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여행의 실천④]"셋이 가리키면 그곳을 본다"

3·4 완주코스 : 중문관광단지부터 제주공항까지…''머털도사'' 문용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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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여행(fair travel)''이란 이름으로 제주 땅을 밟은 지 어느덧 나흘째를 맞았다. 첫날 빗속에서 달린 제주여객터미널에서 중엄리까지를 제외하면 사실상 오늘(지난 3일)로 자전거를 이용한 제주일주가 끝이 난다.

첫째날 일도동에서 표선리, 둘째날 표선리에서 중문관광단지, 그리고 오늘 목표코스는 중문관광단지에서 다시 중엄리까지다. 두어 시간만 더 달리면 제주공항까지 갈 수 있지만,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린 여행의 아쉬움을 다독이려 부러 짧은 여정을 남겨둔다.

가야할 여정이 그제와 어제 만큼 남아 있지만, 마지막이란 생각이 페달질을 더디게 하는 아침, 오늘 여정에선 또 어떤 추억이 쌓일까...... 자,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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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표선리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의 여정이 힘겨웠던 건 제주도 지형이 남고북저, 동저서고의 형태를 띄고 있어 유독 업힐 구간이 많아서였다. 그렇다면 오늘은?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가 바람을 가르며 달려나간다. 이러한 길을 ''공짜길''이라 이름 붙였다. 힘들이지 않고 그저 달릴 수 있기 때문. 게다가 아무리 평일 오전이라지만 도로에 차 한 대 없다.

마치 우리를 위해 열어놓은 듯한 길을 거침없이 달려나가자 어느새 눈앞에 산방산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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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상제가 집어던진 한라산의 봉우리라는 산방산은 실제로 한라산 백록담 분화구 모양과 암석의 질 등이 유사하다고 한다. 산방산 둘레를 따라 이어지는 일주도로 옆으로 용머리해안과 형제섬이 솟은 바다가 펼쳐지고, 풀숲 한가운데 낮잠을 즐기는 갈색 새끼마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미인 듯한 백마 한 마리가 운치를 더했다.

황홀한 절경에 취해 힘들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산방산 앞에 도착. 입구에 있는 사찰을 지나 해발 200미터 높이에 있는 산방굴사에 올라갔다. 이 곳은 길이 10m, 높이 5m, 너비 5m의 천연석굴로, 굴 안에 조성된 가파른 계단 끝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3년 전, 서귀포시 전체가 정전이 되고, 바다가 누렇게 뒤집힐 정도로 거센 폭풍이 당도하기 직전, 어두워지기 전에 한 곳이라도 더 둘러봐야 한다는 일념 하에 이 곳에 올랐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사람 한 명 없었고, 마치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은 절벽 안에서 낯선 여행자를 응시하는 불상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아 채 몇 분을 못 견디고 발걸음을 옮겼더랬다. 그러나 다시 만난 불상은 마치 "여행이 즐겁냐" 물어보듯 다정한 표정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서서 남은 여정의 안전과 떨어져있는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한번 다녀갔던 곳이라 자전거로 달리며 보는 익숙한 풍경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푸근하다. 지도상의 거리로 보면 전날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경사 구간이 없어 속력은 배로 빨라졌다. 그간 지겹게 달린 해안도로인데 왠지 눈에 담는 한곳한곳이 다 특별하게 느껴진다. ''내일이면 돌아가는구나......''

곧 이어서 멈춘 곳은 송악산. 전날 거쳐온 외돌개와 함께 드라마 대장금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패키지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인 만큼 해변 입구엔 ''장금이'' 이영애 씨의 사진이 담긴 큰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송악산 해안절벽에 1미터 간격으로 뻥뻥 뚫려 있는 구멍의 정체는 미리 알고 오지 않은 이상 지나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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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일본군이 뚫어놓은 진지동굴로, 미군에 맞서 제주도 전체를 폭파시키려던 일본의 자살폭탄 전술의 흔적들이다. 어느 순진하고 모험심 많은 외국인 여행객이 저 동굴 안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제주 해변에는 바다 경관을 즐기며 야영하기 좋은 자연동굴들이 많다"는 후기를 적기 전에, 이곳에 지난날 역사를 알리는 친절한 안내판이 세워지길 바란다.

