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복원' 공약을 내걸면서 경찰이 난감해졌다. 3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대공수사의 첫걸음을 뗐는데, 선거 결과에 따라 그간의 노력과 준비가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한 비대위원장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은 이번 4월 목련이 피는 총선에서 승리한 다음 바로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회복하는 법률 개정안을 내고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대공수사권은 원래 국정원의 전담 업무이기는 했다. 그러나 2013년 당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에게 간첩 혐의를 씌우려 증거를 조작했던 이른바 '간첩 조작 사건' 등으로 물의를 일으켜 개혁의 대상이 됐고,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국민의힘은 61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까지 진행하며 저항했지만, 민주당이 당시 범여권과 무소속 의원들의 표까지 끌어내며 가까스로 개정안을 처리했다.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이양 받도록 허락된 준비 시간이 바로 지난 3년. 경찰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대공수사 업무에 착수위해 관련 예산과 인력을 대폭 늘리고, 조직개편까지 단행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올해 안보 수사 역량 강화 예산으로 345억 1천여만 원이 배정됐고, 관련 정보 활동 예산으로 49억여 원이 편성됐다.
경찰청에는 안보수사심의관을 단장으로 한 안보수사단이 구성돼 142명이 배치됐다. 종전 49명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각 시도청에도 안보수사대 수사관을 1127명까지 늘렸고 이 가운데 순수 대공 수사 인력만 700여 명이다. 이전 400여 명보다 약 75% 늘어난 결과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해 말 신년사를 통해 "경찰 중심의 안보수사체계 원년을 맞아 안보수사 역량을 근원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며 "'혹시나' 하는 시선이 있다면 '역시나 경찰이라는 확인'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비대위원장의 공약 발언으로 그간 경찰과 유관 기관들이 기울였던 노력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상황에 놓였다.
한 안보수사 경찰관은 "대공수사권이 우여곡절 끝에 경찰로 이관됐다. 그러면 수사의 성과 등을 보고 판단해야지 갑자기 명분도 없이 대공수사권을 다시 이전하겠다는 공약이 당황스럽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이 흔들리니까 직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다른 정보과 경찰관은 "지금 정부여당의 (대공수사권 관련) 기조에 불만이 있지만 밖으로는 말을 못하는 분위기"라며 "정권에 따라 이런 중대한 정책들이 자주 바뀌니까 일선에서는 답답하고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다시 국정원법을 개정해야 한다. 법 개정에 필요한 의석 수는 180석 이상이다. 국민의힘이 압도적인 의석 수를 확보해야 가능한 공약이다.
2020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찬성 180명, 반대 3명, 무효 3명으로, 의결 정족수가 가까스로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