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축소하기로 확정하면서 업계 전반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LFP 배터리를 탑재해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던 업체들이 되려 추가적인 할인 압박에 처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번 결정이 중국 견제용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LFP 배터리는 주로 중국에서 생산하고, 중국 전기차 업체들도 자국산 LFP 배터리를 대부분 채택하고 있어서다. LFP 배터리를 겨냥한 보조금 축소가 올해 한국 진출을 노리던 중국 전기차 업체에 빗장이 될 공산이 제기된다.
21일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전기차 보조금은 배터리 성능과 재활용 가치 등을 따져 차등 지급된다. 배터리 부피당 전기 출력을 계산한 효율성과 폐배터리 1㎏에서 나오는 유가금속 가격 등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 출력 효율과 재활용 가치가 높은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집중한다는 취지다.
전기차 배터리는 크게 LFP 배터리와 니켈·코발트·망간(NCM) 삼원계 배터리로 나뉜다. 중국 업체들이 선점한 LFP 배터리는 NCM 배터리 대비 가격은 저렴하지만 출력 효율이 30% 정도 낮다. 국내 전기차는 대체로 NCM 배터리를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LFP 배터리는 사용후 재활용할 수 있는 금속도 사실상 리튬뿐이다. 니켈·코발트·망간을 꺼낼 수 있는 NCM 배터리보다 재활용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보조금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테슬라가 대표적이다. 중국산 LFP 배터리를 탑재한 모델Y 후륜구동의 보조금은 지난해 514만원에서 올해 195만원으로 62.1% 줄어들었다. 최근 전기차 보조금 100% 지급 기준선인 5500만원 미만을 맞추려고 가격을 200만원 인하했지만, 보조금 감액폭이 커지면서 실질적으로는 차량 가격이 상승한 꼴이 됐다.
반면 NCM 배터리를 장착한 국산차는 비교적 영향을 덜 받았다. 그중 현대차 아이오닉6는 환경부 기준을 충족한 데다 할인 인센티브까지 더해 최고액인 690만원의 보조금이 책정됐다. 정부는 제조사가 차량 가격을 할인할 경우 할인 금액의 30%, 최대 100만원 한도 안에서 추가 보조금을 지급한다.
배터리를 기준으로 보조금 변동이 커지자 전기차 업계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LFP 배터리를 채택해 온 완성차 업체의 고민이 크다. 고객을 확보하려면 쪼그라든 보조금을 상쇄할 가격 할인이 동반돼야 한다는 인식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일례로 KG모빌리티는 환경부가 차종별 보조금을 발표한 날 토레스 EVX의 가격을 200만원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토레스 EVX는 중국산 LFP 배터리를 사용하면서 올해 보조금이 지난해보다 203만원 줄었다. KG모빌리티는 "보조금 축소로 가중된 고객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차량 가격을 한시적으로 200만원 인하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환경부의 보조금 정책이 중국산 전기차의 국내 시장 진입을 견제하려는 조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이번 조치로 LFP 배터리가 탑재된 중국산 전기버스의 보조금은 지난해보다 최대 4300만원가량 줄어든다. 올해 국내 진출을 준비중인 중국 전기차 1위 업체 BYD의 구상에도 일부 변화가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