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시작으로 줄줄이 사직"…전공의 공백에 의료대란 오나

수도권 빅5 병원 전공의 19일 집단행동 돌입…사직서 내고 20일부터 업무 중단
병원들, 의료진 공백에 대비해 비상상황 돌입…중증도 따라 수술 일정 미루거나 취소
정부, 불법에 엄중 대처 방침 세우면서 대화 내세워…"국민 건강 불모로 삼는 일 안 돼"
의협 "정부 제시한 대안 회유책 될 수 없어"…오는 25일 대표자 회의 열고 대규모 집회 추진

연합뉴스

전공의들이 의과대학 증원 정책에 반발해 19일 본격적으로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수도권 빅5 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이날부터 사직서를 내고 20일부터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의료현장의 혼란이 극심해질 전망이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빅5병원 전공의 대표들과 논의한 결과, 해당병원 전공의 전원이 이날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

빅5의 대형병원 근무 의사 중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달한다. 의료현장의 핵심 인력인 만큼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 규모에 따라 의료 현장의 혼란 정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빅5 병원들은 전공의 공백에 대비해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20일 이후 예정된 수술 중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수술부터 일정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있다. 세브란스 병원은 지난 16일 내부 공지를 통해 "마취통증의학과에서 병소 대비 50% 미만으로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임상과별로 수술 스케줄을 조정해 달라"고 전했다.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는 19일부터 파업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도 오는 20일  40개 의대가 모두 휴학계를 내기로 했다. 의대협은 지난 15일부터 16일까지 전국 의대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0% 이상이 동맹휴학에 찬성했다.


한덕수 총리 "국민 생명 담보로 삼는 집단행동 안 돼…대화로 풀자"



정부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은 국민생명을 볼모로 잡는 행동이라며 자제를 촉구하고 나서는 한편 불법 행동에는 엄중히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공백은 국민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삼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총리는 필수의료·지역의료 문제 등 의과대학 정원 증원의 필요성을 거론하며 "절대적인 의사 수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의료개혁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의대정원 확대는 더 늦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사들에게 "의료사고 처리 특별법을 제정해 의료사고 안전망을 구축하겠다"며 "필수의료 의사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게 2028년까지 10조 원 이상을 투입해 필수의료 수가를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16일 오후 6시 기준 전공의 수 상위 100개 수련병원 중 23개 병원에서 7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서울아산병원 등 빅5를 비롯해 인하대, 원광대, 분당재생병원 등이 포함됐다.

정부는 실제로 사직서를 수리한 경우는 아직 없다고 전했다. 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전공의분들이 실제 집단행동에 들어갈 경우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법에 부여된 의무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지자체와 함께 비상진료 대책상황실을 운영하는 한편 전국 400곳 응급의료기관에 24시간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국의 35개 지방의료원, 6개 적십자병원, 보건소 등 공공병원의 진료시간을 연장하고 비대면 진료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현장을 지키지 않는 의료진에게 면허취소 카드까지 꺼내들며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자며 회유책도 제시했다.

정부는 '4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마련한 만큼 앞으로 정책을 다듬어나갈 수 있도록 대화의 장으로 나와달라고 요청했다.

한 총리는 "의사들도 고통에 겪고 있다. 국민이 꼭 필요로 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의료진이 충분한 보상도 받지 못하면서 밤샘 근무, 장시간 수술, 의료소송 불안감에 지쳐가고 있다"며 "고령화로 의료 수요와 기대 수준은 높아지는데 낡고 불합리한 의료체계는 그대로 둔채 의사 개개인의 헌신과 희생에 의존해온 탓"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의 질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며 "2천 명이라는 증원 규모는 정부가 독단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국내 최고 전문가들과 대학들이 함께 장기간 신중하게 논의한 결과"라고 밝혔다.

또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국민 생명·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오신 데 대해 깊이 감사하며,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 덕에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했다"며 "의료 개혁과 관련해 정부는 언제든 대화하고 소통할 준비가 돼 있다. 집단행동이 아닌 합리적 토론·대화로 이견을 좁혀나가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한다"고 거듭 호소했다.

의협 "의사라는 전문직 마녀사냥…정부 행태 실망"

연합뉴스

정부의 '호소'에도 의사협회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의협은 한 총리 담화문 직후 성명서를 내고 "환자와 국민을 볼모로 대한민국 의료를 쿠바식 사회주의 의료 시스템으로 만들고, 의사라는 전문직을 악마화하면서 마녀 사냥하는 정부의 행태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 큰 실망과 함께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무총리의 담화문 발표는 당장 이번 주로 알려진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행동에 단체행동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이를 처벌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의대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폐기하고 의료계와 진정성 있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7일 첫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연 의협은 후배 의사들이 면허 취소 등 피해를 입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행동에 돌입하고 정부에 법적 조치를 시행할 방침이다.

또 25일부터 전국 대표자 비상 회의를 열어 다음달 전 회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 개최를 검토중이다.

한편 간호사 등 의료기관·복지시설 노동자들이 가입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의대 증원에 맞선 의사 집단 진료중단은 국민 생명을 내팽개치는 비윤리적 행위"라며 "의사들의 단체행동을 막기 위해 국민·시민사회·국회와 지역사회가 범국민행동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