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주요 대학 병원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사직서를 내는 등 집단행동 모습을 보이자, 정부가 예고한 강경 대응 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의료진의 집단행동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등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 상태다.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하면 최대 3년 이하 징역과 면허 취소도 가능하다. 다만 실제 처벌 수위에 있어서는 불응 규모와 피해 정도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20일 정부와 법조계 안팎에 따르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불법적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처할 방침임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뒤 복귀하지 않고 장기간 자리를 비워 사망 등이 발생하면 법정 최고형까지 갈 것"이라며 "이번에는 사후 구제나 선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정부의 강경 대응 기조를 이어간 것이다.
정부의 이런 방침은 업무개시명령 이행 여부를 기준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의료법 제59조는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집단으로 휴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서울대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냈지만, 현행법에 따라 병원 측이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으면 사직서 효력은 최소 한 달 뒤에야 발생해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적용받게 된다.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하면 1년 이하 자격 정지 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면허가 취소된다. 특히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된 개정 의료법은 의료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 그 면허를 취소하고, 재교부 금지기간도 늘려(실형 시 3년→5년, 집행유예는 2년) 구속력을 높였다는 평가도 있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우 변호사는 "업무개시명령 위반죄는 행정적으로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바로 구성 요건에 해당이 돼 행정명령을 거부할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는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 두 달 후까지 환자 배정이 돼 있는 전공의들이 갑자기 집단으로 사직한다면 환자들은 결국 치료받을 기회를 상실하고 그런 점에서 진료 거부 행위에 해당한다"며 "어느 한 직업이 독점권을 갖고 국민의 치료받을 권리, 생명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게 하는 사태는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업무개시명령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공유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정부가 당사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을 때 이를 알리는 행정절차인 '송달' 과정을 피하고자 모르는 전화를 받지 않거나, 문자 메시지 등을 확인하지 않는 방법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업무개시명령 위반의 법정 최고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규모와 정도를 살펴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의료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심각한 범죄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면허 취소 사유와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의료인에 대한 (면허 취소 사유인) 금고형 이상의 처벌은 범죄 행위가 굉장히 심각할 때 나온다"며 "파업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99% 초범일 것인 데다, 법원 심판까지 가면 '직을 잃을 만큼 잘못한 것인지' 부분까지 고려하게 돼 금고형까진 받기 어려울 것이고, 한 달 정도의 자격 정지 행정 처분 정도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에 비춰보면 면허 취소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당시 의료법 위반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재정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등 9명은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돼 2006년 면허가 취소된 뒤 재발급까지 3년이 걸렸다.
하지만 2000년 사례와 이번 사태를 직접 비교하긴 어렵단 시각도 많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를 구심점으로 한 전공의들의 자발적 파업이 예고된 현재와 달리, 당시엔 김 회장 등 의협 집행부의 '파업 동참 강제성'이 처벌 수위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1심 법원은 "국민을 볼모로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집단휴업 투쟁에 응하고 싶지 않아도 모든 의사가 가입이 의무화된 의협의 결의사항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징계 처분의 대상이 돼 여러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14년 원격의료 도입 및 영리병원 추진 반대 시위로 노환규 당시 의협 회장 등 2명이 기소됐지만, 무죄가 선고되는 데에도 '파업 동참 강제성이 없었다'는 판단이 주효했다.
또 일각에서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개별 사안에 따라 달리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혜승 법무법인 반우 변호사는 "정부가 이번 사직을 '정말 사직할 생각이 없는데 골탕 먹으라고 거짓말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업무방해죄로 볼 수 있지만, '이 기회에 정말 수련을 그만하겠다'는 이들에게까지 근로자가 회사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사직했다고 보긴 곤란하다"면서 이 경우 "일률적 처벌보단 개별적으로 사안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박단 대전협 대표는 전날 자신의 SNS를 통해 사직서 제출 사실을 밝히면서 "애초에 응급실은 문제가 많았고, 동료들이 언제든 병원을 박차고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현장 따윈 무시한 엉망진창인 정책 덕분에 소아응급의학과 세부 전문의의 꿈, 미련 없이 접을 수 있게 됐다"고 적었다.
정 변호사의 설명에 비춰본다면 박 대표가 올린 게시글도 분석에 따라서는 업무방해죄 적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편 복지부는 의협 집행부 2명에게 '집단행동 교사금지 명령'을 위반한 혐의에 따른 의사 면허정지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경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전체 사안을 주동하는 이들에 대해선 구속 수사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