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침체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으면서 건설업계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총선 이후 건설사들이 줄도산 할 것이라는 이른바 '4월 위기설'에 대해 금융당국은 "실체가 없다"며 일축하고 나섰지만 건설업계는 잇달아 회사채를 발행하고, 회사채 발행에 실패할 경우 보유 자산을 매각하며 현금을 마련하는 등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지난달 29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새천년종합건설에 대해 최근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포괄적 금지명령은 정식으로 회생 절차를 시작하기 전 당사자의 자산을 모두 동결하는 것이다. 새천년종합건설은 시공능력평가 순위 105위의 업체다. 앞서 지난달 선원건설·송학건설·세움건설·중원건설 등 건설사 7곳이 법정관리 신청 후 포괄적 금지명령을 받았다.
중소 건설사들이 연이어 문을 닫고 있는 것은 건설 업계의 주요 자금 조달 경로였던 PF를 통한 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PF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은 가운데 미국발 '고금리 쇼크', 이에 따른 경기 침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시공능력평가 10위권의 태영건설이 워크아웃 신청까지 더해지며 부동산 PF 시장 내 신규 자금 조달이나 기존 대출금 차환 여건이 크게 악화됐다. 이런 가운데 분양시장까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건설사들의 유동성 확보는 종전보다 크게 어려워졌다.
PF를 통한 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리면서 건설사들은 잇따라 회사채를 발행하며 대응하고 있다.
최근 회사채 발행에 나선 현대건설(시공능력평가순위 2위)과 SK에코플랜트(9위), 롯데건설(8위) 등 대형 건설사는 수요 예측에 목표액이 넘는 매수 주문을 받으면서 연 4% 대의 비교적 낮은 금리로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대우건설(3위)은 싱가포르에서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신탁펀드로 설립된 신용보증투자기구(CGIF) 보증으로 대규모 채권을 발행했다.
반면 중견 규모 이하 건설사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중견건설사인 HL D&I한라(30위)는 지난달 말 회사채 발행으로 700억원을 조달하고자 수요예측을 실시했지만 전액 미매각 됐고, 이수건설(80위)과 SGC이테크 건설(34위)은 연 8%대 고금리를 제시하며 회사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건설사들은 보유 자산을 담보로 잡거나 사업을 매각하며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신세계건설(32위)은 경기 여주시 자유CC, 트리니티클럽, 하남·고양·안성 스타필드의 아쿠아필드·조경사업 등을 신세계그룹 조선호텔앤리조트에 매각해 1800억원을 확보했고, KCC건설(24위)은 서울 강남 본사 사옥을 담보로 625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건설사들은 이런 상황을 실시간으로 시장에 전하며 혹시 모를 유동성 위기설 확산을 경계하고 나섰다.
코오롱글로벌은 이날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대전봉명 사업장에 대한 최종 기표를 마치고 본 PF로 전환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대전봉명 사업장은 코오롱글로벌 미착공 우발채무 현장 중 40%를 차지하는데 이런 현장에 대한 자금조달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며 우발채무 리스크에 대한 시장의 불안을 불식시키겠다는 의도다. 대형건설사들도 최근들어 자사 유동성 확보 방안을 분주하게 전하고 있다.
보수적 수주로 불확실한 시장에 대응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DL이앤씨는 올해 목표 수주액을 지난해 수주액(14억8894억원)보다 20% 가량 낮은 11조6천억원으로 잡았다.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등 다른 대형 건설사들도 수주 목표치를 두 자릿수 이상 하향 조정했다.
확산되는 건설 업계의 위기감에 대해 금융당국은 '실체가 없다'며 불안감 확산을 경계하고 나섰다. 금융감독원 이복현 원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시스템적으로 어떤 쏠림으로 인해 경제 주체 전체에 대한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라고 하면 '4월 위기설'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일축했다.
국토교통부도 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부동산 PF시장 연착륙을 위한 공적보증 확대와 공사비 상승으로 인한 공공공사 유찰 및 민간공사 공사비 분쟁 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논의하며 위기설 확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현 상황에 대한 위기감은 업계가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고 살아남았던 건설사들, 특히 기초 체력이 탄탄한 건설사들은 최근 악화된 자금 조달 환경이 큰 타격을 주지는 않겠지만 지방 중소 건설사들은 분양 시장 침체 등과 맞물려 쉽지 않은 상황일 것"이라면서도 "대형사들도 유동성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위기설에 대한 과도한 우려는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4월 위기설'은 예견된 위기이고, 예견된 위기가 현실화한 적은 거의 없다"며 "지난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전까지 호경기였던 시장 상황 속에서 과도하게 사업을 확대하거나 리스크 관리를 충분히 하지 못한 건설사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이를 업계 전체에 대한 위기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