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의 '복귀시한'으로 제시한 마지막 날인 29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자"며 손을 내밀었지만 참석한 전공의는 한 자릿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에 응한 전공의들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간부 등 협상의 '대표성'을 지닌 이들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수련병원별 전공의 대표를 통해 이날 비공개 간담회를 제안한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생각보다 많이들 오지 못해 아쉽다"면서도 단 몇 명의 전공의라도 현장에 돌아오는 계기가 된다면 '의미 있는 자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소재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차관과 전공의 간 간담회는 약 3시간 18분 간 이어져 저녁 7시 반이 가까운 시점에 종료됐다. 앞서 전날 각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 94명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대화하자"고 먼저 제안한 박 2차관은 오후 3시 50분쯤, 이후 몇몇 전공의들도 언론의 눈을 피해 샛길로 회의실에 입장했다.
당초 자리의 취지가 비공개로 '허물없이 의견을 나누자'는 것이었던 만큼, 의도치 않게 시간·장소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정부는 이날 행사가 아예 무산될까 봐 가슴을 졸였다.
시작 1시간여 전부터 회의실 입구에 취재진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자, 복지부 관계자는 "전공의는 분명 유명인이 아니고, 경찰서·법원에 (피의자·피고인으로 출석하는) 상황도 아니다"라며 "행사가 끝나고도 최소한 전공의들에게는 질문세례 등을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신신당부했다.
다만, 사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일부 방송사는 현장상황을 유튜브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복지부는 회의실 초입에 '프레스 라인'을 치고, 공단 직원들이 엄호하도록 하는 등 전공의들의 신원 노출을 막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전공의들은 퇴장할 때에도 이들의 안내를 받아 행사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예정된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장시간 대화를 나눈 박 2차관은 간담회를 마친 직후 취재진과 만나 "오늘 오신 분들은 전공의들의 대표 등은 아니다. 평(平)전공의들이 다들 개인 자격으로 오신 것"이라며 "전에 대전협 간부를 했거나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분들은 오시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된 대화 주제로는 "주로 정부가 발표한 정책 내용들에 대한 질문과 (의대)증원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며 "그래서 제가 좀 소상하게 설명을 했다"고 부연했다.
박 2차관은 "(이들이 전체 전공의를 대표하지 않음에도) 제가 시간을 내서 계속 대화를 이어갔던 것은 대표성을 떠나 전공의들과의 공감의 폭을 좀 넓히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그런 대화들을 서로 나누면서 저도 더 많은 이해가 됐던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화는 꼭 논제를 놓고 (특정한) 결론을 맺는 것이 아니다"라며 "여기 오신 분들은 빨리 (지금의) 사태가 조기에 해결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다"고 부연했다.
다만, 정확한 참석 인원은 밝히지 않았다. 박 2차관은 "굉장히 소수가 왔다. 두 자리가 안 된다"며 "좀 부담 없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는데, 만남 자체가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생각보다 많은 전공의들이 못 오신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날은 사직한 전공의들이 복귀할 경우, 정부가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힌 최후의 '데드라인'이다. 내달 이후로는 면허 자격 정지 등 행정처분과 사법절차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박 2차관은 전공의들을 향해 거듭 "진심으로 여러분이 복귀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분의 집단행동 내지는 사직으로, 하고 싶은 의사 표현은 충분히 하셨다고 본다"며 "이것이 더 길어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또 "(오늘을) 복귀시한으로 정한 것은 여러분을 겁박하려는 것이 아니고, 돌아올 수 있는 '출구'를 열어드린 것"이라며 "환자들이 여러분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신다면 이들도 기뻐하고 환영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날 참석한 전공의들이 복귀시한 연기 등을 요청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지금 전공의들은 어떤 명확한 대표들이 있고, 그들에 의해 전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구조는 아닌 것 같다"며 "그러니 대화 자체가 어려운 상황인 것"이라고 답변했다.
박 2차관은 "저희가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대화를 하자고 했을 때 상황이 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대표들에게 연락을 취해도 닿지 않았던 것이 바로 그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비록 소수지만 그분들도 하고 싶은 말들을 했고, 저희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해서 이해의 공감을 넓혔다"며 "전체 몇 천 명의 전공의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는 (모르지만) 분명 전달되는 루트가 있을 거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사직이 정말 '개인 차원'의 결정이었다면, 복귀도 집단의 눈치를 보지 말고 돌아와 달라는 희망도 덧붙였다.
박 2차관은 "용기를 내서 개인적으로 오신 몇 분과 소통이 있었고, 소수라도 현장으로 복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말씀드렸다고 본다"며 "한 명의 전공의라도 돌아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저는 그것은 의미 있다고 생각을 한다"고 강조했다.
주말인 다음 달 3일로 예정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 대규모 집회를 두고는 "의사들은 진료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라며 "휴일이니 환자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논평할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