해안도로와 일주도로가 만나는 동일리에서 초콜릿박물관 이정표를 발견했다. 왠지 ''헨젤과 그레텔''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초콜릿 성이 있지 않을까 호기심이 일었으나 내륙으로 들어가기 보단 해안도로를 더 달리고 싶어 이번 여정에선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다음 목표지는 차귀도. 슬슬 배가 고파왔지만 참기로 했다. 차귀도로 가는 주변 풍경은 몇 해 전 들른 몽골의 초원을 떠올리게 했다. 이제까지 달려온 제주의 모습과는 달리, 태양 아래 이글거리는 드넓은 평야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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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푸른빛이 감도는 대지를 보며 완만한 해안도로를 2시간 정도 달렸을 때, 배를 타면 1-2분이면 닿을 거리에 와도와 차귀도가 보이는 고산리에 당도했다. 길가 한 켠에 부지런히 한치를 널고 있던 할아버지가 "엇, 오징어다!" 외치는 무지한 여행자를 웃으며 반기신다.

오늘 점심메뉴는 한치회덮밥.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마치 정원인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풍성하고 곱게 키워낸 화분들에 감탄해, 분명 음식을 만드는 손길도 정갈하고 깊을 것이란 신뢰가 갔다.

좀전까지 바다서 뛰놀았을 한치의 싱싱한 살과 따뜻한 밥이 매콤한 초장과 함께 버물여지면서 맛은 그야말로 환상, 특히 식사가 나오기 전과 중간에 각각 공수된, 갓 익혀낸 바삭한 감자튀김과 살 두툼한 오징어 튀김이 아직 갈길 먼 여행자의 뱃속을 더없이 든든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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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심으로 얼음과자 하나씩 물고 그늘에 앉았다. 시간은 오후 1시 30분. 본격적으로 뜨거워질 때다. 더위를 좀 피했다 갈까 싶었지만, 그냥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오늘은 기필코 해수욕을 하기 위해서!

평야지대가 끝이 나고, 차귀도의 뒤통수가 막 가려질 때쯤 항구가 있는 작은 마을에서 하얗고 아담한 성당 건물이 눈에 띄었다. 산방산에선 부처께 인사를 드렸으니 가톨릭교에 대한 예도 갖추고 싶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성당 바로 우측에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 사제가 된 성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표착기념관이 있었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4월 서품을 받기 위해 제물포에서 상해로 떠났다가, 그로부터 5개월 후인 9월, 13명의 천주교도와 입국을 시도하던 중 풍랑을 만나 이곳 용수리 해안에 표착했다고 한다. 그때 타고온 라파엘호가 복원되어 기념관 오른편에 서 있다.

이 젊은 신부는 그 다음해 동료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통로를 알아보다 체포되었고, 신앙의 뜻을 널리 펼쳐보기도 전에 25세란 젊은 나이로 참수되었다.

무조건의 자비와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조차도, 그 선의 조건이 ''같음''에서 ''유일''한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이 생명을 탄압하는 정당함이 될 수 있을까. 인류 이래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종교간 대립을, 정작 그들이 믿는다는 ''신''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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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를 넘긴 시각. 정말이지 그늘이라곤 없는 해변도로 위에서 온몸으로 받아내는 태양의 열기가 만만치 않다. 달릴 땐 바람이 그나마 도와주지만, 자전거에서 내려서면 엄청난 지열에 금세 숨이 컥 막힌다. 물통의 물은 벌써 열 번 가까이 비웠다.

선인장자생지 월령마을을 지나면서 드디어 협재와 능곡, 곽지해수욕장이 지척임을 알리는 이정표들이 보였다. 앞서가던 일행이 바짝 속력을 높이기 시작한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 힘껏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협재해수욕장을 가려 했으나, 먼저 만난 것이 금능해수욕장. 어딘가가 중요치 않다. 일단 거금 1만 원에 튜브를 빌리고, 대여소 직원에 자전거와 베낭까지 몽땅 맡긴 뒤, 수영복이 없는 대신 여분의 반바지와 면티를 갈아입고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어, 물이 무릎까지밖에 안 온다. 세 살쯤 돼 보이는 꼬마도 아빠 손을 놓고 혼자서 잘 논다. 금능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온가족 피서지로 제격이며, 특이한 것은 얕은 수심이 이어지다 수 미터 앞에 다시 모래언덕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언뜻 보면 바다 중간에 사람들이 떠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신나게 해수욕을 즐기고, 튜브에 누워 하늘빛, 바닷빛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지금껏 달려온 여정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제 눈을 감으면 제주 곳곳의 그 푸르던 길들이 더욱 선명하게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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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쯤 해수욕을 즐기고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젖은 옷가지들은 샤워할 때 빨아 자전거 뒤 배낭 위에 펼쳐 널었다. 덜 마른 빨래를 건조시키는 최상의 방법이다. 어느덧 해의 기운이 주춤해지고, 바람도 한층 선선해져 있었다. 애월까지 불과 4km, 제주시내까지 24km가 남은 지점에서 한 무리의 도보순례단을 만났다.

