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늘리기에 반발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들에게 정부가 통보한 복귀 시한이 29일이다.
시한을 넘기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게 자명하지만 29일 낮 현재 아직 입장 차가 좁혀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서울 지역 주요 병원장들은 28일 소속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호소하면서 '진심이 충분히 전달됐고 앞으로 왜곡된 필수 의료 정상화를 위해 더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다.
그렇지만 의사와 의사 단체는 아직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의사들은 오히려 정부가 이미 발표한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
전국 40개 의대 학장들은 대학이 수용할 수 있는 증원 규모가 350명 정도라며 의대 정원을 350명만 늘리자고 제안했고, 의사협회 비대위는 각 대학 총장들에게 의대생을 늘려 달라는 신청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부와 정면 힘겨루기 양상이다.
정부는 2027년까지 거점 국립대 의대 교수를 1천명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실제 운영해보고 필요하면 현장 수요를 고려해 추가 보강하겠다고도 했다.
'가르칠 사람이 없는데 의대 정원을 갑작스레 늘리면 부실 교육을 어찌할거냐'는 의사들의 비판에 대한 답이다.
올해 5월 개소 예정이던 5개 권역 별 광역 응급의료 상황실도 다음 달 4일부터 조기 운영하기로 했다.
의료 사고에 대한 의사들의 면책 범위도 대폭 넓혀주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정부가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안 초안을 지난 27일 공개했는데,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한 경우 의료 행위를 하다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가 발생해도 환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다' 는 게 핵심이다.
필수 의료 행위를 하던 중 환자가 사망하게 되는 경우에도 형의 감면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거기에다 필수 의료 분야와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보험료까지 지원해주겠다는 입장이다.
의료계와 환자 단체들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특혜성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공청회 등을 통해 각계 입장을 듣겠지만 의료대란 상황에서 다급한 정부로선 어떻게든 의사들을 달래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생각인 듯하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외에도 전공의들의 근무 여건도 개선해주고 지역 의료 인프라도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거의 물러선 모양새이고, 대통령실과 정부에게 남은 건 의대 정원 2천명 증원과 의료개혁 명분 밖에 없어 보인다.
의대정원 늘리기에 반발해 전국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가 27일 저녁 기준으로 1만명에 이르고 아직 돌아올 기미도 없다.
의사들과 의사협회는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한 힘겨루기에서 이겨가는 듯하다.
2000년 의약분업 때 의사단체들의 반발에 굴복해 정부는 의대 정원을 줄여준 바 있다.
2014년 원격의료 시범 사업 확대 때도, 2020년 비대면 진료 육성 등 의료 정책 때도 의사들은 집단 행동으로 정부 정책에 맞섰으며,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 논쟁 때는 보다 폭넓게 허용하라며 장관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를 이겨내지 못했다.
죽어가는 환자들을 버려두고 현장을 떠나는 의사들을 무슨 수로 당해낼 수 있겠는가.
노환규 전 의사협회 회장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그렇다. 맞다. 이번에도 의사들이 이겼다.
벼랑끝 싸움에서 이미 챙길 만큼 실리를 챙겼으니 만족함을 알고 의사들은 이제 복귀 시한에 맞춰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길 바란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와 가족들이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