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표적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이 그가 생전에 거주했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엄수됐다.
나발니의 관은 현지시간으로 1일 오후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 교회에 도착했다.
현지 경찰의 삼엄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모인 수천 명의 지지자들은 예정시간인 오후 2시쯤 관을 실은 영구차가 도착하자 나발니의 이름을 외쳤다.
나발니의 장례식을 촬영한 영상과 사진들은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됐다.
나발니는 검은 정장차림으로 붉은색과 흰색 꽃에 덮인 채 관 속에 누워 있었다.
장례식에는 나발니의 아버지 아나톨리와 어머니 류드밀라 나발나야 등 가족을 비롯해, 내달 열리는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던 보리스 나데즈딘과 예카테리나 둔초바 등 러시아 야권 인사, 미국·독일·프랑스 등 서방국 대사 등이 참석했다.
이틀 전 남편의 죽음과 관련해 유럽의회 연설에 나섰던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와 미국에서 유학 중인 딸 다리아 등 다른 가족은 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율리아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26년간 절대적으로 행복하게 해줘 감사하다"며 "하늘에 있는 당신이 날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남편을 추모했다.
남편의 구금 생활 중에도 러시아 당국의 인권 탄압을 고발하는 활동을 해 온 율리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비판 활동으로 인해 러시아에 귀국할 경우 체포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나발니의 관은 장례식 후 도보 30분 거리에 위치한 보리솝스코예 공동묘지로 향했다.
이동 과정에서 일부 지지자들이 몰려들면서 경찰이 설치한 철제 울타리가 무너지기도 했다.
나발니의 관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마이웨이' 음악과 함께 입관됐다. 나발니가 생전에 좋아했던 영화 '터미네이터2'의 명장면,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용광로에 들어가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채 "다시 돌아오겠다(I will be back)"고 말하는 장면의 배경음악도 흘러 나왔다.
현장에 모인 추모객들은 묘지에서 직접 나발니를 추모할 수 있었으며, 긴 행렬 탓에 참배가 어려워진 시민들은 나발니 사진과 꽃 등으로 자체 기념비를 만들어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는 25만명 이상이 장례식 중계 영상을 시청했다.
러시아 대통령궁인 크렘린궁은 나발니에 대한 평가 요청에는 응하지 않은 채 "허가되지 않은 모든 집회는 위법"이라며 경고에 나섰다.
외신들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이후 저항의 뜻을 보여주는 최대 규모 인원이 모인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인권단체 OVD-인포는 대규모 충돌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장례식이 열린 모스크바에서만 6명, 러시아 전역에서는 최소 67명이 체포돼 구금된 상태라고 밝혔다.
나발니의 대변인 키라 야르미시는 유튜브 채널에서 "오늘 교회와 묘지에 오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나발니의 지지자들은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중요해질 것인 만큼 멈추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주요 외신들과 달리 러시아 관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나발니가 극단주의, 사기 등 여러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다며 장례식도 단신으로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