아이들이 들고 있는 깃발에서 경남 산청의 간디학교 학생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정여행을 준비하면서, 필리핀 보홀에서 관광객들을 눈요기를 위해 고통받고 있는 야행성 안경원숭이 타쉬에르들을 위해 포퍼먼스 공연을 펼쳤다는 제천 간디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읽은 터라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학생들은 올해 입시를 치룰 고등학교 3학년들로, 여느 도시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시간과 공간에서 극기를 체험하고 있었다. 제일 뒷대열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 선생님 한 분께 여정의 의미를 물었다. 갑갑한 교실 대신 자연 속에서 인내하는 법을 배우는 정기적인 국토순례라고 했다. 검게 탄 아이들의 얼굴에선 자신감과 자유로움이 묻어났다. 한창 떨어져 걸어오던 장난꾸러기 같은 제자 2명이 선생님께 달려들며 기꺼이 기념촬영을 허락해주었다.

건강한 교육현장에서 자라고 있는 희망을 본 것 같아 그들을 보내고 돌아서는 마음이 흡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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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매력적인 건 이렇듯 예기치 않게 길 위에서 만나는 좋은 인연들 때문이기도 하다. 여정의 피날레를 장식하듯 새로운 만남은 곧바로 또 이어졌다. 이번엔 제주에 당일 도착한 자전거동호회 사람들이었다. 순간 느껴지는 깊은 동질감. 이제 막 제주일주를 시작한 그들에게 반가운 인사 외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제주의 모든 길을 보게 될 것이며, 분명 깊이 감동할 것이기 자명하기 때문이다.

앗! 어느덧 첫날 라이딩 종착지였던 중엄리 전망대에 도착했다. 나흘 만에 다시 보는 친숙한 풍경. 이 뿌듯함과 아쉬움으로 범벅된 마음을 뭐라 설명할까......

이로써 4박5일간의 제주일주는 사실상 끝이 났다. 숙소는 일몰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해안도로가 작은 민박집을 예약했다. 마당에 나무의자와 테이블이 갖춰져 있어 밤새 파도소리를 들으며 여행의 마지막 밤을 지새울 수 있는 것이 최고의 매력이다.

이제 잠시 후 보게 될 제주 ''머털도사''와의 만남과, 함께 땀흘리며 길을 달려온 일행들과의 뒤풀이만이 남아 있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이번 여행의 주제곡이 된 ''제주도 푸른밤''을 흥얼거리며 짐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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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머털도사''와의 자연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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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털도사''를 알게 된 건 공정여행의 의미를 알게 해준 임영신·이혜영 씨의 ''희망을 여행하라''는 책 속에서였다. 자신만을 위한 소비가 아닌 ''관계''를 생각하는 공정여행의 뜻을 같이 한 사람들 속에 제주 곶자왈 작은학교 아우름지기 문용포(44) 선생님이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인증한 우수과학도서 ''곶자왈아이들과 머털도사''의 저자이기도 한 문 선생님은 제주서 태어나 대학을 다니고, 잠시 외지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돌아와, 지금은 곶자왈작은학교 설립자이자 대표교사로 아이들과 생활하며, 생명과 평화와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차로 한 시간여 걸리는 거리를 직접 달려와주신 문용포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그가 전해준 ''희망의 메시지''를 여기에 옮긴다.

▶''곶자왈 작은학교''의 곶자왈이 지명인 줄 알고 찾아다녔다

대부분이 그렇게들 안다. 지형적으로 설명하자면 용암이 흘러가다가 굳어서 바위 무더기로 쪼개지는데, 그 바위 무더기에 형성되는 숲을 곶자왈이라고 한다. 공간적으로 우리 학교 주변이 곶자왈과 오름으로 둘러싸여 있고, 더 큰 뜻을 살리자면, 아무것도 없는 돌 덩어리 위에 거대한 숲이 만들어졌듯이, 우리 아이들이 처해있는 현실이 아무것도 없는 돌 무더기 땅이란 생각이 들어서, 이 학교가 아이들의 생명력을 키우는 곳, 마음껏 놀고 체험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작은 진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붙인 이름이다.

