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호주대사로 가는 이종섭을 출국금지해야 할 이유

싱가포르서 한-호주 국방장관 회담.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7월 호우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해병대 채상병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했다. 김완중 현 호주대사가 부임한지 1년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다. 왜 이 시점에서 그가 호주대사로 임명됐는지 사실을 알 길은 없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은 소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충분히 짐작되는 바는 있다. 이 전 장관은 채상병 사건에서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됐다. 그는 이 사건에서 핵심 피의자이다. 공수처는 지난 1월 이종섭 전 장관의 핵심 참모였던 군사보좌관(박진희 소장)과 유재은 법무관리관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공수처 주변에선 이때부터 "이 전 장관에 대한 압수수색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널리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압수수색을 앞두고 이 전 장관을 해외 공관장으로 임명함으로써 수사의 예봉을 피하게 하려 한다는 의혹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 
 
이종섭 전 장관은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항명 사건과 상관명예훼손 사건에서 핵심 당사자이다. 작년 7월 30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비롯한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겠다는 해병대수사단의 수사결과 보고서에 그는 직접 결재했다. 하지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재를 번복하고 해병대사령관에게 이첩 보류 지시를 내렸다.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은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의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는 대통령의 질책을 받고 이 전 장관이 이첩 보류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법정 증언을 통해서도 박 단장의 증언은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김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의 지시가 없었다면 해병대는 채상병 사건의 수사 기록을 장관 결재본 대로 경찰에 이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령관은 이첩 보류 지시를 촉발시킨 대통령의 격노를 박 단장에게 전달해 준 장본인이다. 지금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김 사령관의 증언은 모순투성이어서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 그는 국방부검찰단에서 첫 조사를 받고 난 직후, 해병대수사단 중수대장과의 통화에선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다"고 했고, 박 단장에게 '정훈아, 너 때문에 많은 사람이 살게 되었다"고 신뢰를 보냈던 인물이다.
 
이 전 장관의 수사 외압 증거와 정황은 차고 넘친다. 그는 대통령 지시를 받고 참모들을 총동원해 해병대 1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배제하려고 사력을 다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출장중엔 자신의 군사보좌관을 시켜 "확실한 혐의자(대대장급)는 수사 의뢰하고 지휘 책임 관련 인원(사단장 등)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달라"고 부당한 외압을 가했다. 또 해병대수사단은 "수사라는 용어를 쓰지 말고 조사로 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하지만 결재를 번복한 사실에 대해선 "결재를 할 때도 확신이 있어 한 것이 아니었다"거나 "출장 준비로 분주해 제대로 살펴 보지 못했다"며 번복할 만한 사정변경이 없었음을 스스로 고백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윤창원 기자

 이종섭 전 장관은 국방부 검찰단을 동원해 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사건기록을 강제로 회수하기까지 했다. 법조인들은 사건기록 강제회수 자체가 직권남용의 대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에는 이종섭 전 장관이 국방부조사본부의 재조사 결과도 뭉갰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조사본부 수사팀이 1사단장도 혐의자로 포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가 소집한 국방부검찰단장과, 법무관리관,조사본부장 직무대리 등 4인 회의에서 이를 뒤집었다는 것이다. 조사본부의 관계자가 해병대수사단 관계자에게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다 포함해 보냈다"는 전언까지 나왔다.
 
이종섭 전 장관은 박 단장의 재판에서 핵심 증인이다. 항명사건 뿐만아니라 상관명예훼손은 그와 직접 관련된 사건이다. 군에서는 항명 사건도 위중하지만 상관명예훼손 혐의도 5년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중대범죄이다. 박 단장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기소해놓고, 정작 본인은 해외로 가는 것은 국방장관이나 한 사람치고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군검찰의 상관명예훼손 혐의 기소는 항명죄를 자신하지 못하자 박 단장에게 다른 혐의를 무리하게 추가하는 '법기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 해병대 사령관 규탄 집회. 연합뉴스

해병대 사건은 국민 누가 봐도 '정의,공정'과 동떨어진 상태로 엇나가고 있다. 군의 중추를 담당한 대령은 불법명령을 거부한 죄로 인생의 나락길에 처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면 핵심 당사자인 전직 국방부 장관은 아무런 책임도 없이 해외로 떠난다. 또 이 사건에 깊숙이 관여돼 있는 대통령 안보실의 2차장(임종득)은 국민의힘 지역구에 단수공천됐고, 당시 국방차관(신범철)조차 같은당 지역구 후보로 선출됐다. 모두 사건의 실체를 덮기 위한 행동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배경이다.
 
문제는 공수처이다. 공수처는 해병대사령관을 비롯해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달포전에 실시했다. 특히 경북경찰청에서 사건 기록을 강제회수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공직기강비서실 행정관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총경이 관여된 사실도 드러났다. 공수처가 이 사건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의 인사권과 수사는 별개의 문제이다. 공수처는 핵심증인이자 피의자인 전직 국방장관이 해외 공관장으로 나가는 것을 그냥 지켜보면 안된다. 출국금지 조치를 한 다음 시시비비를 속도있게 진행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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