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른바 '우크라 국민영웅'으로 불려온 발레리 잘루즈니 군 총사령관을 8일(현지시간) 전격 경질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성명에서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만나 2년간 우크라이나를 지켜준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해임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크라이나군이 요구하는 혁신과, 누가 군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며 "지금이 바로 그 혁신의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잘루즈니 장군에게 팀의 일원으로 남아 달라고 요청했다"며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새 총사령관으로는 지상군 사령관으로서 수도 키이우 방어를 전담해온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장군이 임명됐다.
이같은 인사에 대해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장 큰 지도부 개편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하반기 반격 실패로 러시아의 공세가 더욱 거세지고, 미국 의회 분열 등으로 추가 군사 지원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지도층 내 갈등이 표출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 해임설은 지난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외신에 보도된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4일 보도된 이탈리아 공영방송 RIA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재설정, 새로운 시작이 확실히 필요하다"고 직접 언급하며 해임설을 사실상 인정했다.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은 2022년 2월부터 우크라이나군을 이끌며 대러 항전을 지휘한 인물이다. 전쟁 초반 키이우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물리치고 러시아가 점령했던 영토의 절반가량을 되찾으면서 국가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젤렌스키 대통령의 군사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견을 제기하며 갈등을 빚었다.
50만명 규모의 추가 병력 동원을 둘러싼 대립,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이 미국 등 서방과 몰래 휴전 논의를 하다가 들통난 게 해임 사유라는 관측도 있다.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높은 것도 두 사람 간 대립 구도를 심화하는 요소로 꼽힌다. 차기 권력에 대한 경쟁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여론조사에서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의 신뢰도는 88%에 달한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을 신뢰한다는 응답률은 62%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조치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위험"이라고 평가했다. "잘루즈니 장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신뢰받는 공인이자 젤렌스키 대통령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불리지만, 본인은 공개적으로 정치적 야망을 표명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도 "전쟁통에 군 고위 지도부를 해임한 것은 작전계획 차질 등의 위험을 초래한다"며 "우크라이나에는 일반참모직을 맡을 고위 사령관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