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증원을 이유로 의사들이 파업에 나서는 경우는 해외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의사들만 '유난히, 기득권을 위해' 의대 증원에 반대한다는 주장도 어폐가 있다. 문화·제도적 맥락에서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역정원제' 실시한 일본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중반부터 4만 3천여명 가량 의사를 증원해오고 있다. 하지만 의사들의 반발은 없다.
우선 우리나라와 다르게 '지역정원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역정원제란 지방 거주 고등학생이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지역 의대에 진학하고, 해당 지역 의료 기관에서 의무적으로 9년 이상 근무하는 제도다.
지역정원제와 관련한 일반 의사들의 불만도 없다. 지역 정원제를 일반 의사와는 다른 트랙으로 선발하므로 입학 커트라인도 더 낮기 때문이다. 만약 결혼 및 개인 사정 등의 이유로 의무 근무지를 이탈하는 경우 전문의 자격 부여 금지, 정부 보조금 삭감 등의 패널티를 발빠르게 부과한다. 의대 정원 확대의 본 목적인 지역 의료 심폐 소생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로 지역의료기관에 장기 근속하는 계약 방식을 도입해, 의무 복무를 규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계약 위반 시 벌칙 요소가 전제 되지 않아 안정적 인력 확보 기대가 어렵다.
게다가 아직은 지역 의료 지원 및 환자 수 부족, 낮은 의료 수가 등 지역 의료 체계 자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일본과 같은 강제적 규제 없이는 젊은 의사들이 지역에서 근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의사 측은 의사 수를 늘려 지방으로 보내는 것이 실효성 없을 뿐더러, 의사를 지역에 몇 년 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것 또한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한편, 일본 특유의 문화가 일본 의사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영국 의학저널 BMJ에 따르면, 일본 의사들은 공개적으로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긴다.
경희사이버대학 일본학과 오태헌 교수는 "일본에서 파업은 모든 업종에서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의사 증원과 수입이 직결되지 않는 독일
독일은 의대 입학 정원을 연 5천명씩 늘리기로 했다.
이에 독일 최대 의사 노동조합 '마부르크 분트'는 오히려 의대 정원 증가를 위해 정부가 당장 움직일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의사가 늘어나면 '진료 부담이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일과 우리나라는 의사 양성 방식과 공공 의료 비중이 달라 비교하기 어렵다.
독일은 대학병원이나 지역 공공병원 의사들은 진료 과와 관계 없이 단체 협약을 통해 정해진 월급을 받는다. 의료 수가 적용을 받는 과(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와 그렇지 않은 과(성형외과, 안과, 피부과)가 나뉘는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개원의도 공보험(건강보험) 환자를 받는 경우, 최대 진료 횟수가 정해져 있어 수입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의사 수가 늘어나도 임금이나 수입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영의료체계로 의료 문제 해결하는 영국
영국은 오는 2031년까지 의대 입학 정원을 1만 5천명까지 증원할 예정이다.
영국의 의료 환경 또한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의대 정원 확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영국은 국영의료체계로 의사 대부분이 NHS(국영의료서비스) 소속이다. 전문의가 NHS하 평준화 된 월급을 받는다.
그에 따라 영국에서는 한국의 '기피과'로 알려진 외과가 인기다.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국 의대생들이 전공을 택할 때 '사법 리스크'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사법 리스크는 민형사상 책임을 의사 개인한테 지우는 것으로, 한국 필수의료 붕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의료 사고 소송이 제기되어도 NHS 소속인 병원이 부담한다. 의사 대부분은 MDU(Medical Defense Union)에 가입되어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의료 현장에서 요구하는 의료 수가 문제와 사법 리스크 등의 문제가 없는 영국에서는 의대 입학 정원 증가를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