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마음은 덕후가 잘 안다고 했던가. '오컬트 장인'의 또 다른 말은 '오컬트 덕후'였다. 한 길 오컬트 외길만을 걸어 온 장재현 감독이 야심 차게 내놓은 '파묘'는 스크린 안팎에서 오컬트, 역사, 캐릭터 등 다방면 덕후들의 마음을 제대로 뒤흔들어 놨다. '검은 사제들'에서 로만 칼라의 새 기준을 만들며 '강동원 후광' 효과를 선보이더니, '사바하'에서는 각종 종교는 물론 한국의 사회문화 기저에 숨은 코드를 넣으며 다시 한번 덕후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파묘'는 '묘벤져스'라 불리는 상덕, 영근, 화림, 봉길 4인방에 대한 각종 이야기를 파헤치고 만들어내게 한 것은 물론 스크린 밖에서는 '바오민식' '키티민식' 등 다양한 '민식 꾸미기'의 재미까지 알려줬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의 오컬트적인 요소를 알뜰살뜰 끌어모으고, 역사적인 요소까지 곳곳에 녹여내며 '덕후 만만세!'를 외치게 했다. 과연 어떤 요소들이 덕후들을 저격한 것일까. [편집자 주]
봤니? 봤어? 봤냐고!…관계성 맛집 '묘벤져스'
최영주 기자(이하 최)> '파묘'는 '검은 사제들'의 캐릭터성과 '사바하'의 마니악한 점을 모두 가진 영화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최부제처럼 캐릭터가 가진 매력, '사바하'처럼 오컬트 마니아의 탐구심 내지 덕후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전문적인 요소와 다양한 상징성이 '파묘'에 다 있다.특히 '파묘'는 '묘벤져스'라는 신조어와 후속편에 대한 갈증, '장재현 유니버스' 속 캐릭터들로 만든 팀업 무비에 대한 요청이 이어질 정도로 캐릭터의 매력과 케미가 상당하다. '검은 사제들' 때도 느꼈지만, 감독이 어떻게 하면 캐릭터로 덕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 있는지 잘 아는 거 같다.
상덕-영근 콤비, 화림-봉길 콤비가 가진 케미는 물론 화림과 봉길의 관계성에 관한 이야기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화림과 봉길의 경우, 대살굿을 앞둔 화림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봉길의 모습이 둘의 관계성에 불을 붙이며 '과몰입러'를 양산하고 있다. 애정인가, 사제의 정인가, 하는 거다. 아무래도 실존 인물인 윤봉길 의사와 이화림 선생께서 독립운동 당시 부부로 가장했다는 일화가 더해지며 과몰입을 돕는 것 같다.
유원정 기자(이하 유)> 화림-봉길 콤비의 관계성은 그야말로 산삼처럼 '귀하다'. 없으면 아예 없었지, K-콘텐츠는 보통 로맨스면 선명하게 딱 '로맨스'로 풀어나간다. 그런데 '파묘'에서는 마치 덕후들의 마음을 사전에 파악한 것처럼 상상의 여지를 아주 넓은 공백으로 만들어 놓았다. 알겠지만, 바로 여기에서부터 덕후의 '과몰입'이 시작된다. 대놓고 90%, 100% 보여주는 것보다 자기 혼자 공백을 채워갈 수 있어야 덕후의 심장이 뛰는 법이다. 화림-봉길은 화림이 신내림을 받은 봉길을 거둔 것도 그렇지만, 봉길이 위기 상황 속에서 화림을 지켜내면서 서로의 '구원 서사'를 완성한다.
상덕-영근 콤비는 생활감과 코믹함이 어우러져 화림-봉길과는 또 다른 맛집이다. 화림-봉길이 MZ 관객들을 겨냥했다면 상덕-영근 콤비는 중년 이상 관객층에게 어필했다. 이들 '묘벤져스'의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만약 두 콤비 중 어느 한 쪽만 있었다면 영화의 매력이 절반으로 반감됐을 것 같다. 또 이처럼 다른 세대의 콤비들이 유구한 '유교 정서'를 이겨내고 어떻게 한 팀을 이룰까 싶었다. 포스 넘치는 화림-봉길과 수더분한 상덕-영근이 티격대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에서 반대가 통하는 이유를 실감했다. '파묘'는 '묘벤져스'를 통해 완벽해졌다.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극 중 열연과 팬서비스 등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면서 자연스럽게 '이순신 3인방'의 '장재현 유니버스 노 웨이 홈'에 대한 농담 같은 바람이 나오는 것 같다. '노량' 이순신인 김윤석은 '검은 사제들'로 장재현 감독과 작업했고, '명량' 이순신인 최민식은 이번 '파묘'로 장재현 유니버스에 입성했다. 자, 남은 건 박해일이다. 박해일까지 장재현 유니버스에 입성한 후, 이순신 배우 셋이 모이면 '이순신 노 웨이 홈'이자 '장재현 유니버스 노 웨이 홈'이 완성된다.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이처럼 '파묘' 안팎은 물론 장재현 유니버스 속 캐릭터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가 재생산된다는 게 '파묘'의 또 다른 매력인 것 같다.
