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고,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시상자로 무대를 오른 윤여정. 그가 오랜만에 한국 영화 '도그데이즈'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수상자에서 시상자로, 영화 '미나리'에서 애플TV+ '파친코'로, 할리우드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윤여정은 '오스카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은 이후에도 여전히 '윤여정'다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어떤 때는 시나리오, 어떤 때는 감독 등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늘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그의 '마음'이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올곧게 걸어간다.
이번 '도그데이즈' 역시 그러한 길에 놓인 작품 중 하나다. 이번엔 '감독'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 안에서 늘 그래왔듯이 최선을 다해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를 그려냈다.
윤여정과의 인터뷰 역시 '윤여정'다웠다. 솔직하고 거침없지만, 자신만의 소신과 철칙이 그 중심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에 그와의 인터뷰를 최대한 가감 없이 전해보고자 한다.
영화적인 매력은 없었고, 감독 때문에 하기로 했다. 김덕민 감독과는 전에 조감독과 배우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전우애 같은 게 쌓였다. 마음속으로 '덕민이가 입봉하면, 내가 할 게 있으면 하리라' 생각했고, 그 결심을 지키려고 했다.
▷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따로 있나?
그때그때 다르다. 나이가 있고 그러니 선택지가 많지 않다. 내가 잘 나가는 배우도 아니니까. 어떤 때는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때는 감독을 본다. 감독도 명망 있는 감독 그런 건 없다. 감독과 내 인연을 본다. 그런데 이게 그때그때 다르다. 이번엔 감독 때문에 한 게 확실하다.
민서의 관용인 거 같다. 그는 지병이 있고, 곧 떠날 사람이다. 난 그 여자(민서)가 제일 옳은 결정을 한 게 그거인 거 같다. 지유에게 완다를 보낸 것 말이다. 난 그게 너무 현명한 결정이고, 지유를 위해서도, 완다를 위해서도 너무 잘한 거라 생각한다.
▷ 실제로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잃어버리고(반려견이 세상을 떠났다는 뜻) 다시는 그런 일을 안 하기로 했다. 그게 자식을 하나 키우는 거다. 그런데 내가 자식을 키울 나이가 못 된다. 친구들은 입양하라고 하는데, 내가 키울 자신이 없다. 그냥 외롭게 살다 가려고 한다.
상이라는 건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내가 생각해 보면 그건 봉준호 감독이 문을 두드렸고, 이후 모든 게 맞춰지고, 운이란 게 받쳐줘야 하는 거다. 당시 아시아인 비하 논란에 팬데믹 등 여러 가지가 맞아떨어져서 내가 불가사의하게도 상을 받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신기했다.
어릴 때 데뷔작 '화녀'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탔다. 그때 내가 '세상은 내 거구나' '난 정말 연기 잘하는구나. 여우주연상을 타다니' 그랬는데, 이제는 내가 알았다. 상이 주는 허망함과 아무 의미 없음을 아는 나이에 받았기에 내가 더 감사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 일, 감사하고 기쁜 일, 사고 같은 일이지만 기쁜 사고라 생각할 수 있는 감사한 나이에 받아서 좋았다.
▷ 윤여정이란 배우를 보며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 할리우드 등 더 넓은 무대로 향하는 도전에 나서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난 조언을 못하는 사람이다. 조언은 공자님이나 이런 사람이 하는 거다. 난 할리우드도 잘 모른다. 옛날 CF에 나온 말 있지 않나.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는. 내걸 하다 보면 세계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난 늘 솔직했다. 그런데 고민이 좀 있다. 정직한 것과 솔직한 건 다르다. 솔직함으로써 내가 남한테 무례할 수 있기에 이 경계선을 잘 타야 한다. 솔직함은 무례함일 수도 있다. 그게 자랑은 아닌 거 같다. 그래서 품위 있게 늙으려고 노력한다.
유머 감각이 있다면, 내가 어렵고 힘들고 더럽게 살아서 모든 걸 웃자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내가 하는 농담은 내가 너무 더럽고 힘들게 살아서 하는 농담이다. 인생이 힘들다는 걸 알아서 모든 걸 즐겁자고 하는 거다. 사는 게 더럽지 않나? 힘들고…. 상사한테 까이면 얼마나 더럽나? (웃음)
▷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나?
지금은. 그때(젊었을 때)는 천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타고난 연기자도 아니고, 빼어난 탤런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이렇게 오래 하는데 천직이 아니라고 해도 실례 아닌가?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때그때 또 바뀐다. TV 드라마 할 때는 지난번에 한 역할은 안 한다는 걸 지키려고 했고, 요즘은 사람을 보고 시나리오를 본다. 나이가 드니 여유가 생겼다. 난 이제 정리할 나이다. 아직도 일을 하고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내 일은 내게 일상이 됐다. 그래서 감사하면서 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지 않다. 내가 지금 뭘 따지고 셈할 일이 남았겠나.
▷ 지금 영화계가 여러모로 위기를 겪고 있는데, 한국 영화계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난 조그만 영화, 다양성 영화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사실 내가 남들과 같은 취향은 아니더라. 많은 감독과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면 쪽박 찬다더라. 난 '일 포스티노'(감독 마이클 래드포드)를 좋게 봤다. 그런 영화가 너무 아름답고 좋다. (웃음) 영화계가 어려운 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내가 참여한 영화가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성공한 거다. 그 감독이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