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스팀펑크로 그려낸 주체적 여성의 여정 '가여운 것들'

외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독특한 미장센으로 그려낸 비현실적이고 기묘한 우화를 선보여 온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과 매 작품 자신의 한계를 넓히고 있는 배우 엠마 스톤의 만남은 옳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빅토리아 시대 배경의 스팀펑크 '가여운 것들'이 보여주는 초현실주의적인 풍자는 엠마 스톤의 열연으로 생명력을 얻었다.
 
천재적이지만 특이한 과학자 갓윈 백스터(윌렘 대포)에 의해 새롭게 되살아난 벨라 백스터(엠마 스톤)는 갓윈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한다. 그런 벨라는 날이 갈수록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 넘쳐난다.
 
아름다운 벨라에게 반한 짓궂고 불손한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 웨더번(마크 러팔로)이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자고 제안하자 벨라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으로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벨라는 처음 보는 광경과 새롭게 만난 사람들을 통해 놀라운 변화를 겪는다.
 
외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가여운 것들'은 배경을 글래스고에서 런던으로 옮기고, 중심을 엠마 스톤이 연기한 벨라 벡스터에 두고 보다 화려하고 과감한 스팀펑크로 그려냈다. 원작이 가진 페미니즘적이고 사회·정치적인 메시지와 아이러니한 유머와 풍자는 초현실주의적인 미장센을 만나 보다 기묘하고 발랄해졌다.
 
'가여운 것들'은 성인 여성의 신체에 아기의 뇌가 이식된 벨라가 자기 자신, 즉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해 가는 이야기를 모험의 형태로 그려가고 있다. 벨라를 재구성, 즉 창조해 낸 것은 벨라가 '신'(God)이라 부르는 갓윈이다. 과학적인 욕망에 벨라를 만든 갓윈은 철저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실험체인 벨라를 기록해 나간다.
 
그러나 벨라는 창조주라 할 수 있는 갓윈의 세상 밖으로 모험을 떠난다. 자신을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벨라의 '선택'이 만든 여정이다. 세상을 알아가고자 하는 벨라는 아직 신체 나이와 동기화되지 않은 뇌의 나이로 인해 순수하고 솔직하다. 자신의 욕망은 물론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도 순수하며, 사회적인 통념에서 벗어나 행동한다. 벨라의 의상 역시 벨라가 시대의 요구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외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자신을 둘러싼 모든 억압에 저항하고 거부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벨라를 대하는 인물들, 특히 남성들은 그 자체로 억압을 상징한다. 남성들은 곧 계급주의 사회, 남성중심주의 사회가 만든 사회적인 통념과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도덕성의 상징인 셈이다. 그런 남성들이 벨라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담긴 것은 결국 '위선'이다.
 
특히 성적 욕망에 눈뜬 후 이러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충족하려는 벨라와 덩컨을 중심으로 벨라를 성적으로만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에는 성적 대상화, 여성 혐오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현실에서도 남성에게 성적 욕구란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여성인 벨라가 성적 욕구를 지니고 이를 드러내는 것은 저급하고 저열한 일이자 부도덕한 일이다.
 
이러한 시선은 벨라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매음굴에 들어간 이후 노골적인 비난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벨라는 매음굴에서조차 자신이 남성들의 저열한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대상'이 아니라 벨라 스스로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즐기는 '주체'로서 남성을 선택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바라봐야 할 것은 매음굴이나 창녀라는 표현이 아니라 벨라의 '선택'이다.
 
외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벨라의 섹스, 그리고 그의 여정을 바라볼 때 만약 벨라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지닌다면,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벨라가 거부하고 있는 '사회적인 통념'일지 모른다. 여성의 성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통념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오며 길든 우리에게 성적 욕구를 드러내고 충족하는, 즉 주체적인 여성 벨라는 불편한 존재일지 모른다. 영화는 은연중에 벨라를 향한 관객의 시선 안에 담긴 통념이란 '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건드리는 것이다.

벨라의 여정은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자유의지를 가진 한 존재이자 인간으로서 '자신'을 찾는 여정이자 남성중심 문화가 만들어낸 게 아닌 여성이 정의한 '여성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에 벨라는 끊임없이 자신을 소유하거나 도덕성을 강요하려는 남성들을 거부하는 동시에 '벨라'는 자신에 대한 탐구와 발전 역시 해나간다. 조각나고 상처받은 채로 재구성된 벨라가 세상의 즐거움과 어둠, 인간의 잔인함과 애정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세상에 대한 모험이자 조각나 있던 자신을 재구성해 온전한 '벨라'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갓윈, 맥스 매캔들스(라미 유세프), 덩컨 등 남성들로 인해 이뤄지고 벨라의 재구성 역시 남성들로 인해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갓윈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고 매음굴에서 벨라가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은 벨라의 '선택'으로 지금까지 온 것이다. 벨라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거부하고, 벗어나고, 스스로 선택하며 엔딩에 다다랐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본능과 이성, 욕망과 과학적인 논리를 오가는 벨라의 여정을 담은 '가여운 것들'이 지닌 재밌는 지점은 벨라의 '해부학'과도 같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부터 해부학에 관심을 보였던 벨라는 사회적인 의미와 물리적인 의미의 세상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 해부하며 파헤친다. 그렇게 마지막에 이르러 '벨라'로 온전히 재구성된 자신과 마주한다.
 
외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처럼 은유와 비유, 대조를 통해 세상과 인간을 풍자하고 유머를 자아냈던 영화는 마지막까지 벨라 그리고 덩컨을 비롯해 벨라를 억압하고 소유하고 대상화했던 남성들의 대조를 그린다. 벨라는 욕망에 기저에 깔린 실체를 알았고, 욕망만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신체와 뇌(정신)의 동기화를 이뤄냈다. 그렇다면 실로 '가여운 것들'은 누구였을까.
 
물론 원작 소설이 보다 고딕적이고 아이러니하고 풍자적이며, 페미니즘적이고 사회주의적이다. 과도한 섹스 신이 이러한 지점들을 가리기도 하지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불온하고 방종하게 자신의 특색이 담긴 영화라는 매체로 재구성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머러스하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영화에 녹아 있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인장 중 하나는 바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처럼 어안렌즈를 사용해 환상적인 스팀펑크의 세계를 초현실적으로 왜곡하고 풍자적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왜곡된 세계를 풍자하는 영화를 왜곡되게 비추는 카메라는 그 자체로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또한 광각과 줌을 사용하며 넓은 세계부터 벨라의 입 안과 같은 작은 세계까지 폭넓게 오간다.
 
'가여운 것들'의 화룡점정은 단연 엠마 스톤이다. 영화 속 벨라처럼 엠마 스톤 역시 끊임없이 발전하며 매 작품 자신의 정점을 갱신하고 있다. '가여운 것들'은 당분간 엠마 스톤의 필모그래피 사상 최고의 연기로 남을 것이라 확신한다. 다음 작품으로 한 번 더 자신을 뛰어넘기 전까지 말이다.
 
141분 상영, 3월 6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외화 '가여운 것들' 메인 포스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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