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의대정원 2천 명 증원'에 반발한 의료계와 정부의 '강 대 강' 대치가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일 2025학년도 대입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은 즉각 총파업 절차를 밟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이른바 '빅5' 등 서울 대형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전공의들도 집단행동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정부는 모든 가용수단을 동원하겠다며 강경대응 원칙을 거듭 밝혔다. 또 "정부는 어떠한 형태의 대화에도 열려있다"면서도, 의사들이 환자 곁을 떠나 당국의 업무개시명령에 불복할 경우, 면허 정지와 고소·고발 등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파업 시 파급력이 가장 큰 전공의들의 사직서 수리를 금지한 정부는 의료진이 현장을 이탈해 휴대전화를 고의로 꺼놓아도 '업무개시명령'은 유효하다고도 강조했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의 부본부장을 맡고 있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8일 중수본 회의를 마친 후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법에 규정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범정부 대응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위기지역 필수의료를 살리고 불공정한 의료 생태계를 혁신하기 위해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각오로 의료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며 "의료인 여러분들께서는 집단행동이 아닌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또 "일부 집단행동 움직임에 동요하지 마시고, 지금과 같이 환자의 곁을 지켜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정부는 설 연휴에도 비상진료대책상황실과 중수본을 운영하는 등 긴장감을 가지고 대응태세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의대정원 확대 발표 당일, 집행부 사퇴를 공식화한 의협은 전날 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의결하고 연휴 직후 본격적인 집단행동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의협 대의원회는 정부를 '(의대 증원이란) 목적 달성을 앞두고 싫증난 개 주인'에 빗대며 "가장 강력한 형태의 증원 저지를 위한 비대위를 구성해 투쟁의 전권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도 박단 회장이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의대 확대규모를 두고 "해도 너무 지나친 숫자"라고 비판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대전협은 이미 수련병원 140여 곳·전공의 1만여 명을 대상으로 단체행동 참여 여부를 조사한 결과, 88.2%가 참여 의향을 밝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날부터 일부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서를 제출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수련병원에 대해 아예 '집단사직서 수리금지 명령'을 내렸다.
조규홍 복지장관이 직접 수련병원장 간담회에 나서 각 병원들이 전공의 파업에 적극 대응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전공의 복무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뿐 아니라,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술실, 분만·투석실 등 필수의료가 차질 없이 운영될 수 있도록 비상진료체계 구축도 당부했다.
정부는 의료진이 일부러 진료를 거부할 경우, 즉각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할 방침이다.
박 2차관은 "업무개시명령은 행정절차법에 따라, 본인에게 반드시 송달되어야 하는데, 우편도 안 받고 휴대전화를 꺼서 문자도 안 받고, 현장에도 나타나지 않아 도달이 안 되면 무력화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 것 같다"며 "그런 모든 부분에 대해 다 법률 검토를 마쳤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1만 5천 명의 전공의들 연락처를 확보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다만, 문자 송달을 위해 연락처를 확보할 계획을 분명히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블랙아웃'으로 전화기를 꺼놔도 문자를 보내면 송달의 효과가 있고, 저희가 그 정보(연락처)를 확보하는 것은 명확한 법적 근거가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강조했다.
수련병원의 병원장들도 의사 증원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에서 전공의나 교수들의 파업을 묵인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환자가 지금 누워서 수술을, 진료를 받아야 되는데 그걸 내팽개치고 '너는 그냥 떠나라'고 독려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박 2차관은 "원장이든 전공의든, 의사는 어쨌든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라고 그 면허가 부여된 것"이라며 "그런 집단행동을 독려하거나 권유 또는 조장하는 것들은 다 법에 위반된다. 그래서 이미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명령'도 내렸다"고 언급했다.
다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파악된 '집단 사표' 사례는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만약 집단행동에 나선 의료진이 업무개시명령에도 불응할 때엔 면허 정지를 비롯해 고소·고발 등 모든 법적 조치가 적용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박 2차관은 "일반론적으로 처벌체계가 그렇게 돼 있다. 그러한 일들이 현장에선 벌어지지 않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료계가 표명한 우려 및 증원 반대 주장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현 정원의 65%를 일시에 늘리기로 한 의대 증원이 '비과학적이고 정치적'이라는 비판과 관련해 박 2차관은 "그간 역대 정부에서 의사 증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증원을 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고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의대정원이 19년째 동결된 사이 주요 선진국에선 미래수요 대비를 위한 증원이 추진됐다는 점, 이번 확대 규모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연구한 결과'를 참고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의학교육의 질이 급속도로 저하될 거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40개 의대의 교육역량을 평가했고 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 인증기준을 준수할 수 있다"며 "또 2년의 예과 과정이 있기 때문에 보완할 시간도 충분히 있다"고 방어했다.
박 2차관은 "기초의학 등 각 과목별 교수를 늘리고 필수의료와 실습교육을 내실화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울러 1년간의 의료현안협의체(28회)를 통해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쳤고 간담회 등 각계와도 130회의 소통을 진행한 결과가 이번 증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박 2차관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많은 가짜뉴스가 제기되고 있다.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행위는 중단해주시길 바란다"며 복지부 홈페이지의 관련 '팩트체크'도 참고해달라고 당부했다.