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프로당구(PBA)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선 '슈퍼맨'이 올 시즌에도 최강임을 입증했다. 조재호(NH농협카드)가 역대 최초로 왕중왕전 2연패를 달성했다.
조재호는 17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SK렌터카 제주특별자치도 PBA 월드 챔피언십 2024' 남자부 결승에서 다비드 사파타(스페인∙블루원리조트)를 제압했다. 풀 세트 끝에 5 대 4(15:8, 7:15, 15:4, 14:15, 15:11, 10:15, 15:14, 0:15, 15:6)로 이겼다.
PBA 최초의 2연속 월드 챔피언십 우승이다. 여기에 조재호는 우승 상금 2억 원을 거머쥐며 올 시즌 '제비스코 상금 랭킹' 종전 3위에서 1위(3억1900만 원)로 껑충 뛰어올랐다.
조재호는 지난 시즌을 자신의 시즌으로 만들었다. 개막전과 정규 투어 최종전, 왕중왕전까지 3승을 거두며 PBA 남자부 대상을 차지했다.
그런 조재호는 올 시즌 개인 투어에서 다소 주춤했다. 6개 투어까지 8강 진출 2회가 전부였다. 지난 시즌 너무 에너지를 쏟아부어서라는 평가가 나올 만했다.
하지만 조재호는 시즌 7차 투어인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 우승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더니 시즌을 마무리하는 왕중왕전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날 우승으로 조재호는 2년 연속 최우수 선수를 확정했다.
비결이 있었다. 조재호는 우승 기자 회견에서 "사실 제주도 처음 올 때부터 예선만 통과하자는 마음이었다"고 귀띔했다. 대회 전 아내에게 "지금까지 왕중왕전 2연패를 한 사람이 없지 않았느냐"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조재호의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조재호는 "아내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록을 갖고 싶었고 (PBA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기록을 갖고 싶었다는 생각은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래도 명색이 지난해 우승자인데 예선은 통과해야겠다 생각했기에 예선전이 제일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우승을 위해 조재호는 이번 대회 기간 철저하게 루틴을 지켰다. 조재호는 "12일 동안 똑같은 삶을 살았다"고 운을 뗐다. "눈 뜨고 첫 끼와 훈련, 낮잠 시간까지 똑같이 맞췄다"면서 "경기 4시간 전 도시락을 주문해 식사하는 것도 같았다"고 털어놨다.
평소 식도락가로 유명한 조재호로서는 쉽지 않은 자기 통제였다. 조재호는 "워낙 먹는 걸 좋아하는데 예선 기간에는 보말 칼국수, 전복, 성게죽, 흑돼지 등 제주 음식들을 다 찾아서 먹으러 다녔다"면서 "하지만 토너먼트는 자제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재호는 "그리고 경기 시작 4시간 전에는 무조건 한 도시락 전문점의 특정 메뉴를 12일 동안 먹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징크스 때문이다. 조재호는 "화장실을 가도 특정 자리에서 일을 해결해서 이겼으면 그 자리만 간다"면서 "도시락도 마찬가지로 특정 메뉴(진달래)는 되는데 다른 메뉴(백합)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루는 근처 도시락 전문점이 문을 닫았길래 다른 지점으로 가서 똑같은 메뉴를 사왔다"고 귀띔했다.
사소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중요한 부분이다. 야구 김성근 감독이나 테니스 라파엘 나달(스페인) 등 다른 분야에서도 정상에 오른 인물들이 자신만의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는 경우가 많다. 조재호 역시 실력뿐만 아니라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적인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섬세함으로 정상에 오른 것이다.
조재호의 습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동료들도 최근에는 달리 보는 눈치다. 조재호는 "(김)민아가 루틴에 대한 얘기를 하면 처음에는 '오빠나 하세요' 하고 신경쓰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주입식으로 계속 했더니 이제는 '괜찮은 것 같다'고 하더라"고 미소를 지었다. 한국 당구 역사를 새로 쓴 슈퍼맨의 또 다른 힘, 철저한 자기 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