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가 4일 개막한 가운데 지난 30여년간 이어져온 국무원 총리의 폐막식 내·외신 기자회견이 올해부터 사라지게 됐다.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국 권력서열 2위 리창 총리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 러우친젠 대변인은 이날 전인대 사전 브리핑에서 "올해 전인대 폐막 후 총리 기자회견을 개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별한 상황이 없다면 이번 전인대 후 몇 년 동안 더는 총리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우 대변인은 총리 기자회견을 폐지하는 대신 각 부처의 부장(장관)이 참여하는 기자회견과 인터뷰 횟수와 참가 인원을 늘리고, 국무원 주요 책임자들이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993년 주룽지 총리 시절 정례화된 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은 지난 30여년간 양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중요 이벤트였다. 언론 통제가 심한 중국에서 외신 기자들이 총리를 상대로 직접 질문을 던지고 직접 답을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총리 기자회견이 폐지되면서 권력서열 2위이자 중국 경제를 총괄하는 총리의 올해 경제운용 방향과 목표, 주요 쟁점 등을 보고들을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사라졌다. 이는 리 총리의 현재 위상과도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의 평범한 관료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리 총리는 지난 2002년 저장성 당서기로 부임한 시 주석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되며 그와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시 주석을 등에 업고 고속승진을 거듭하다 총리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런 배경 때문에 지난해 양회에서 그가 총리로 임명될 당시부터 경제 운영 전반에 대한 실권을 부여받은 실세 총리 보다는 1인 집권체제를 구축한 시 주석의 비서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취임 이후 중국 경제가 위기를 겪고 있지만 리 총리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헝다, 비구이위안 등 대형 부동산업체들의 위기로 촉발된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소비와 수출 등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리 총리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 주석이 직접 나서 경제 현안을 챙기는 모습이 부각되면서 리 총리는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있다. 총리 기자회견이 폐지된 것도 이런 권력구도와 관련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동시에 전세계로 생중계되는 총리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 경제와 관련한 부정적인 질문이 쏟아지는 상황을 사전에 막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5일 열리는 전인대 개막식에서 5% 안팎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발표할 것으로 보이는데, 현 상황에서 이런 목표치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해 양회를 끝으로 퇴임한 리커창 전 총리는 지난 2020년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6억 명의 월 수입이 1천 위안(약 19만 원)에 불과하며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발언해 전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이는 2020년까지 '샤오캉 사회'(물질적으로 안락한 중산층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시 주석의 공약이 결국 실패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총리 기자회견이 폐지되면서 이런 돌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원천 봉쇄됐다.
한편, 이날 오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개막한 올해 양회는 오는 11일 전인대 폐막식을 끝으로 8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양회는 정협과 전인대 두 회의를 통칭하는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