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을 위한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이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전체 지역구 254곳 중 48곳이 '전략 지역'으로 지정된 것으로 7일 집계됐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전체 선거구의 20% 이내(최대 50곳)를 전략 공천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데 그중 96%를 활용했다. 전략 지역 지정을 거의 최대한 활용한 셈이다.
전략 지역에는 해당 지역에 예비 후보로 등록하지 않은 영입 인재 등 새로운 인물을 공천할 수 있다. 때문에 지역의 유력 후보가 갑자기 공천에서 배제되는 일이 다수 발생했다.
이는 '새 물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물갈이'를 '공천 혁명'이라고 자평한 이재명 대표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혁신의 반대급부로 '사천(私薦) 의혹'의 불씨가 됐다.
민주당 '시스템 공천' 속 전략공천…당 대표 의중으로 해석
민주당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 전략공천관리위원회, 공천관리위원회 등 복수의 공천 기구를 마련했다. 공관위로 일원화된 국민의힘과 다른 지점이다. 당 대표 및 지도부의 공천 권한을 여러 갈래로 분산하는 시스템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가능하게 만들겠단 취지다.
그중 전략공관위는 각종 적합도 조사와 당무감사 등을 바탕으로 선거 전략상 특별히 고려가 필요한 선거구 및 후보자를 선정한다. 검증위 단계에서 공천 배제되거나 불출마 등으로 현역이 공석인 곳, 혹은 후보자의 본선 경쟁력이 현저히 낮은 선거구 등이 통상 전략지로 정해진다. 그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전략공관위 위원들의 3분의2 이상 동의로 전략지를 지정할 수도 있다.
민주당 내에선 특히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번 총선을 앞두고 시스템 공천이라는 미명 아래 당 대표의 자의적인 전략공천이 행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당헌 87조에 따르면, 당 전략공관위는 전략지 및 후보자 심사 결과를 당 대표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 대표와 안규백 전략공관위원장이 직통 체계를 갖추고 있단 뜻으로, 전략공관위의 결정은 사실상 당 대표의 의중으로 해석되는 구조다.
민주당은 공천이 시작되고 현재까지 기동민(재선), 노웅래(4선), 이수진(초선), 홍영표(4선), 김민철(초선), 안민석(5선), 변재일(6선) 등 현역 의원 지역구를 전략지로 선정했다. 자진 불출마한 인재근(3선), 소병철(초선), 황운하(초선) 의원 등은 제외된 분류다.
전략 지역으로 선정된 당사자들은 반발했고, 일부는 탈당을 감행했다. 이에 임혁백 공관위원장은 "일부 의원들이 선당후사 정신으로 자기희생을 하려 하지 않아 혁신 공천의 속도가 붙지 않았고 통합보다 분열의 조짐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홍영표·임종석 경선 원천 배제 이유 불명확…사천 의혹 불씨
가장 논란이 된 곳은 '친문재인계 핵심' 홍영표 의원 지역구인 인천 부평을이다. 전략 지역 선정 이유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공관위 관계자에 따르면 공관위가 해당 지역을 전략공관위에 넘길 땐 '외부 인사와 경선을 붙이자'는 부대의견을 달았다고 한다. 민주당에선 전략지가 되더라도 현역 의원을 포함한 '제한 경선'을 치를 수 있다. 그러나 전략공관위는 홍 의원을 경선에서 배제했다. 컷오프된 홍 의원은 지난 6일 "민주당은 총선 승리보다 반대 세력 제거에 몰두하고 있다"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홍익표 원내대표의 지역구 불출마로 전략 지역이 된 서울 중성동갑도 '사천' 의혹의 발원지다. 해당 지역 출마를 준비하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경선을 요구했지만 전략공관위는 오랜 숙고 끝에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단수 공천했다. 이 대표는 전 전 위원장을 후보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전략적, 정무적 결정은 계량적 요소가 아니고 필요에 따라 결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이유를 설명하긴 쉽지 않다"고 답했다.
아울러 전략공관위가 판단 근거 중 하나로 삼는 지역구 여론조사는 홍영표, 송갑석, 이인영 등 소위 비(非)이재명계로 분류되는 현역 의원들을 제외한 채 새로운 후보를 넣고 실시돼 논란을 낳았다. 한편에선 박광온, 윤영찬, 박용진 의원 등 비명계가 현역의원 평가 하위 점수를 받아 경선에서 감산 적용을 받기도 했다.
일련의 공천 과정에서 현 지도부에 비판적이었던 비주류를 찍어내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면서 특정 계파에 치우친 공천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지난 21대 총선 당시 전략공관위 핵심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전략공관위는 상대 당 후보를 이기기 위한 구도와 인물 등 전략을 세우는 역할을 해야지 누구를 컷오프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꽂아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성·청년 전략 지역 지정도 미리 계획을 세우고 여성위원회 등과 충분한 상의를 거쳐서 해야지 지금처럼 누구를 확 날리는 방식은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급조된 윤리 잣대에 형평성 논란도…"충분한 설명 부족"
전략 지역구 선정 기준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기동민 의원의 경우 지난해 5월 당무위원회가 이재명 대표, 이수진(비례) 의원과 함께 '부당한 정치 탄압 기소'로 규정했고 소명 절차를 거쳐 당 검증위도 통과했다. 이에 공관위는 '금품 수수 인정 여부'라는 새로운 판단 잣대를 내세워 기 의원 지역인 서울 성북을을 전략공관위로 넘겼다. 전략선거구로 지정되면 일반 공관위에 재심 신청도 할 수 없다.
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금은 기존에 해왔던 시스템과 완전히 다르다"며 "보통 10~15군데 정도를 전략선거구로 지정하는데 이번엔 칼을 어마어마하게 휘둘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2~3곳만 해도 상징적으로 보이는데 너무 많이 전략지로 지정하고 '타깃'이 분명해 보이니 혁신이 아닌 계파 학살로 보이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대표의 밀실 공천, 사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당사자들이 당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충분한 설명, 즉 투명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난 총선 때 당 공천 실무를 주도했던 한 중진 의원은 "전략공관위는 사실상 당 대표 권한이었던 전략공천을 일방적으로 의결하지 않고 더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취지"라며 "투명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당 지도부에 여전히 재량권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안규백 위원장은 통화에서 "당 전략 지역이 많이 늘어난 건 혁신적인 공천을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며 "전략공관위는 당 대표 직속 기관이긴 하지만 독립성이 있고 외부인이 60% 이상 있기 때문에 대표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민주당 공관위는 8일 오전 중앙당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그동안의 공관위 활동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이 자리엔 임혁백 공관위원장, 안규백 전략공관위원장, 조정식 당 사무총장 등이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