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고(故) 채모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초기부터 유가족 동향과 수사기록 이첩 상황, 임성근 당시 해병대 제1사단장의 정상 근무 여부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인 보고를 받아왔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20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이 사건 초기 단계에서부터 유가족 동향과 같은 디테일한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2023년 7월 말, 8월 초 사이 대통령실은 군과 경찰에 조직적으로 압력을 넣어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이 수사 대상자가 되는 것을 막았다"며 "국가안보실은 물론 공직기강비서관실까지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폭로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채모 상병 영결식이 열렸던 지난해 7월 22일 장례를 치른 유가족들의 동향을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러한 정황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국가안보실에서 파견 근무 중인 해병대 김모 대령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파악됐다.
'김계환 사령관의 문자메시지 수발신 내역'에는 당일 오후 9시쯤 김 사령관은 김모 대령에게 '채 상병 부모님이 전한 말', '장관에게도 보고했다. 장관이 V(윤 대통령)에게도 보고했다고 답장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담겼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국방부는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기록이 경북경찰청으로 이첩됐던 지난해 8월 2일에는 장관 군사 보좌관을 통해 수사기록 이첩 상황과 당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의 직무수행 여부 등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인권센터는 "(8월 2일) 오전 11시 52분쯤 국방부 장관이 장관 군사 보좌관을 통해 김 사령관과 통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수사단장에게 이첩을 미루라고 정확하게 얘기한 것이 맞는지' 물었다"며 "장관 군사 보좌관은 12시 42분에 사령관에게 뜬금없이 메시지를 보내 임성근 사단장이 정상 직무수행 중인지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첩 상황을 파악하다 말고 관련성이 떨어지는 임 사단장 신변 문제를 물어봤다는 것은 임 사단장에게 관심 있는 누군가가 궁금해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군과 대통령실 주요 관계자들은 국회·법정에서 채모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군과 경찰, 유가족 동향 등 세부적인 사안들은 대통령실에 보고한 일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30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통령이 7월 31일 오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결과 보고를 받은 적 없다"며 "대통령께서 그런 디테일을 파악하실 만큼 한가하신 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조 실장은 또 수사기록이 이첩된 상황을 파악한 경위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수사기록 이첩 상황을 처음에 국방비서관에게 보고 받았다"라고 답변했다가 "언론에서 봤다"라고 답변을 번복하기도 했다.
또 김 사령관은 그동안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과 8월 2일 15시 56분에 한 차례 통화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박정훈 전(前) 해병대 수사단장의 항명죄 관련 재판을 통해 김 사령관과 임 차장이 당일 오후 12시 50분쯤 통화한 사실이 있었다고 밝혀졌다.
이에 대해 군인권센터는 윤 대통령이 사건 초기부터 세부적인 보고를 받았을 뿐 아니라, 애당초 사건을 축소하려 했던 것으로 의심된다고 짚었다.
단체는 "유가족 심경까지 보고 받고 있던 대통령이 사망 사건 수사 결과와 같이 중요한 사항은 보고 받지 않았다는 얘기는 납득이 어려운 궤변"이라며 "7월 30일 국방부장관 수사 결과 보고 전후로 임기훈 국방비서관, 행정관 김모 대령 등이 수사결과 보고서를 손에 넣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 점 역시 퍼즐이 맞춰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실은 '통상적인 정보 수집'이라 일축해왔지만 실상은 대통령 관심 사안이라 바삐 움직였던 것"이라며 "같은 맥락에서 8월 2일 해병대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수사기록을 이첩한 뒤 복수의 대통령실 관계자들과 국방부가 해병대와 경찰에 벌집 쑤시듯 연락을 돌린 이유도 설명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