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친일·좌익 오간 함세덕 희곡 '고목' 연극으로 본다

극단 돌파구가 공연하는 연극 '고목' 연습 장면. 극단 돌파구 제공
극단 돌파구는 함세덕의 희곡 '고목'을 오는 26일부터 31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2023년 한국연극인복지재단과 중랑문화재단이 공동 기획한 '망우열전'에서 낭독공연으로 먼저 선보였다. '망우열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 시대에 세상을 떠나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들어 있는 문화예술인 16인의 작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함세덕 작가도 이들 중 한 명이다.

'고목'은 한국 근대연극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극작가 함세덕(1915~1950)의 희곡이다. 1944년 일제강점기에 '국민문학'에 발표한 단막극 '마을은 쾌청'을 개작해 해방 후인 1947년 4월 '문학'에 3막극으로 재발표한 작품이다.

격변기의 사회 상황 속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함세덕은 일제 말기에는 친일 작가로 활동했고, 광복 이후에는 남한에서의 좌익연극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월북을 선택했다. 과거 연극사에 배제됐다가 1988년 월북작가 해금 조치 이후 재평가됐다.

일관되게 설명하기 어려운 그의 행보와 희곡 세계는 당시 우리나라가 처해 있던 역사적 상황과 철저하게 맞물려 있다. 오늘의 역사적 관점에서 쉽게 상상하기 힘든 '항일, 친일, 좌익'이라는 양극단의 관점을 오간다.

희곡은 마을 지주인 박거복의 고목을 둘러싼 갈등을 통해 해방 직후 미군정기에서 벌어지는 계급 갈등, 지주와 정치 세력의 결탁을 형상화했다. 고목이 상징하는 바를 명료하게 드러내면서도 당시의 정치적 이념과 경제, 세대간 긴장과 대립이 거복을 둘러싸고 치밀하게 전개된다.

연극은 극단 돌파구가 시작하는 '고전의 미래' 시리즈 첫 번째 작업이다. 해방 직후 사회가 극심한 혼란과 첨예한 갈등을 겪는 가운데 민중들의 의견과 입장 차이를 토론 형식으로 보여준다.

'고목'의 배경이자 발표 시기인 1947년부터 2024년까지, 8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자본주의의 끝에 와 있는 2024년, 우리는 함세덕의 텍스트에서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전인철 연출가는 이번 연극을 "세대 갈등과 교체, 함께 나누는 삶, 손상된 몸, 전염병 이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연극과 방송 등에서 활약해온 김정호, 조영규를 비롯 김영노, 김은희, 김민하, 안병식, 이진경, 윤미경, 조어진, 황성현까지 10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여기에 30여 명의 코러스 배우들이 사전 녹음한 군중들의 만세 소리와 환호성이 극장 전체에 울려 퍼지면서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30일 오후 7시 공연 이후 함세덕의 '고목'에서 드러나는 여성, 전쟁 난민, 장애를 동시대의 관점에서 다시 읽어내는 관객과의 대화를 마련한다.
극단 돌파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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