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외압' 핵심 인물들 뿔뿔이…공수처 "원칙대로" 같은 말 되풀이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주호주대사 부임
신범철 전 차관·임종득 전 국가안보실2차장, 총선 출마
공수처 "추가 대면 조사 반드시 필요…소환조사 원칙"
더딘 수사 속도…1월 압색 압수물 포렌식 분석도 '아직'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핵심 관련자 확보에 난항을 겪으면서도 "원칙대로 대응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핵심 피의자로 거론되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주호주대사로 부임해 출국했고 신범철 전 차관과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은 총선 출마를 확정했다. 여기에 공수처는 지휘부 공백 사태에 빠진 상태다. 공수처가 수사 의지나 동력마저 잃을 수 있는 위기에 놓였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공수처 관계자는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 전 장관에 대해 "반드시 추가 대면조사가 필요하다"며 "수사팀의 입장은 확고하다. 소환조사가 원칙"이라고 밝혔다. 이달 4일 외교부의 주호주대사 임명 발표부터, 7일 공수처에서 이뤄진 4시간가량의 소환조사, 8일 법무부의 출국금지 해제 결정, 10일 출국에 이르기까지 지난 일주일간의 논란 이후 내놓은 첫 공식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물리적 거리는 있지만 외교관들도 국내로 들어올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저희도 소환을 적극 하겠다는 게(의지가) 있기에 (소환조사가)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여러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대한 (수사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이 전 장관이 추가 조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한 내용을 수사기록에 다 남겼다고도 했다.

공수처가 추가 소환 의지를 분명히 밝혔지만, 수사 곳곳은 '구멍'이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이 지난 소환조사에서 본인의 입장이 담긴 진술서와 휴대전화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전화는 피의사실이 있었던 지난해 7월 말 사용하던 전화가 아니라, 이후 교체한 새 전화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전 장관이 당시 사용하던 업무수첩을 폐기한 사실도 알려져 논란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 같은 의혹의 사실관계 확인 요청에 "수사 상황 확인이 어렵다"면서도 "피의자가 본인의 휴대전화와 업무수첩을 폐기한 건 증거인멸(죄)에 해당하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형법상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이를 시도한 정황에 해당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그런 부분까지 판단하거나 하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수처 측 답변이 피의자인 이 전 장관의 입장을 대변한 꼴이어서 부적절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형법상 죄가 성립되지 않으니 확인조차 하지 않겠다는 취지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또 수사기관이 대안 없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이 전 장관만을 바라보겠다는 것 아니냐는 취지다.

연합뉴스

공수처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는 해당 사건을 배당받아 약 7개월째 진행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진척 상황은 없다. 공수처는 지난해 9월 사건 접수 후 넉 달 만인 올해 1월 첫 실시한 해병대 사령부와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자료도 아직 '분석 중'이며, 유재은 전 법무관리관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등 당시 압수수색 대상자 소환 조사도 계획된 바 없다는 설명이다.

더딘 수사는 법무부가 출국금지를 해제하는 빌미가 됐다. 법무부는 이 전 장관 출국금지 해제가 재차 논란이 되자, 전날 밤 '사건 접수 이후 출국금지 조치가 수회 연장됐음에도 단 한 번의 소환조차 전혀 없어 출국금지 조치를 유지할 명분이 없었다'며, 공수처의 부실 수사를 에둘러 지적했다. 이에 대해서도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로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에 따라서 수사를 진행해 왔다"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공수처가 이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출국금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신 전 차관은 이번 총선에서 여당의 천안갑 후보로, 임 전 안보실 2차장은 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 후보로 확정됐다. 당선 시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 '방탄 배지'를 달게 된다.

차기 공수처장 최종 후보 지명권을 쥔 윤석열 대통령의 장고(長考) 역시 공수처 수사에 힘을 빼는 부분이다. 국회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는 올해 1월 말부터 이어진 공수처 지휘부 공백 사태 해결을 위해 지난달 29일 가까스로 2명의 후보자를 의결해 추천했지만, 윤 대통령은 열흘이 넘도록 지명을 미루고 있다. 공수처 피의자 이 전 장관을 호주 주재 특임공관장으로 임명해 신임장 수여식도 생략하고 일사천리로 부임시킨 것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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