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나타나는 정몽규, 클린스만 경질 전 '선임 배경'부터 밝혀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류영주 기자
대한축구협회(KFA) 전력강화위원회가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경질로 뜻을 모았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정몽규 축구협회장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협회는 15일 축구회관에서 제1차 전력강화위원회를 개최해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 문제를 논의했다. 회의 결과가 예정된 오후 2시에서 오후 4시로 2시간가량 늦게 발표될 만큼 임원들 간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에는 마이클 뮐러, 정재권, 곽효범, 김현태, 김영근, 송주희 위원 등 6명이 참석했다. 현재 거주지인 미국에 있는 클린스만 감독과 박태하, 조성환, 최윤겸 위원은 화상으로 참석했다.

정 회장은 이날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회장이 전력강화위에 참석할 의무는 없지만, 중차대한 사안을 논의하는 만큼 최종 결정권자인 정 회장이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 문제는 축구와 관계 없는 정치권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전력강화위는 클린스만 감독에게 한국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결승 탈락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경질로 뜻을 모았다. 이날 회의 내용을 정 회장에게 보고하며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촉구했다.

결국 정 회장은 16일 오전 주요 임원진을 소집해 임원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위르겐 클린스만. 박종민 기자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졌다. 선임 전 각종 논란에 휩싸였던 클린스만 감독을 데려와 원칙과 시스템을 무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2019년 11월 헤르타 베를린(독일)을 맡았지만 단 10주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은 바 있다. 당시 구단과 상의 없이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사퇴를 발표하는 등 기행을 벌였다.

앞서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는 제5차 회의에 홀로 불참했다. 임원 회의는 올해 총 4번 열렸는데, 정 회장이 불참한 것은 이번 5차 회의가 처음이다. 그동안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에 시민 단체 '턴라이트'는 이날 회의에 앞서 축구회관 앞에서 정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배경과 과정, 연봉 기준 등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전력강화위원회 결과를 발표 후 자리를 뜨고 있다. 황진환 기자
이날 전력강화위에서는 클린스만호의 아시안컵 성과에 대한 평가가 진행됐다. 한국은 요르단과 준결승전에서 유효 슈팅을 1차례도 시도하지 못할 만큼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0대2 참패를 당했다.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역대 최고 전력을 자랑했지만 64년 만의 정상 탈환을 허무하게 놓쳤다. 어느 때보다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만큼 팬들의 실망감은 매우 컸다. 

전력강화위 브리핑을 맡은 황보관 협회 기술본부장은 "준결승에서 두 번째로 만나는 상대임에도 전술적 준비가 부족했다"면서 "재임 기간 중 선수 선발과 관련해서 감독이 직접 다양한 선수를 보고 발굴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은 요르단과 조별리그에서도 졸전 끝 2대2 무승부를 거뒀다.

대회 기간에는 선수단 내 불화가 있었다. 준결승을 하루 앞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손흥민과 이강인 등 핵심 선수들의 다툼이 발생했다. 황보 본부장은 "선수단 관리에 대해서는 팀 분위기와 내부 갈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지도자로서 팀의 규율과 제시하는 점에서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전력강화위원회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변명거리부터 찾았다. 황보 본부장은 "클린스만 감독은 그것(선수단 내 불화)이 경기력의 영향이 됐다고 설명했다"면서 "핑계를 대는 것보다는 불화 때문에 경기력이 안 좋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력강화위는 클린스만 감독의 근무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2월 부임 후 꾸준히 잦은 해외 출장, 재택 근무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황보 본부장은 "국내 체류 기간이 부족한 근무 태도에 대해서도 국민들을 무시하는 것 같다"면서 "여러 약속 지키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서 회복하기 불가하다는 평가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스포츠인 축구에서 그동안 대표팀 감독은 내용과 결과가 이슈가 됐는데, 근무 태도가 이슈가 되면 안 된다는 비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임원들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로 결론을 내렸다. 황보 본부장은 "여러 가지 이유로 클린스만 감독이 더 이상 대표팀 감독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면서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전반적으로 모아졌다"고 밝혔다.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전력강화위원회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클린스만 감독의 전례 없는 만행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제서야 전력강화위를 열고 클린스만 감독의 문제를 지적한 데 대해 오히려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한 협회 스스로에 대한 성찰은 없었다. 모든 것을 클린스만 개인의 문제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정 회장이 감독 선임 과정에서 원칙과 시스템을 무시하지 않았다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 회장의 안일한 판단이 아시안컵 실패를 초래한 셈이다.

자신의 잘못은 감추기 바쁘면서 선수들의 불화는 재빠르게 인정한다. 지난 14일 영국 매체 '더 선'은 대회 기간 손흥민과 이강인 등 핵심 선수들의 다툼이 발생했다고 보도했고, 협회는 곧바로 해당 보도가 사실임을 인정했다. 협회는 감싸야 할 선수를 오히려 사지로 내몰았다.

이날 임원 회의에서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이 결정되더라도 협회는 자신들의 과오를 소상히 밝힐 필요가 있다.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배경과 과정, 연봉 기준 등을 공개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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