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다큐 인사이트' 팀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참사 이후 생존자들의 삶을 조명하고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새로운 인생을 응원하기 위해 4월 18일에 방영할 다큐를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제원 제작본부장이 4월 10일 치러질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어 4월에 예정대로 방송할 수 없다고 결정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다큐 인사이트' 제작진 및 KBS PD협회,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본부) 등 다수 관계자와 내부 구성원들은 해당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단 총선 이후 방송되는 다큐가 영향을 주기도 어려울 뿐더러, 전임 본부장과 달리 이 본부장은 천안함 피격뿐만 아니라, 씨랜드화재, 대구지하철 사건 등 다른 대형 참사들까지 함께 다루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는 제작진이 찬성했던 전임 본부장의 제안에서 더 나아가 세월호 참사 10주기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상황이었던 것.
지난 27일 제작1본부 입장문에서 이 본부장 측은 "불방이 아니라 확대 제작이며 애초부터 '세월호 방송'이 아니었다"며 이처럼 내용을 바꾸게 된 이유를 "방송법상 공정성의 준거인 형평성·균형성의 원칙에 따랐다"고 했다. 그러나 비극적인 대형 참사들 중 유독 세월호만 단독 조명하면 안되는 이유라기엔 그 설득력이 빈약하다는 설명이다.
KBS 한 내부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에 정치색을 씌우며 공정성 운운하고 있는 게 우습다. 이 본부장의 정치 성향이 오른쪽(우파)인 것은 조직 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촛불 집회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언급한 과거 SNS 글이나 내부 발언을 보면 바로 드러난다. 어제 제작1본부 입장문을 보니 마치 제목만 바꾸면 될 것처럼 이야기하던데 그렇지 않다. 제목에서 '세월호'를 지워도 방영은 4월에 할 수 없단 입장"이라고 꼬집었다.
KBS본부 또한 입장문을 내고 "이 본부장의 논리는 12월 크리스마스 방송을 5월 부처님오신날 방송과 같이 하라면서 확대 제작이라 주장하는 것과 같다"라며 "이 본부장은 세월호 10주기 방송 제작 중단을 명한 것이고, 제작을 중단하고 다른 기획을 하라고 의견을 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제작진은 12월 중순 경 세월호 10주기 방송을 준비하란 업무명령을 받고 섭외 및 촬영에 들어갔다. 제작본부 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인지했고, 방송 코드도 '세월호 10주기'로 발행됐다. 이걸 1월 말 취임한 이 본부장만 혼자 세월호 방송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건국전쟁'은 이 전 대통령을 미화했다며 개봉 전부터 역사 왜곡 지적이 일었지만 현재 100만 관객을 돌파해 흥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건국전쟁'을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영화 '파묘'가 개봉해 높은 흥행세를 보이자 "또 다시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는 SNS 글로 진영 싸움을 부추겨 논란을 빚었다.
'건국전쟁' 개봉 앞뒤로 이보다 흥행한 영화도 많았지만 KBS는 이례적으로 '건국전쟁'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KBS 메인 뉴스인 '뉴스9' 헤드라인에 비중있게 보도되는가 하면, KBS 1TV 시사 프로그램 '사사건건'에서는 김 감독과 인터뷰를 가졌다. KBS 내부에서는 이 같은 '건국전쟁' 띄우기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건국전쟁'을 조명한 '뉴스9' 리포트마저 최재현 통합뉴스룸 국장의 '기획 발제'라는 의혹이 불거진 실정이다.
KBS본부에 따르면 보도본부 회의에서 관련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최 국장은 해명과 함께 "보도한 기자와 촬영 기자에게 왜 (리포트 제작을) 했냐는 등을 물었다는데 언론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될 수도 있다. 방송법에도 보면 당사자가 문제 삼지 않는데 외부에서 침해하면 안 된다. 도를 넘어가면 공식 적으로 조사해서 징계까지 생각하고 있다"라고 제작 자율성 침해란 취지로 발언했다고 전해졌다.
이 본부장 또한 이와 비슷하게 "정규 방송의 기본계획, 세부지침 수립, 세부실시 내용과 방송시기에 관한 사항은 방송법과 위임규정에 따라 방송사업자, 즉 사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본부장, 국장, 부장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했지만 KBS본부는 "방송법은 어디에도 KBS 사장에게 제작과 취재의 전권을 부여한 바 없다. 제작 자율성 보장을 위해 실무진의 의견을 존중하고 협의해야 함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라고 짚었다.
박민 사장은 취임부터 '공정성'을 강조했지만 결국 우려대로 정치 편향 논란이 뜨겁게 타오르면서, KBS 내홍만 극심해지고 있다. 공영방송이 감독 스스로 우파를 자처한 콘텐츠는 띄우고, 정치색과 무관한 비극적인 참사는 외면하는 모습에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눈길 또한 곱지 않다. '윤석열 정부 코드에 맞춘 이중잣대'라며 KBS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내부에도 당연히 이런 인식이 존재한다.
이 관계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도 겪었지만 지금이 단연코 최악이다. 당시에는 그래도 내부 규약, 협약 등은 지키려는 시늉을 하기는 했었다. 박민 사장 취임 이후, 다른 지상파 방송사들과 비교해 시청률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제 KBS는 윤석열 정부의 프로파간다 매체로 전락한 것 같아 참담하다"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