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간호사들도 8일부터는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응급약물을 투여할 수 있게 된다.
현행법상 '의사 업무'에 해당하는 수술부위 봉합과 드레싱(상처 치료) 등의 처치도 정부의 보호 아래 '합법적' 수행이 가능해졌다.
보건복지부는 7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공개했다.
정부는 전공의의 빈자리를 대체해온 진료지원인력(Physician Assistant), 이른바 PA 간호사를 포함한 간호사들의 업무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한 '개정판' 가이드라인을 전국 종합병원과 수련병원에 하달할 예정이다.
앞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공백이 커지자, 정부는 진료 차질을 막기 위해 지난달 27일부터 한시적으로 의료법상 의사 업무 일부를 간호사들에게 허용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의료계 집단행동과 관련해 보건의료 재난 위기경보 최고단계인 '심각'이 발령된 비상상황을 고려한 조치다.
의료법보다 상위법인 보건의료법 제44조에 '국가와 지자체는 새로운 보건의료제도 시행을 위해 필요하면 시범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된 만큼 충분한 법적 근거가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유사 사례로는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비대면진료를 예외적으로 허용했던 경험을 들었다.
다만, 앞서 배포된 업무지침의 경우, 대법원 판례상 명시적으로 금지된 행위는 제외한다는 원칙 외 '간호사의 숙련도·자격 등'을 기준으로 업무범위를 설정한다는 내용이 다소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대한간호협회(간협) 등은 업무범위를 좀 더 명확히 다듬고, 간호사들이 해당 의료행위로 인해 추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재확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 4일 조규홍 장관과 간협 임원진 간담회 등을 통해 관련 업무지침을 보완했다.
개정된 지침에는 △간호사에게 위임이 불가능한 업무와 진료지원 업무범위에 대한 가이드 △간호사의 숙련도 및 자격(전문간호사, 가칭 전담간호사, 일반간호사) 등을 구분해 업무범위 설정 및 의료기관의 교육·훈련 의무 등이 새롭게 담겼다.
시범사업 대상기관은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근무하는 수련병원과 의료법상 종합병원이다. 각 의료기관의 장은 '간호사 업무범위 조정위원회'를 꾸려 주요 진료과와 전담간호사(PA 간호사) 등의 참여 하에 간호부서장과 관련 내용을 반드시 협의해야 한다.
특히 종합병원의 경우, 업무범위를 자체적으로 설정한 뒤 복지부에 제출, 승인받는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업무범위는 행위의 난이도와 간호사 숙련도 등을 고려해 설정해야 한다.
정부는 의사와 간호사의 경계선에 놓인 '그레이존' 성격의 의료행위 98개를 일일이 검토해 간호사 유형별 가부를 제시했다. 검토 과정에는 간협과 병원들도 함께했다고 전했다.
이 세부기준에 따르면, 모든 간호사들은 앞으로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이나 응급약물을 투여할 수 있다. 혈액 검체채취와 심전도·초음파, 단순 드레싱(일반·시술 상처·단순 욕창 등) 등도 간호사 자격과 관계없이 가능해졌다.
다만, 최소 3년 이상의 임상경력을 보유하고 2년 이상 대학원 석사과정 이후 전문간호사 자격을 딴 전문간호사 또는 전담간호사만 가능한 행위들도 있다.
일반간호사는 위임된 검사·약물을 처방하거나 검사·판독 의뢰초안 또는 전원 의뢰서·수술 동의서·수술 및 마취기록 초안 등을 작성할 수 없다.
전문의약품 처방과 전신·척추 등의 마취, 사전의사결정서(DNR) 작성 등은 자격과 숙련도를 떠나 전 간호사가 수행할 수 없다.
시범사업 대상 병원들은 업무범위 조정위원회에서 협의된 업무 외의 일을 간호사들에게 전가하거나 지시하면 안 된다. 시범사업은 병원장의 최종 책임 아래 관리·운영되며, 원내 의사결정 과정은 문서로 남겨야 한다.
관리·감독 미비로 인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최종적인 법적 책임(행정적·민사적 책임, 형사상 양벌 책임)은 모두 병원장이 지게 된다.
각 병원들은 간호사 배치를 위한 근거(정원·배치·운영계획 등)를 문서화하고, 합당한 체계를 갖춰 간호사들의 교육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또 간호사들의 추가 업무에 대해서는 병원에서 '자체적인 보상'도 이뤄지도록 규정했다.
정부는 병원별로 마련될 위원회뿐 아니라, 복지부 내 '간호사 업무범위 검토위원회'도 구성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복지부 간호정책과를 중심으로 의학회와 간호계, 병원계 등의 인사가 참여해 각 의료기관이 행위별로 간호사의 수행 가능여부를 질의하면 신속한 판단을 돕기 위한 기구다. 병원이 설정한 업무범위도 승인한다.
아울러 이번 시범사업 결과 모니터링을 토대로 그간 암암리에 진행된 간호사의 진료지원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임강섭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지난해 6~12월 진료지원인력 개선 협의체를 6개월간 운영했다"며 "그때도 논의된 게, (불가능 행위를 규정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운영하되 (1차로 병원에 업무범위 설정 자율권을 주되) 국가적 관리·운영 체계를 갖추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전담간호사(PA 간호사)가 아니었던 분이 전담으로 채용되거나, 인력이 전환되는 경우에 대해선 저희가 추가적으로 보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