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탁구 역사상 최초로 안방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단체전). 남자 대표팀은 비록 결승에 오르지 못했지만 최강 중국과 명승부를 펼치며 개최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주세혁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4일 부산 벡스코 특설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중국과 4강전에서 풀 매치 끝에 2 대 3으로 졌다. 장우진과 이상수(삼성생명)가 각각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 단식 우승자 왕추친과 올림픽 단식 2연패를 이룬 마룽을 잡는 파란을 일으켰지만 끝내 만리장성을 넘지는 못했다.
2008년 이후 16년 만의 결승 진출은 무산됐다. 한국 남자 탁구는 2006년, 2008년 연속 세계선수권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따낸 바 있다.
이번 대회를 동메달로 마무리했다. 남자 대표팀은 2016년 쿠알라룸푸르 대회 이후 4회 연속 입상을 일궈내며 오는 7월 파리올림픽 전망을 밝혔다.
당초 절대 열세가 예상된 경기였다. 단체전 세계 랭킹 5위인 한국은 장우진이 단식 랭킹에서 최고인 14위, 임종훈이 18위, 이상수가 27위다. 1위 중국은 판전둥, 왕추친, 마룽이 개인 단식 1~3위로 드림팀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거의 중국을 패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장우진이 1단식에서 왕추친을 3 대 1(11-7 2-11 13-11 11-6)로 꺾고 기선을 제압했다. 2단식에서 임종훈이 판전둥에 0 대 3(8-11 6-11 8-11)으로 밀렸지만 이상수가 3단식에서 마룽을 3 대 2(11-7 4-11 12-10 6-11 11-4)로 물리치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중국은 세계 최강이었다. 판전둥이 장우진을 4단식에서 0 대 3 완패를 당한 데 이어 임종훈도 5단식에서 왕추친에 0 대 3으로 졌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이후 또 한번 대첩을 노렸지만 풀 매치 접전에 만족해야 했다.
경기 후 장우진은 "2 대 3으로 져서 많이 아쉽다"면서도 "한국 최초의 세계 대회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는 마음에 다행"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한동안 중국에 쉽게 져서 이제는 안 된다 인식이 많았는데 이번에 그런 인식을 깬 좋은 경기 내용이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장우진은 1단식에서 승리한 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전날 덴마크와 8강전에서 영향을 미친 왼 허벅지 이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장우진은 이내 곧바로 중심을 잡고 포효하며 손을 흔들어 팬들의 환호를 유도했다.
이에 대해 장우진은 "왼 햄스트링인데 크게 문제는 없었다"면서 "승리한 뒤 흥분해서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왕추친과 경기하기 전에는 어떻게 하면 이길까 생각했고, 경기 중에는 내가 제일 잘 한다 믿는 심리 상태였다"면서 "4단식을 할 때는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하진 않았는데 워낙 판전둥이 내가 싫어하는 걸 잘 했고, 세계 1위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주 감독은 "어제 인터뷰에서 기대가 많이 된다고 했는데 우리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서였다"면서 "두 팀 모두 좋은 경기를 했고, 우리가 이 정도로 잘할 줄 몰랐는데 팀 워크로 똘똘 뭉쳐 좋은 경기를 했다"고 선수들을 칭찬했다. 이어 "마지막에 기회가 있었는데 상대를 더 긴장시키고 몰아붙일 기회가 있었는데 못 해서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경기력이 좋아서 파리올림픽 때 다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주장 이상수는 "응원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텐데 정말 많은 팬들 앞에서 좋은 경기 펼쳐서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앞으로 이렇게 하다 보면 더 좋은 결과 있을 거 같다"면서 "앞으로도 이렇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상수는 "내 스타일은 누구에게도 질 수 있지만 누구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이긴다는 마인드로 들어갔다"면서 "어떻게 하면 이길까 생각하고 준비했고 좋은 경기를 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내 선수 생활에서 오늘 경기는 2~3번째 안에 들 것"이라면서 "많은 우리 팬들 앞에서 좋은 경기를 할 기회 많지 않은데 좋은 추억과 경험이 될 것"이라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임종훈은 "형들이 너무 잘 해주고 응원도 많이 해주셔서 힘이 났는데 아쉽기보다 아깝다"고 자책했다. 이어 "다음에는 조금 더 잘 해서 후련하게 경기를 마치도록 준비를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