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열렸던 6자회담 등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협상을 총괄하던 외교부 산하 한반도평화교섭본부가 18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7일 오후 2024년 주요정책 추진계획 관련 브리핑을 열고 "한반도평화교섭본부를 외교전략정보본부로 확대개편하고자 한다"며 "기존 한반도 업무뿐만 아니라 외교전략, 외교정보, 국제안보, 사이버 업무를 총괄함으로써 우리 외교정책이 지정학적 환경 변화에 맞추어 전략적이고 기민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2006년 만들어져 지금까지 6자회담 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업무를 전담해 왔다. 현재는 한반도본부 휘하에 북핵외교기획단과 평화외교기획단이라는 2가지 국(局)이 존재하는데, 개편되는 외교전략정보본부는 휘하에 외교전략기획관, 외교정보기획관(신설), 한반도외교정책국(가칭), 국제안보국(가칭) 4개 국 체제로 운영된다.
새로 생기는 '외교정보기획관실'은 미 국무부의 정보조사국(INR)을 참고해 전 세계 공관에서 보내는 각종 전문 등을 첩보(information)으로 활용, 이를 분석·평가 과정을 거쳐 정보(intelligence)로 생산해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주요 정책 결정자들에게 적시에 정보를 제공하며, 궁극적으로 기업 및 관련 업계 대국민 서비스 제공까지 염두해 출범시키려 한다"며 "공개·비공개·비밀 등 수집하는 첩보는 많은데, 이를 충분히 전략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예를 들어 국제안보 또는 인도-태평양 지역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 등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외교정보기획관을 신설하면서 정보 기능을 보좌받게 된다"며 "기존 한반도본부장의 업무 영역이 넓어지고 보다 포괄적인 보좌를 받으면서 종합적인 시각에서 좀 더 정교한 포지셔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전략정보본부 산하 '국제안보국'은 기존 2차관실 산하에 있던 원자력·비확산 등의 업무를 흡수해 출범하게 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20년 동안 북한 문제가 핵 미사일 위협뿐만 아니라 그를 위한 자금조달을 위한 대응, 금융제재 등으로 다양화됐다"며 "국제안보국은 군축, 비확산, 사이버(안보) 등 외교부 내 산재돼 있던 업무를 총체적으로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외교를 다루는 조직이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이 지휘하던 '평화교섭본부'에서 실무자인 국장이 지휘하는 '외교정책국'으로 격하되는 일은 함의가 작지 않다.
비록 북핵수석대표는 기존과 같이 외교전략정보본부장이 맡는 형태이나, 본부장은 '한반도' 문제뿐만 아니라 전략기획, 정보분석, 군축·비확산·사이버 등 다른 업무도 맡아야 하는 만큼 한반도 문제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실제로 외교부 당국자도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고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며 "인원은 그대로이지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비핵화 협상이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개편안이 우리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주오사카 총영사를 지낸 한반도 전문가인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는 "남북관계를 국제안보적 차원에서 바라보게 되는데, 비판적으로 본다면 우리의 주도성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며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주도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어려웠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국제안보 차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측면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그러면서도 "외교부는 그전에 중장기 전략 기획이나 (정보) 데이터베이스 축적 능력이 약했다"며 "우리나라의 국력이 커지면서 외교의 역할과 비중도 커지는데, 이를 제대로 감당하는 능력과 함께 남북한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측면에서도 동아시아 또는 세계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2대 한반도본부장을 맡았던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사는 "한반도본부가 개편됐다기보다는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졌고, 한반도본부가 하던 기능이 조금 남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두고 대화·협상을 할 여건이 아니니 정세 변화에 따라 조직도 적응해야 하고 조정해야 하는 건 맞지만, (북핵 협상) 기능은 수행할 수 있어도 조직 전체의 성격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된다"고 진단했다.
조 장관은 브리핑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에 "변화하는 국제지정학적 환경에 맞춰 우리 시스템을 바꾸는 작업이고, 한반도평화교섭본부를 줄인 게 아니라 늘렸다고 생각한다"며 "변화하는 환경과 또 변화하는 북핵 문제의 속성, 그런 것들을 다 감안한 조직 개편이라서 부정적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적시성을 가진 조직 개편이라고 설명드리고 싶다"고 답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내부적으로는 올 상반기에 조직 개편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유관부처와 협의하고 있다"며 "국의 이름은 최종 확정된 것이 아니며, 유관부처 협의 과정에서 명칭이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외교전략정보본부장직은 원래대로라면 김건 한반도본부장이 그대로 맡을 예정이었지만 얼마 전 그가 22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 인재로 영입되는 바람에 현재 공석인 상황이다. 김 전 본부장의 직무대리는 이준일 현 북핵외교기획단장이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