥 한번 웃어보자, 그럼 웃을 일이 생길 수도 있지' 하는 의미"라면서 "경기가 잘 안 풀리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런 생각으로 그냥 미소 한번 지어보고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가영보다 15살 어린 김보미와 차원이 다른 멘털이다. 김보미는 패인에 대해 "경험 부족도 있었던 것 같고, 매치 포인트 순간 집중되는 카메라, 장내 아나운서 이런 주변 상황들에 너무 집중이 됐다"면서 "그런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결정적인 패인은 마지막 옆돌리기였는데 그냥 편하게 힘만 들이지 말고 치자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들어갔다"면서 "타격이 들어간 것 같은데, 그 순간 부담 때문에 어깨가 굳어 있었던 것 같다"고 입맛을 다셨다.

이날 김보미의 아버지이자 PBA 남자부 우승자 출신 김병호(하나카드)는 경기장에 오지 않았다. 팀 주장으로서 동료인 김가영과 딸의 경기였던 까닭이다. 누구 1명을 응원하기 어려웠을 터.

이에 대해 김가영은 "사실은 꼭 뵙고 싶었다"고 웃으면서 "경기장에서 병호 형님과 장난을 많이 치는데 오늘 '지켜보고 있다'(제스처를 취하며)고 '나 응원하라'고 농담을 하려고 했다"고 귀띔했다. 이어 "차마 못 오시겠다고 하시던데 나도 (같은 입장이면) 그럴 것 같다"면서 "만약 내 제자와 내 팀원이 경기를 한다면 못 올 것 같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가영은 "죄송합니다. 병호 형님, 보미는 아직 젊지 않습니까?"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벼랑에서도 웃으며 여유를 찾고 기적의 역전 우승을 이룰 수 있는 여제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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