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선 그은 '자체 핵무장'…하려 해도 단기간에 안되는 이유

특별대담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KBS와의 신년대담에서 '자체 핵무장' 관련 질문에 "핵 개발 역량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에 비춰 볼 때 마음만 먹으면 시일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내에서도 우리 원전 기술 성숙도를 볼 때 핵무장을 결심하기만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통념이 퍼져 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따져 보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핵 잠재력'으로 언급되는 핵연료 재처리, 우리 원전에선 어려워

핵무기 원료는 크게 2가지가 있다. 우라늄의 순도를 높여 농축한 고농축우라늄(HEU), 원자력발전소에서 우라늄으로 원자로를 가동시킨 뒤 이를 재처리해 만드는 플루토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핵 잠재력'으로 흔히 언급되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가 후자다.

문제는 원자로를 오래 가동할수록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239와 함께 불순물에 해당하는 플루토늄 240도 핵연료에 함께 섞여들어간다는 점이다. 핵무기를 제조하려면 플루토늄 239 비율이 93% 이상이어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 그 자체를 위해 원자로를 가동하므로 짧은 기간만 가동하고 재처리를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쉽지 않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연구한 사회주의 과학기술 전문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명예연구위원은 "북한은 짧게 1년 정도만 원자로를 가동해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지만, 우리 원전은 충분한 전력 생산과 경제성을 위해 장기간 가동한다"며 "이를 핵무기로 쓰려면 1년 정도 짧게 가동한 뒤 사용후 핵연료를 새로 반출해야 하고, 또다시 몇 달을 냉각한 뒤 재처리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재처리 자체도 문제가 있다. 핵무기를 만들려면 사용한 핵연료를 질산에 녹여 핵연료만 뽑아내는 습식 재처리(퓨렉스, PUREX)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한미 원자력 협정에 의해 실행은 물론 관련 기술 개발조차 할 수 없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로 보내야 하고, 재처리 뒤에도 플루토늄은 들여올 수 없다. 한국의 핵무장을 막기 위한 미국의 '안전장치'다.

핵무장 결심 뒤 협정을 준수할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현재 퓨렉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2015년 협정 개정 때 핵무기를 만들 수 없는 건식 재처리(파이로 프로세싱) 기술 연구 일부만 허용받았을 뿐이다.

고농축우라늄 20kg 필요한데, 2000년 우리 방법으론 1년 내내 해도 175g?

일반적으로 상업용 원자로에 쓰는 우라늄은 우라늄 235가 3~5% 정도를 차지한다. 고농축우라늄(HEU)은 이 비율을 농축을 통해 올린 뒤 핵무기의 원료로 쓰는 방법이다.

북한과 이란 등은 원심분리기를 쓰지만, 이는 당연히 국제사회의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다. 2000년 초에 우리도 핵연료 개발 과정 중 농축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썼던 방법은 전자총으로 극소량의 우라늄을 증기화해, 이를 담은 용기가 견디는 온도에서 레이저로 농축하는 쪽이었다.

당시 농축한 우라늄 0.2g의 농도는 무기급에 필요한 90%에는 못 미쳤다고 알려진다. 2015년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사찰을 진행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해당 실험의 평균 농축도를 10%, 최대 농축도를 77%로 파악했다.

우리 정부는 2004년 9월 "실험 당시에는 IAEA 신고 사항이 아니었지만, 2004년 2월 발효된 안전조치 추가의정서에 따라 새롭게 신고 대상이 됐다"며 이를 IAEA에 신고했고, 당시 큰 파문이 일어났다. 그 뒤로 한국은 자체 핵무장 추진설이 나올 때마다 미국의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다.

더욱이 핵탄두 1발을 만드는 데 필요한 HEU는 20kg 정도인데, 이런 방식의 HEU 생산은 효율이 너무 낮다.

이춘근 명예연구위원은 "이 방법으로는 쉬지 않고 1년 내내 가동해도 175g으로, 20kg을 얻으려면 설비 110대 이상이 필요하며, 90% 이상으로 농축시켜 20kg을 만들려면 680대 이상이어야 한다"며 "설비 대형화도 어렵고 24시간 상시 가동도 어려우니 실제 필요한 기기 대수는 이를 월등히 능가한다. 조기 생산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1977년 5월 26일 동아일보 4면에 실린 우라늄 농축 관련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 1977년 5월 26일 동아일보는 미국이 당시에 연구하고 있다는 원자법 레이저 농축을 통해 "3.5일에 HEU 20kg을 생산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전열 후드로 금속 우라늄을 증발시키는 방법인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3천도 이상의 고열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춘근 박사는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호주 과학자가 제시한 분자법으로 전환했고, 이마저도 공업화 전망이 어둡다"며 '단기간 핵개발 가능' 주장에 대해 "우리가 대형화할 수 없어 극소량으로 실험한 것을 미국이 포기한 대형화 가능 수치에 끼워 맞춘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현실을 떠난 이런 설이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우리를 규제하려는 외국 담당자와 기관들에게 빌미를 제공한다"며 "일본은 흔들림 없는 비핵화 정책('비핵 3원칙' 등)으로 국제사회의 신뢰와 협력을 얻어내 자유로운 연구와 농축, 재처리를 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핵 위협에 계속 제기되는 핵무장론…尹 "NPT 철저 준수가 국익에 더 부합"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위협으로 인해 자체 핵무장, 또는 핵연료 재처리 기술 확보 관련 여론이 힘을 받고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최종현학술원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조사해 2월 5일 발표한 '북핵 위기와 안보상황 인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72.8%를 기록했다.

다만 1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76.6%였는데, 올해 3.8%p 낮아졌다. 학술원 측은 이를 워싱턴 선언과 함께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한 안보협력 강화 결과와 관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KBS 대담에서 "우리가 자체 핵 개발을 하면 북한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경제제재를 받고, 그러면 우리 경제는 아마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핵비확산조약(NPT)를 철저히 준수하는 쪽이 국익에 더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미국의 확장억제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확장억제를 더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협의그룹(NCG)을 만들어, 구체적인 핵 운용에 관한 계획과 실행에 있어 양국이 밀접하게 논의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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