한국 무속, 일본 요괴…韓日 오컬트 세계관 총집합
최> '파묘'가 재밌는 지점은 한국은 물론 일본의 전통적인 오컬트 요소까지 더해졌다는 점이다. 누레온나(濡女·젊은 여자 얼굴에 뱀의 몸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일본 요괴)와 오니가 등장하고, 여우 음양사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파묘'에서 익숙한 향기를 느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재현 감독이 정말로 '음양사' 팬이었다. 나도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 '음양사'와 '아톰' 작가 데츠카 오사무의 며느리로도 유명한 오카노 레이코의 만화 '음양사' 모두 다 읽었고 집에 소장 중이다. '음양사'는 1990년대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다. 혹시 영화 속 등장한 일본 요괴와 음양사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는지 궁금하다.
유> 일본의 음양사는 나도 알고 있었다. 일본 만화를 보고 자라난 세대라 음양사 소재 작품들을 꽤 봤다. 다만 음양사를 본격적으로 다루진 않았고, 음양사에 로맨스가 섞여 있거나 이런 식이었다. (웃음) 일본 호러는 극도의 공포감을 자극한다는 이미지가 있어, 사실 그쪽으론 눈길도 준 적 없다. 물론 그런 콘텐츠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일본 요괴에 대해 잘 알진 못한다.
아무래도 '파묘'의 핵심이 일제강점기와 얽혀 있다 보니 그 핵심에 일본 '오니'(도깨비), 즉 요괴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좀 이상한 기미를 느끼긴 했다. 숲 속을 배회하는 여우나 묘지를 정리하던 과정에서 발견된 '누레온나'(난 처음에 그냥 머리카락만 있는 뱀인 줄 알았다), 또 결정적으로 '기순애'라고 하던 스님의 이름이 일본어로 여우인 '키츠네'(キツネ)이었단 사실이 드러나면서 생각보다 심도 깊게 음양사 요소들을 넣었다고 느꼈다. 그런데 여러 요괴가 있는데 왜 하필 '오니'였을까?
최> 일본 중세 연극인 '노'(能)에서도 오니는 빠질 수 없는 대표 주자다. 오니를 원령(怨靈), 악령(惡靈), 지옥의 오니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장재현 감독은 극 중 오니를 '정령'이라 표현했다. 일본에서는 정령을 크게 신령과 원령으로 구분하기도 했고, 사물이 요괴도 변하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여우 음양사가 우리나라의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일본 장수와 칼을 이용해 일종의 '쇠말뚝' 역할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유> 결국 마지막에는 일본 음양사가 태어나게 한 '오니'와 무당 화림 그리고 풍수사인 상덕의 맞대결이 펼쳐진다. 상덕이 오니를 처치할 때, '오행'의 기운을 사용하는데 사주 볼 때 빼고는 이에 대한 지식이 제대로 없어 아쉬웠다. 어떤 기운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더 구체적으로 알았다면 영화를 재미있게 봤을 것 같다. 물론 힘으론 '오니'가 압도적이지만 그 안에는 결국 일본 음양사와 한국 무당 및 풍수사의 두뇌싸움이 펼쳐지고 있어 더욱 흥미진진했다. 이게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장면인지 궁금하다.
유> 이건 작품 외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음양사는 왜 '여우'란 동물로 상징되는 건지, 또 '오니'는 왜 현신하기 전에 도깨비불로 나타났는지 궁금증이 들었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상덕의 대사가 결국 여우(일본)가 범(한국)의 정기를 끊었다는 건데 직접 감독 인터뷰를 했으니 관객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여러 숨겨진 포인트들이 있었을 것 같다. 옆에서 공포를 이겨내기 바빴던 호러 초심자에게도 좀 귀띔해달라.
최> 일본을 대표하는 '여우 음양사'가 있다. 소설·만화 '음양사'의 주인공 아베노 세이메이다. 세이메이는 가상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로, 헤이안 시대 최고 음양사라 불렸다. 세이메이의 어머니는 여우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일본에서는 엄청 유명한 인물인데, 아무래도 '음양사'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 흔적이 엿보이는 장면 중 하나가 '험한 것'(오니)이 화림에게 은어와 참외를 요구하는 부분이다. '음양사'를 보면 세이메이가 자주 은어를 구워 먹고 물에 띄워 놓은 참외를 먹기도 한다. 사실 은어는 먼 옛날부터 일본인이 즐겨 먹던 생선이기도 하다. '도깨비불' 역시 여우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도깨비불'을 일본에서는 '여우불'(키츠네비)이라고 한다. 여우 음양사가 만든 일본 도깨비, '오니'가 '여우불'의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에도 알고 보면 재밌는 포인트가 있다. 극 중 봉길이 끊임없이 되뇌는 위도와 경도를 실제 지도에서 검색하면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향로봉이 나온다. 실제로 백두대간의 '허리' 지점이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의 그 '허리'에 해당한다.
한 줄 평
유> 덕후(장재현 감독)가 덕심을 안다. 오컬트의 대중화가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최>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세계는 '파묘' 전후로 나뉠 것이다.
<부록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