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얼마나 내고, 받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인 국민연금 개혁안(案)이 큰 틀에서 2가지 선택지로 압축됐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에서 뚜렷한 성과 없이 공전했던 연금개혁이 가입 당사자인 국민들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지난해 10월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인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은 현행 9%인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제 외 구체적 모수개혁안은 전무해 '맹탕'이란 비판이 거셌다.
올 1월 말 공론화위원회 가동에 들어간 연금특위는 조만간 꾸려질 시민대표단 투표를 거쳐 '많이 더 내고 더 받기' 또는 '조금 더 내고 지금 그대로 받기' 중 최종 단일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1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 의제숙의단은 지난 8~10일 서울 서초구 한 호텔에서 진행된 워크숍을 통해 공론화에 부칠 굵직한 질문들을 7가지 의제별로 추렸다.
각 주제로는 연금개혁의 '알맹이'라 할 수 있는 요율 및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을 포함해 연금 가입연령 상향과 수급개시연령,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관계 등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합숙 방식으로 진행된 워크숍에서는 이해관계자 34인과 연금 전문가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험료율 13%(현재 대비 4%p 인상), 소득대체율 50%(10%p↑) △보험료율 12%(3%p↑), 소득대체율 현행 40% 유지 등 2가지 방안(전자 1안, 후자 2안)이 제시된 것으로 파악됐다.
어느 쪽이든 현 59세인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 상한은 실제 연금 급여를 받게 되는 시점에 맞춰 64세로 올리기로 했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수급개시연령(62세)이 회원국 평균치(2020년 기준 64.2세)보다 낮은 편이라고 지적하며, 2035년 이후에도 만 65세에서 67세까지 점진적 상향을 권고한 바 있다.
근로자와 사용자, 청년, 지역가입자, 수급자 등의 대표 격으로 구성된 의제숙의단은 주제마다 참여 조를 바꿔가며 토론한 뒤, 찬반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의견에 찬성하는 인원이 위원회가 정한 최소 명수를 채우지 못하거나 복수의 대표자그룹이 동의하지 않으면, 해당 안은 자동 폐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정해진 2안 중 지금보다 '더 많이 내고, 더 받는' 안(1안)은 전문가 중심의 논의가 전개된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가 제시한 방안과 겹친다. 당초 재정안정론과 보장강화론으로 양분돼 갈등했던 민간자문위가 내놓은 최종안은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와 '요율 15%·소득대체율 40%', 2가지였다.
다만, '받는 돈'을 유지하는 2안의 경우, 보험료 인상 폭은 자문위 안보다 다소 낮아졌다(6%p→3%p).
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시나리오(보험료율 대폭 인상)가 배제된 데엔 지역가입자 이상으로 경영계의 반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금특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은 전임 정부 때도 보험료를 올리는 데 끝까지 반대했다"며 "이번에 최소 12%까지 올리는 데 합의해준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물가·고금리로 지갑이 얇아진 상황에서 '더 내는' 안이 부담스럽기는 노동계도 마찬가지였지만, 고통 분담 차원에서 요율 인상 자체엔 큰 이견이 없었다는 전언이다.
보건복지부는 일단 표면적으로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개혁안에 대해 공식 입장이 없다. 공론화가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며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 등 '재정 안정'에 방점을 찍어온 만큼 내부에선 공론화위 안이 고갈시점을 7~8년 늦추는 데 그친다는 우려(1안은 2062년, 2안 2063년 예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현행 연금제도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 소진될 것으로 추계한 바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이르면 다음 주 후반 시민대표단 500명을 최종 선발할 계획이다.
대표단에게는 자체 학습을 위해 복지부가 정리한 숙의 자료집이 전달된다. 이들은 내달 13~14일, 20~21일 등 4번에 걸쳐 KBS가 생중계하는 TV 토론회에서 주요 의제들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
연금특위는 이같은 논의 결과를 토대로 가급적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 전 연금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양대 노총과 참여연대 등이 모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지난 12일 논평을 내고 "의제숙의단 워크숍을 통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이 다시 한 번 중요한 의제임이 확인된 점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총선을 앞둔 시점, 짧은 기간으로 진행되는 '공론화'라는 한계 속에 이제 시민대표단의 숙의 과정이 남아 있다"며 "더 많은 시민에 대한 적정한 노후소득 보장, 보험료 인상에 국한되지 않고 국고 등 다양한 재원 확보 및 사회투자를 통한 기여기반 강화에 대한 폭넓은 동의를 바탕으로 한 연금개혁 내용이 도출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정치권이 감당해야 할 묵은 숙제를 시민에게 '떠넘겼다'는 비판도 여전히 제기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007년 국민연금법 개정 이후 20여 년 가까이 이어진 개혁 논의에서 정부와 전문가들도 합의하지 못한 문제를 시민대표단을 모아놓고 결론을 내겠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구조개혁을 위한 대안을 정부가 먼저 마련해야 한다"며 "국민이 돈을 더 낼지, 적게 받을지 단편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퇴직연금과 특수직역연금 등 공적연금체계를 어떻게 재구조화할 것인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