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전국을 돌며 진행 중인 '민생토론회'를 두고 총선을 앞둔 '불법 선거운동'이라는 야권의 비판이 여전한 가운데, 정부 부처의 업무보고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처가 사전에 준비한 업무보고 자료에 없던 내용이 현장에서 언급되거나, 토론회 당일 발표 예정이었던 정책이 갑자기 빠지는 식이다. 민생토론회 외에 별도로 진행되는 업무보고 내용은 저녁 시간대 내용이 알려지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애초 정부 업무보고를 대체해 이뤄진 민생토론회였지만 지역 현안에 기반한 내용들로 채워지면서 "선심성 공약과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설익은 대책만 남발되고 있다"는 비판이 야권으로부터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7일 인천시청에서 '대한민국 관문 도시, 세계로 뻗어가는 인천'을 주제로 18번째 민생토론회를 열고 "인천의 바다, 하늘, 땅 모두를 확실히 바꿔 놓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공약 성격의 정책을 제시했다. △2026년까지 인천국제공항 배후에 첨단 복합항공단지 조성 △5천 개 이상 일자리 창출과 향후 10년 간 10조 원 규모의 생산 유발효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과 관련 마일리지 피해 방지 △인천신항 제1부두와 제2부두에 1조 원 투자 △인천항 배후 부지에 첨단산업 공간 조성 △콜드체인 특화구역, 전자 상거래 특화구역 조성 △인천내항 재개발 △원도심 재개발에 2조4천억 원 투자 지원 등이 언급됐다.
윤 대통령은 "경인선 철도와 경인고속도로 지하화에도 박차를 가하겠다"며 "경인고속도로 지하화는 법적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한 후 제 임기인 2027년까지 착공하고, 경인선 철도 지하화는 2025년까지 전국 철도 지하화 종합계획을 마무리하고 2026년에는 지하화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인천과 서울을 삼십 분 내로 이어주는 GTX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임기 내 수인선과 경부고속철도를 연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민생토론회에는 주무 부처의 수장인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과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이 참석했다. 그런데 국토부 장관 보고에는 경인선 철도와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GTX와 관련한 내용이 빠져 있었다. 국토부가 전날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토론회 보고 자료에도 관련 내용은 없었다. 이후 국토부는 민생토론회가 끝난 뒤 4시간 넘게 지나서야 사후 브리핑 자료에 관련 내용을 포함 시켰다.
윤 대통령의 현장 언급에 맞춰 주무 부처가 뒤늦게 관련 내용을 발표한 모양새가 된 셈이다.
지난 5일 경기 광명에서 열린 '청년의 힘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연 17번째 민생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출산 지원금은 전액 비과세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발표했다.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민생토론회 이후 별도 브리핑을 열어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
해당 민생토론회를 3시간 앞두고는 국무조정실이 사전에 배포한 자료에 포함된 '청년 연령 상향 적극 검토' 정책이 돌연 삭제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최종적으로는 내용이 빠졌다"고 설명했지만, 정책이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민생토론회 외에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정부 업무보고의 경우 보고가 이뤄진 뒤 저녁 시간대 사후 브리핑을 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 24일 교육부는 '2024년 주요 정책 추진계획'을 윤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오후 7시 사후 브리핑을 열었다. 병무청은 지난 6일 올해 주요 정책 추진계획을 윤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했다고 오후 6시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렸다. 외교부는 이날 업무보고를 한 뒤 사후 브리핑을 오후 7시에 열었다.
정부 부처의 신년 업무보고는 한 해 주요 정책과 추진 계획 등이 담겨 연초 가장 중요한 행사로 꼽힌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았지만, 올해는 대통령이 국민 및 전문가들과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며 민생토론회로 정부 업무보고를 대체했다.
하지만 애초 10여 회 정도 계획됐던 민생토론회가 연장되고, 전국을 돌며 발표하는 정책도 많아지면서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공약과 설익은 대책이 남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부처 업무보고를 둘러싼 이례적인 상황과 혼선도 선거용 기획의 여파라는 주장이다.
野 "불법 관권선거" 尹 경찰 고발…대통령실 "선거 관계 없다"
야권의 시각은 민생토론회는 결국 '불법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토론회 명목으로 전국을 다니면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며 불법 관권선거를 자행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17회의 민생 토론회가 열린 지역은 서울(3회), 경기(8회), 영남(4회), 충청(2회) 등 국민의힘이 총선의 승부처로 삼는 곳과 겹친다"며 "국민의힘 총선 지원용임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선거용이라는 주장은 여러모로 잘못됐다"며 "민생 토론회는 선거와 관계 없이, 선거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민주당에서 "두 달 동안 약 925조원의 퍼주기 약속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사실 왜곡"이라며 "대부분은 자발적인 민간 투자, 또는 민자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고 중앙 재정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역 순회와 관련해선 "국민의 목소리를 청취할 수 있는 곳이라면, 우리가 굉장히 의미있는 정책을 그 장소에서 발표할 수 있을 정도로 정책의 성숙도가 무르익은 정책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민생토론회를 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