▶제주 토박이신데, 제주도 전역을 다 둘러보셨나

한동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96년도에 내려와서 틈만 나면 하루가 멀다하고 다녔다. 버스 타고 하루 20km씩 걷고. 목표도 세웠다. 몇 년 내에 제주오름과 마을들을 이렇게 다녀야겠다 하고. 그런데 크게 충격을 먹었다. ''오름 나그네''라고 해서 제주 오름을 가장 먼저 알린 김종철 선생님이 계신데, 볼품 없는 오름, 쪼만한 오름들을 다른 예쁘다, 멋지다 하는 오름보다 절절한 애정을 갖고 쓴 그 분의 글을 읽고서였다. 그때 망치로 탁 맞은 듯한 느낌...'' 너 그렇게 다니지마라'' 하는 것 같았다. 몇 개나 다녔다, 사람들한테 많이 안다 은근히 자랑도 하고 했는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또하나, 주변에서 이왕 가는 거 아이들도 데리고 가보라 했다. 난 올라가서 뭔가 얘길 해주려고 했는데 애들이 안 올라가더라. 풀꽃부터 벌레까지 오만 개 애들한텐 새롭고 흥미로운 거였다. 눈높이를 낮추고 보니까, 얼마나 많은 것이 오름 숫자 이상의 것들이 오름 하나에 깃들어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본 게 맞는 건가 하는 자각을 하게 됐고. 제주도를 다 알려면 멀었다. 다 알았다 싶으면 아니고... 죽을 때까지 다 못 볼 수도 있다.

▶생태·환경운동가로서 활동과 곶자왈 작은학교 설립 계기는?

제주대서 학생회 활동을 하다가 창원에 올라가 5년간 노동운동을 하다가 내려왔다. 한 1년 쉬다가 다시 노동운동 하자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제주참여환경이란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선배들이 함께 일하자 제안을 했다. 그냥 회원으로 참여해 6월 세계환경의 날을 앞두고, 제주의 훼손된 오름들을 사진에 담아 시청 앞에서 전시를 하게 됐다. 그게 아주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방송국에서 취재요청이 쇄도했는데, 그때 인터뷰를 하게 됐다.

딱히 직함이 없었는데 인터뷰한 모습이 전국에 방송되자 곳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 중 노동운동 같이 하던 한 지인이 "환경운동가 되기 대개 쉽네. 제주 내려간 지 2개월 만에" 하더라. 언론에서 환경운동가란 직함을 붙여준 것이었다. 그게 시작이라면 시작이다.(웃음)

지역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환경문제, 무차별적인 개발로 인한 생태문제에 접근하게 됐고, 교육에 대해선 줄곧 관심을 갖고 있다가 2006년 7월에 곶자왈 작은학교의 문을 열게 됐다.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았다. 그간의 좋은 관계 속에서, 내가 뭔가 해보려고 한다 했더니 마음을 모아주더라. 씨앗기금(설립자금)인 5700만 원은 친구와 3년동안 부은 적금 1500만 원, 개인돈 1000만 원, 2006년 제주참여환경연대가 교보문화재단이 주는 환경교육대상을 받으면서 탄 상금 중 1000만 원, 그리고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아준 돈을 모은 것이었다.

▶대안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뭘 전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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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다. 학교 가서 공부, 학원 가서 공부, 집에 가도 공부. 온통 공부해라 공부해라. 아이들한테 진짜 놀 수 있는 시간, 공간, 친구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공부만 할 줄 알고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가 나중에 어떻게 되겠나.

생명의 소중함, 평화가 왜 중요한 지, 대안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가르쳐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뭐든지 즐거워야 한다. 빨리빨리 지식 위주에서 아이들 각각의 감성 위주로, 대충 보고 지나칠 수 있는 걸 꼼꼼하게 보게 해주는 것이 내 몫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스스로 느낀다. ''평화장터''를 통해 동티모르나 티벳의 장애인학교, 난민촌의 무료탁아소 등에 모아진 기금을 전달하고, 자연 속에서 시 쓰고 노래 부르고 연극도 하면서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거고. 그 속에 우리가 있고, 그 속에 있는 다른 생명들도 우리와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을. 사람과 자연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평화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공정여행(fair travel)''의 개념을 받아들인 건?

''희망을 여행하라''의 저자인 임영신 씨가 녹색연합에서 일할 때 해마다 ''조국기행''이란 것을 했는데 99년에 제주도를 오게 됐다. 그때 부탁을 받아 제주를 여행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안내도 해주었다. 그렇게 임 씨와 인연이 시작됐고, 2006년 공정여행의 개인간 네트워크인 ''이매진피스''가 만들어지면서 쓰나미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를 함께 방문하고 온 뒤, 제주에 돌아와 우리도 해봐야겠다 마음 먹었다.

