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주년 삼일절] 이념갈등의 시대, 주목해야 할 독립운동가 '안경록 목사'



[앵커]
혹독한 일제 강점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신앙과 나라사랑의 정신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여러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강원도 강릉지역 3.1운동을 주도했던 안경록 목사를 소개합니다.

안 목사의 신앙과 삶은 이념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 우리 사회에 대화와 포용의 정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기자]
1882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출생한 안경록 목사는 강원도 강릉 지역 3.1운동을 주도한 핵심 인물입니다.

안 목사는 평양 숭실학교에서 공부한 뒤 지금의 감리교신학대학교인 협성신학교를 1회로 졸업하며 목회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안경록 목사.

안 목사는 목회 활동에 충실하면서도 당시 시대 상황과 우리 민족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안 목사는 일제가 신민회와 기독교 인사 등 독립운동가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날조·조작한 '105인 사건'에 연루돼 징역 6년 형을 선고 받기도 했습니다.

[안유림 박사 / 이화사학연구소, 안경록 목사 증손녀]
"할아버지 관련해서 남아 있는 증언들을 보면, 한 50명 단위로 되어 있는 신민회 단체의 일종의 반장 역할을 했던 분이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복심법원에서 판결 나기 전까지 한 2년 정도 옥고를 치르셨고, 그때 굉장히 혹독하게 고문을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신앙운동을 하면서도 시대라든가 그 당시에 한국인들이 처해 있었던 상황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안경록 목사.

출소 이후 강원도 지역에서 목회 활동을 이어나간 안경록 목사는 1919년 3.1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강릉 지역 만세 운동을 기획하고 주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사전 모의 과정이 일제에 발각돼 거사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강릉중앙감리교회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엿새 동안 대대적인 만세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안병원 / 안경록 목사 손자며느리]
"사전에 발각이 돼서 다 잡혀가고, 그런 상황에서 전체적으로 같이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교회 중심으로 첫날은 시작을 하고, 그다음에 불붙듯이 일어나서 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어요.) 그 당시에 만 명이 넘는다는 건 굉장한 숫자 같아요."

강릉지역 3.1운동의 거점이 되었던 강릉중앙감리교회. 안경록 목사는 강릉중앙감리교회 제5대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3.1운동으로 또다시 옥고를 치른 뒤엔 목회 활동에 전념하며 농촌계몽운동과 교육활동을 통해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삼숭학교 중등과정을 개설해 수많은 독립지사를 배출했으며, 만주와 황해도 등 다양한 지역에서 목회활동과 함께 공동농장 운영, 절제운동 등을 전개하며 우리 민족 자립갱생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안병원 / 안경록 목사 손자며느리]
할아버님의 목회는 말씀만 전하는 게 아니라 실생활로 파고들었던 것 같아요. 농촌 절제운동을 하셨고, 공동농장을 하면서 살림을 낫게 해서, 다른 지역도 도울 수 있었다 그래요. 끝까지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저희 집안에 쭉 그런 마음들이 계승돼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감사하죠.

안경록 목사는 지방 감리사로서 강릉에서 3.1운동을 주도하고 옥고를 치른 이후, 진남포 신흥리교회, 만주 영고탑교회, 황해도 수안교회 등에서 목회를 이어갔다. 안 목사는 교회청년들과 공동농장을 만들고 절제운동을 전개하는 등 목회활동에 충실하면서도 지역의 교육, 농촌,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균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오늘날 이념 갈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안경록 목사의 삶이 주는 시사점은 '대화와 포용'의 정신입니다.

3.1운동 이후 1920년대 한국사회는 사회주의의 유입으로 극심한 분열을 겪게 됐는데, 당시 사회주의계열의 반기독교운동에 대해 안경록 목사가 쓴 글을 보면 그의 신앙인으로서의 품격과 포용의 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안 목사는 사회주의 계열의 반기독교운동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오히려 유무상통의 정신과 경제 균등의 원리 등 일맥상통하는 기독교 정신을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토론하자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제안합니다.

또, 동시에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을 탄압하는 일제에 대해서도 비판하며 이념 갈등 속에서도 민족의 하나된 정체성을 일깨웁니다.

[홍승표 박사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안경록 목사님의 글처럼 '기독교도 실수하고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이 토론해서 풀자', 서로의 공통점을 찾고 하나 될 수 있는 가능성, 공통점을 모색하면서 하나를 이루는 그런 정신이 오늘날 한국교회에 필요하고, 이렇게 양극화된 이념 분열의 현실 속에서 교회의 역할이고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안경록 목사가 '개벽' 잡지에 기고한 단편 글. 안 목사는 사회주의자들의 기독교비판의 태도에 대해 3.1운동의 일치와 포용의 정신으로 허심탄회한 토론과 소통을 하자고 자상한 손을 내밀고 있다.

한편, 안경록 목사는 서울 홍제동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홍제동교회를 돕다 광복을 불과 3개월 여 앞두고 소천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안경록 목사의 삶과 정신을 기려 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습니다.

3.1운동 105주년, 나라 사랑의 정신과 관용과 소통의 미덕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몸소 보여주었던 안경록 목사의 삶을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할 때입니다.

CBS뉴스 오요셉입니다.

안경록 목사의 후손들이 안 목사의 사진을 보고 있다.
[영상기자 정용현 최진성] [영상편집 김성령] [그래픽 박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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