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 사직 공모'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9일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의협) 전(前) 회장을 소환한다. 더 나아가 경찰은 의협이 이른바 '전공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문건과 관련해서도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전공의 집단사직에 관여했다는 혐의(업무방해, 의료법 위반 등)를 받는 노 전 회장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7일 의협 김택우 비대위원장 등 의협 전·현직 간부 5명을 전공의 집단행동을 교사하고 방조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경찰은 이들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고, 지난 1일에는 의협 비대위 지도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 내 비대위 사무실, 김 비대위원장의 자택 등지에서 의협 회의록과 업무일지, 단체행동 지침 등과 관련한 자료를 확보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6일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주수호 언론홍보위원장에 대한 조사에 이어 의협 간부에 대한 두 번째 소환 조사다.
당시 주 위원장은 10시간 가량의 경찰 조사를 받았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주 위원장은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취재진에게 "내가 아는 사실 그대로 다 말씀드렸다"며 "(경찰이) 혐의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는데 당연히 그런 사실은 없으니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밝혔다.
주 위원장은 지난 8일에도 휴대전화 포렌식 참관을 위해 경찰에 출석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같은 날 오전 의협에서 일반 사무를 맡는 전 범의료계 대책특별위원회 사무총장과 비상대책위원회 실무진 직원 2명도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경찰은 이들이 전공의들을 법률적으로 지원하면서 집단사직을 교사하고 방조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수사할 예정이다.
경찰은 나머지 의협 관계자들도 차례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김 위원장과 의협 비대위 박명하 조직강화위원장은 오는 12일 오전 10시에 소환조사가 예정됐고,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소환조사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경찰은 의협이 집단행동에 불참한 전공의 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문서가 공개되자 이에 대한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의사협회 내부 문서'라며 올라온 두 장 분량의 문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지난 8일 밝혔다.
해당 문건에는 '집단행동 불참 인원 명단 작성 및 유포'를 지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세부적으로는 "(집단행동) 불참 인원들에 대한 압박이 목적이므로 블러처리된 정보만으로 충분"하다며 "특정되는 정보는 모두 블러처리되므로 위법소지 없음"이라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앞서 의사와 의대생이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는 '전원 가능한 참의사 전공의 리스트'라는 게시물에는 전국의 70여 개 수련병원별로 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들의 소속과 등이 적혀있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에 경찰은 "복귀한 전공의 등의 실명을 게시하는 행위나 협박성 댓글은 형사처벌 될 수 있는 엄연한 범죄 행위"라며 "중한 행위자에 대해서는 구속수사를 추진하는 등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서민위) 또한 지난 8일 의협과 메디스태프를 각각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업무방해·협박 방조 등의 혐의로 고발하면서, 경찰 수사가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해당 문건에 대해 의협은 "해당 글에 게시된 문건은 명백히 허위이고 문건에 사용된 의협 회장의 직인은 위조된 것임을 확인했다"며 "글 게시자를 사문서위조, 허위사실 유포,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고소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경찰은 또 전공의 집단행동이 시작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직 전 병원 자료를 삭제하라'는 글을 온라인에 게시한 작성자에 대한 수사도 이어가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7일 "게시글 최초 작성자를 특정해 6일 피의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며 "피의자는 현재 서울 소재 의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조만간 그를 업무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한편 정부는 면허 정지 3개월의 행정처분에 이어 전공의 집단행동을 주동한 이들에 대한 경찰 고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하고,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자격 정지 또는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