공정여행이란 단어는 낯설지만 그 개념은 제주사람들이 더 익숙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외지서 오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저렇게 여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자 좋아하고, 사투리 쓰면 웃기나 하고, 여기 문화와 사람 우습게 알고'' ''돈 주면서 막 하고''... 그러한 여행에 불만이 많았다. 그런 여행문화에 대한 고민을 계속 했었고, 분별없는 관광객들에게 바라는 여행의 모습이 바로 공정여행이 지향하는 바였다.

▶''공정여행''을 낯설거나 어렵게만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관광이란 빛을 보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두운 역사도 골치아픈 환경문제도 생각하기 싫을 거다.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왔는데, 여행까지 가서 이러해라 저러해라 규정받는 게 싫을 수 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건 ''관계''라고 생각한다. 내가 여행자로 와서 그 지역의 원주민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 것. ''쌍방''은 서로 주고받는 거니까 상대도 생각해야 한다.

''돈 주는데 고맙습니다 해야지'' 하는 생각은 관계가 아니다. 권리만 있는 게 아니라 지켜야 할 의무나 책임도 있을 거다. 그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 환경 또한 내가 지켜야 나중에 또 갈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내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 누구한테 어디로 가는 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도 물음표를 계속 던지라고 한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면 흐름 속에 묻힐 수밖에 없다. 단지 즐거운 게 아니라 지켜야할 책임. 관계 속의 여행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친구가 있기 때문에, 만나야 할 누가 있다는 게 그곳을 다시 찾게 만드는, 그러한 관계의 여행이 바로 공정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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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관광정책의 문제점은?

제주도에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골프장이 20개, 개장을 준비하는 것까지 합치면 총 40개다. 리조트, 골프장 등 외지인에 허가내주고 세금 받고 하면 행정관청은 편할 것이다. 지역주민들도 이제 농사지어 돈이 안 되니까 아무거나 개발이라도 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행 방식으로 더는 가선 안 된다. 앞으로 난리가 날 거다. 볼거리 위주, 바가지 관광, 큰 여행사만 먹여살리는 관광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주를 가장 잘 아는 도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고, 제주의 생태환경을 보존하고 알릴 수 있는 그러한 관광 아이템에 행정관청의 지원이 필요하다.

▶여행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사람의 삶도 그렇고.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할 생각인가

2004년 3월부터 제주도 탁발순례를 한 달 동안 한 적이 있는데 한 스님이 "세상이 다 미쳤더라" 하시더라. 농부건 성직자건 부자건 가난하건. 부정적인 요소들은 갈수록 더 커진다. 공룡처럼. 어떤 사람은 방법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기를 쓰고 해봐야 안 될 거다 체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안 할 거냐. 문제를 있다는 걸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럼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어떻게 풀 것인가. 이런 얘기가 있다. 한 사람이 ''저길 봐'' 하면 ''미쳤나'' 하고,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면 그 두 사람을 쳐다보고, 세 사람이 보고 있으면 그 사람들이 보는 방향을 바라본다고.

모든 사람에게 양심은 있을 거다. 깊이 숨겨져 있더라도. 그걸 어쨌거나 찾아야 한다. 막막할 때가 많다. 현실을 보면... 그렇지만 해야 되는 일이고, 결국엔 깨어 있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모으느냐가 숙제다. 같이 안 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 내 주변에 좋은 관계를 많이 만들어야한다. 문제가 있는 곳에 희망도 있다고 본다.

희망의 씨앗들을 잘 가꾸고 있으면,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함께 키워갈 수 있다. 지금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잘 지켜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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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일상으로

9시에 숙소를 나와 2시간여를 달려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지금은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 올 때와 달리 배를 이용하지 않은 건 제주와 서울간 여객선은 월·수·금 한 주 세 번만 운행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공정여행을 끝내면서. 아직은 개인적인 소소한 실천에서 머무는 수준이었으나, 이 즐겁고 무엇보다 가치있는 여정에 동참하고픈 이들이 있다면 "공정여행은 만나는 모든 것에 대한 배려"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 동식물들, 바다, 산, 하늘 그 모든 자연에 대해서. 한번 즐기고 버리는 것이 아닌, 그 속에도 우리와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두고두고 그리워하고 기억할 추억들이 자라날 것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아래로 서울 도심풍경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휴우...... 지난 4박5일간에 누린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동력삼아 저 복잡한 거미줄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희망을 싹 틔우는 하나의 ''씨앗''이 되리라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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