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물의 철학' 입은 국립창극단 '리어' 2년 만에 무대에

국립창극단 창극 '리어' 공연 중 한 장면. 국립창극단 제공
국립창극단 창극 '리어'가 오는 29일부터 4월 7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지난해 초연 당시 객석점유율 99%를 기록한 흥행작이다. 서양 고전을 우리 언어와 소리로 참신하게 재창조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리어'는 시간이라는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을 2막 20장에 걸쳐 그려낸다. 배삼식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글을 단순히 각색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 맛을 살려 대본을 새롭게 썼다. 원작을 보면서 '천지불인(天地不仁·세상은 어질지 않다)'이라는 노자의 말을 떠올린 배 작가는 삶의 비극과 인간 본성에 대한 원작의 통찰을 물(水)의 철학으로 불리는 노자 사상과 엮었다.

음악은 한승석과 정재일이 완성했다. 작창가 한승석은 증오‧광기‧파멸 등 비극적 정서를 담은 무게감 있는 소리를 선보이면서도 '장기타령', 서도민요 중 '배치기' '청사초롱' '투전풀이' 등 대표적인 경기민요를 차용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작품 분위기에 활기를 더했다.

작곡을 맡은 정재일은 앰비언트 사운드 등 현대적 음향과 서양적 화성을 결합한 음악으로 판소리 고유의 시김새와 선율의 독특함을 증폭시켰다. 특히 1막 후반부 증오와 광기, 파멸의 소용돌이 속 리어가 독창하는 장면은 작품의 백미다.

물의 철학을 근간으로 한 극본에 맞춰 무대도 자연스럽게 '물'의 이미지로 구현된다. 무대디자이너 이태섭은 무대에 총 20t 물을 채워 수면의 높낮이와 흐름의 변화로 작품의 심상과 인물 내면을 표현했다.

물이 잔잔하고 고요할 때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태풍이 불 듯 출렁일 때는 휘청거리는 삶의 형상처럼 작품의 정서를 투영한다. 변화무쌍한 물의 속성을 활용한 무대에서 배우들은 15㎝ 높이의 물을 헤치며 걷거나 뛰고, 넘어져 허우적거린다.

등장인물이 온몸으로 절규하는 장면에서는 사방으로 튀고 흩어지는 물이 감정을 배가하고, 극 후반부 왕국을 놓고 벌어지는 수상전투 장면에서는 천둥과 뇌우를 표현한 조명이 어우러져 비장미와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안무와 연출을 맡은 정영두는 현대무용 안무가로 활약해온 자신의 특기를 살려 신체의 움직임만으로도 상황을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동선과 춤을 구성했다.

국립창극단 간판스타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각각 리어왕과 그의 신하 글로스터 백작 역을 맡아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다. 민은경은 막내딸 코딜리어와 광대를 오가는 1인 2역으로 극과 극의 매력을 펼친다. 이소연이 첫째 딸 거너릴, 왕윤정이 둘째 딸 리건을 연기한다.
국립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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